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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2일 금요일

목수의 예술.

그는 나무로 가구를 만든다. 나무를 다루는 그의 손길은 부드럽다. 재단한 나무를 옮길 때면 어린아이를 안듯이 조심스레 끌어 안는다. 나무판을 톱으로 잘라 모양을 만들 때, 사포질을 해서 표면을 다듬을 때, 심지어 날카로운 끌로 찍어낼 때 조차도 그의 손은 다정하게 나무를 쓰다듬는다. 그는 가구를 주문하는 손님을 대할 때 보다 나무를 대할 때 더 친절하다.

가구 손잡이를 파거나 곡선의 무늬를 넣거나 홈을 파기 위해서 트리머를 사용할 때 그는 몸을 낮추고 나뭇결과 강철날이 만나는 부분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흔들림 없이 민첩하게 팔을 뻗어 나무를 긁어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굵은 나뭇밥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강철날의 움직임이 멈춘 다. 마침내 그가 원하는 모습이 나왔는지 확인하려 톱밥을 불어내는 그의 입술에는 웃음이 담겨 있다.

나무조각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구멍을 파고 도웰핀이나 비스킷을 집어넣은 뒤 결합부위가 꼭 맞물리게 하려고 클램프로 사이를 죄어 놓을 때 그의 눈이 빛난다. 고무망치를 들고 톡톡 가볍게 두드리며 정확한 교차점을 찾아낸다. 그가 잘라서 다듬어 놓은 나무들은 순종적이다. 그의 손가락이 움켜쥐는 대로 그가 처음 그려놓은 도면과 같은 모양을 찾아 나간다.

나무에 기름을 먹이기 위해 그의 열 손가락이 구석구석 표면을 쓰다듬는 모습은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성스럽게 기름을 먹이고 잠시 기다린 뒤 얼룩이 남지 않도록 겉을 닦아 내는데 이때 기름이 마르며 피어나는 냄새는 기묘한 흥분을 일으킨다. 가장 고운 사포를 쥐고 마무리 작업을 할 때 그는 사포를 들지 않은 왼손으로 끝없이 나무표면을 어루만진다.

숲에 목수가 나타나면 나무들이 떨고 목수가 먹줄을 튕기면 나무가 고개를 숙인다고 했던가. 나무를 지배하는 목수, 그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는 아주 천천히 일하고 꼼꼼하게 살핀다. 작업실에서 그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용을 감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음악은 전기톱과 대패와 사포가 움직이는 모터 소리, 세상에서 가장 거친 예술이다. 그런 공연이 매일 그의 공방에서 펼쳐진다.


2013년 10월 29일 화요일

매문에 대해.

 나는 글을 파는 일이 별로 부끄럽지 않았다. 아무리 싸구려 글이라도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쓸모가 있다는 증거일 테니. 예전에 어느 순수한 문학청년 아저씨가 나에게 글을 파는 것과 몸을 파는 게 뭐가 다르냐고 했던 적이 있었다. 똑같은 일이지 싶다. 하지만 몸을 파는 일이 부끄러울 이유는 또 뭔가. 몸의 쾌락이든 알량한 활자든 스스로 노력해서 돈을 버는 일이 남의 돈을 갈취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재화를 만들어내는 사기를 치는 것보다는 나은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아무 말 못했는데 십 년 가까이 지나서 뒤끝작렬. ㅋ 그 문학청년 아저씨 대학 강사였는데 여제자 건드리고 다녔지.

+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이라거나 유부남이 미혼여성과 관계를 맺었다거나 하는 문제는 내 문제 아니면 이렇다 저렇다 하고 싶지 않지만 교육자와 학생은 싫다. 종교지도자와 신도의 관계도 그렇고. 연애에서 권력 문제 어디에서나 아주 중요한 쟁점이지만 권력 차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관계는 어쩐지 역겨워서.

2013년 10월 19일 토요일

제주행 세월호에서.

선상에서 같은 방을 쓴 아주머니 세 분이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객실의 전기불은 이미 꺼졌는데도 맥주와 과자봉지를 놓고 모여앉은 아줌마들은 잠들 생각을 않았다. 나는 꽤 피곤해서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아직 아홉 시가 되지 않았기에 선상의 카페에 가서 생맥주 오백 한 잔을 시켜놓고 책을 읽었다. 

책을 덮고 나니 열 시가 지나 있었다. 이제는 술자리가 파하거나 다른 자리로 옮겨갔기를 기대하며 객실로 돌아왔다. 아줌마들의 수다는 한층 과열되어 있었다. 최근의 은행금리와 주식투자가 화제에 올라서 대화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귀마개를 끼고 자리에 누웠지만 높은 톤의 목소리는 여전히 생생하게 들렸다. 

좀 조용히 해주세요, 시간이 늦었습니다, 저는 피곤해서 자려고 해요, 밖의 카페나 휴게공간에서 남은 이야기를 하세요, 어떤 문장으로 말을 건네면 좋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에 한 아줌마가 전화를 받았다. 다급하게 여기저기 통화를 마치고 일행에게 들려준 사연은 이랬다. 

딸애가 학원에 가야 할 시간인데 셔틀버스에 타지 않아서 선생님이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아줌마가 학원의 연락을 받고 집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딸애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까무룩 잠이 들어서 학원 버스를 놓쳤고 전화벨이 울리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아줌마는 한탄하듯 말했다. 내가 집에 없으니까 애가 학원도 못 가네. 다른 아줌마들이 그네를 위로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저이들은 자식에 묶여서 맘대로 훌쩍 떠날 수도 없구나. 주부 셋이 큰 맘 먹고 여행 짐을 꾸려 제주도로 가는 길이 얼마나 설레고 기쁠까. 자식이 없는 나로서는 겪여보지 않은 일이지만 비슷한 해방감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줌마들은 맥주 한 캔 씩을 앞에 놓고 두 시간이 넘도록 비우지 않고 있었다. 과자를 먹기 위한 목축임 음료로 맥주를 활용하는 모양. 그 모습을 보니 평소에 술을 즐기던 분들도 아닌 듯 싶었다. 어쩌면 남들 보는 앞에서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어둑어둑한 객실에 숨듯이 모여 앉아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객실 내 에티켓을 들먹이며 이들의 소박한 술자리를 방해하게 된다면 나중에 무척 후회하게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들의 이야기는 애들 학원과 특목고로 옮겨갔다. 입시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토로하다가 우리 애 성적 걱정을 호소하는 아이러니. 귀마개를 다시 장착하고 잠을 청했다. 

2013년 9월 14일 토요일

글쓰기와 여행.

집을 떠나 있으니 확실히 생산성이 높아진다. 마음이 편안해서 잡념이 사라지니 집중력이 좋아진다.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이 손에 들어와서 읽고 있는데 작가의 말이 이렇게 시작한다.

"매달 월말이면 보따리를 싸들고 열흘 정도씩 집을 비웠다. 그러다 보니 3년 세월이 흘러갔다. 그것은 태백산맥을 넘는 동반자 없는 등반이었다. 그 세월은 이제 4,500매의 원고로 쌓여 작품 태백산맥의 제 1부가 되었다."

열심이 돌아다니고 열심히 써야지. 새삼 다짐해본다.

서비가.

동생이 보내준 작자미상의 노동요. 21세기 초 대한민국에서 연재소설가1)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불려진 노래라고 한다.

書婢歌 서비가

婢婢書婢 노예야, 노예야, 글노예야
不食書書 먹지도 말고 써라
不遊書書 놀지도 말고 써라
不休書書書婢 쉬지말고 써라 글노예야
少寢多書書婢 잠은 조금만 자고 써라 글노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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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세기 조선의 신분제도는 갑오개혁 이후 자유시민과 작가로 나누어졌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작가계급이 세분화 되었는데, 자기계발서작가, 인기TV드라마작가, 베스트셀러작가, 아마추어팬픽작가, 연재소설가로 세분화 되었고 이 중 연재소설가는 불가촉천민으로 분류되어 사회로 격리되어 자판기처럼 글을 썼다.

2013년 9월 10일 화요일

진혁과 그의 가족에 관하여.

1.

진혁이란 이름의 소년을 만났다. 막 중학교에 입학한 나이였다. 키는 또래에 비해 컸지만 얼굴에는 보송보송 솜털이 남아 있어 어린애 티가 났다. 진혁을 보면 십대 초반에 누구나 겪었을 법한 혼동과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애의 가느다란 눈매에는 장난기가 가득했으나 수줍음이 많아서 다른 사람과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일상적인 대화에는 어우, 씨바, 존나, 같은 십대의 감탄사를 풍부하게 섞어 빠르게 말했지만, 긴 문장으로 이야기할 때는 말을 더듬었다. 그런 아이의 과외교습을 맡게 되었다. 나로서는 고수입의 과외 아르바이트 자리를 거절할 형편이 아니었다.

진혁이네 집에 처음 갔을 때 그애가 나에게 했던 이야기는 대부분 우리 누나가요, 라고 시작했다. 진혁이의 누나 지혜는 중학교 삼학년 여학생으로 확실히 돋보이는 아이였다. 지혜가 밝은 얼굴로 현관문을 열어주었을 때부터 강한 인상을 받았다. 내가 진혁이와 아이들 아버지와 함께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지혜는 부엌에서 차와 과일 같은 것을 내왔다.

집안 사정을 들어보니 아이들의 어머니는 진혁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 뒤로 장녀인 지혜는 제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여러 노력을 해왔던 것 같았다. 진혁이가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 본 시험 성적이 그리 좋지 않자 과외를 시켜달라고 아버지에게 청한 이도 지혜였다고 했다. 지혜는 중학교 삼 년 내내 반장을 했고 성적도 좋으며 자기 일은 스스로 잘 알아서 하기 때문에 신경을 쓸 일이 없다는 아버지의 딸 자랑이 이어졌다. 그에 비해 아들에 대한 평은 꽤나 냉정했다. 진혁이는 다른 애들에 비해 키만 빨리 컸지 속은 늦게 여무는 것 같다고 했다. 진혁이는 그런 말을 바로 옆에서 들으면서도 속없이 실실 웃기만 했다. 확실히 진혁이는 말랑말랑한 아이였다.

그 집을 드나들면서 지혜가 익숙하게 집안 살림을 돌보고 제 동생을 챙기는 모습을 보았다. 지혜는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있는 동생을 어르고 달래서 책상 앞에 앉혀 놓는 일도 맡아서 했다. 누나의 조력이 없었다면 나 같은 대학생 과외선생이 아니라 경험 많고 유능한 전문 강사라 해도 진혁이를 움직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학교 일 학년의 남자아이는 인류의 진화발달 단계에서 호모사피엔스 같은 고생인류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살아있는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진혁이가 또래에 비해 학업에서 뒤쳐지는 편이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성장기의 아이에게 현생인류 평균의 지적 이해도, 공감 능력, 책임감, 성취만족도 따위를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과외수업은 매 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여덟 시부터 열 시 까지였다. 진혁의 아버지는 보통 저녁 아홉시 반에서 열 시 사이에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그도 어색했는지 밖에서 입던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거실 소파에 앉아서 내가 수업을 마치고 아들의 방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면 현관문을 열고 따라 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는 늦은 시간인데 위험하지 않겠는가, 하며 차로 데려다 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나는 걸어서 십 분 거리인데요, 하며 사양했다. 사실 우리 집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이십 분 정도는 걸리는 거리였지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일이 한 달 정도 반복되고 나서야 그는 나의 귀가를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서로 익숙해지자 진혁이 아버지도 과외선생을 상관하지 않고 귀가하자 마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과 부엌을 돌아다니고 냉장고를 열어 무언가 꺼내 먹기도 했다. 진혁이 방에서 수업을 하다가 방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면 이제 나도 슬슬 수업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2.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이 끝나갈 무렵 집으로 전화가 왔다. 전화벨이 멈추고 잠시 후 지혜가 전화기를 들고 방으로 왔다. 전화를 넘겨받아 보니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오늘 저녁에 일이 많이 늦어질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아무 것도 부탁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귀가할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있겠다고 자청했다. 대학생 과외선생이란 가정교사와 베이비시터의 중간쯤에 있으니까, 어차피 밤은 늦었고 다음날 특별한 일도 없었으니 몇 시간 정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 진혁이는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고 지혜는 딱 한 시간만 게임을 하는 거라고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받아 놓았다. 진혁이는 게임을 하고 지혜와 나는 텔레비전을 켜 놓고 나란히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지혜는 아빠가 과로하는 것 같다고 걱정을 염려하는 말을 했다. 게임중독이란 말을 쓰면서 진혁이를 걱정하기도 했다. 지혜는 제 또래의 아이를 둔 중년여성 같이 말했다. 나도 덩달아 지혜를 다른 과외 학생의 어머니 같이 대하고 있었다. 소녀의 얼굴이 표정을 가릴 수 없는 민낯이라면 중년여성의 얼굴은 용도에 따라 골라 쓰는 탈바가지라 해도 좋을 것이다. 지혜는 능숙하게 가면을 썼다. 지혜는 사교적인 동작을 흉내 냈고 의례적인 어휘를 사용했는데 그런 태도가 어색하지 않았다. 지혜가 과외선생을 상대하며 엄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와중에 지혜보다 고작 두 살 어린 진혁이는 아무렇지 않게 냉장고에서 하드바를 꺼내 물고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지혜는 진혁이의 학교생활, 성적, 컴퓨터게임 같은 것에 대해 상담했다. 진혁이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고, 다른 친구를 고려하지 않으며 장난을 치고, 누나가 짜증을 낼 때까지 우스꽝스러운 말장난을 반복하고, 재미있는 일을 할 때는 공부 따위 잊어버리고 마는, 지극히 평범한 중학생 소년이었다. 지혜는 진혁의 습관과 태도를 문제 삼아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누군가가 진혁이의 사소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이 진혁이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살 터울의 누나가 그애와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은 좋지 않아 보였다. 나에게도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는데 우리 남매는 같이 컴퓨터게임을 했고 함께 또는 따로 사고를 치고 다니며 친구 같이 성장했기 때문에 지혜의 태도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나로서는 반대로 지혜의 조숙함이 걱정스러웠다.

진혁이 아버지는 자정을 넘긴 시간에 집에 들어왔다. 그는 지친 모습이었다. 집에 들어와서 아이들의 인사를 받고 넥타이를 풀어 소파에 걸쳐 놓고는 곧바로 나를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고 피곤하기도 해서 나 역시 그 날은 사양하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차에서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진혁의 아버지와 단 둘이 있으며 나는 그와 결혼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이 남자의 아내가 되어 지혜가 짊어지고 있는 짐을 덜어주고 진혁이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싶다는 상상, 내가 그 가족의 구원자가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진혁이 아버지의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분명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이 아니었고 아저씨가 보기에 나는 딸 같은 어린 계집애였을 것이다. 나는 지혜보다 단지 여섯 살 많을 뿐이었다. 그러나 스물한 살, 막 성년이 되었던 시기에 나는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연민에 가까운 감정을 애정으로 착각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지만 덧없는 상상이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생겨버렸다. 아둔하고 주의력이 부족한 진혁이와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취향이 까다로운 지혜, 아무리 생각해도 골치 아픈 아이들인데 내가 잘 해나갈 수 있을까 두려웠다. 진혁의 아버지가 나에게 청혼할 리가 없음에도 내 머릿속에 들어앉은 상상이 나를 두렵게 했다. 그리하여 이 시나리오는 그를 거절하고 배신하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주말동안 아이들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3.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진혁이네 외가는 차로 삼십 분 거리의 이웃 도시에 있었는데 진혁이와 지혜는 외조부모와 친밀했다. 특히 지혜는 외할머니를 무척 따랐다고 들었다. 아이들에게 외할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하는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이 지나고서 아이들을 만났다. 지혜는 단발머리에 흰 리본이 달린 머리핀을 꽂고 웃지 않는 얼굴로 현관문을 열었다. 진혁은 컴퓨터 앞에 앉은 채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다.

외할머니의 죽음은 아이들에게, 특히 지혜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죽음이 진혁이가 스타크래프트의 세계에 더욱 몰입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상공간에서 저글링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일이 죽음에 대한 성찰과 어떤 연관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진혁에게도 물론 충격적인 일이었을 테지만 당시에는 그런 상실이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겉보기에 진혁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혜는 사춘기의 소녀였고 어머니의 죽음에 이어 외할머니의 죽음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모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 여성 질환이 자기에게도 유전될 거란 불안감도 깔려있었던 것 같다. 나는 유방암이 유전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그 확률이 높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기회를 찾지 못했다.

한 번은 지혜가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저는 우리 엄마 같이 스물다섯 살에 결혼해서 스물여덟 살에 아이를 낳을 거예요.

다만 결혼과 육아에 대한 사춘기 소녀의 상상에서 나온 이야기였을까, 제 어머니 같이 요절하고 마는 운명을 받아들이려는 것일까, 그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엄마 같이 살겠다는 딸의 말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뭐라고 이야기해야 좋을지 모르는 채 급하게 대답할 말을 찾았다.

엄마 때는 그랬지만 요즘 스물다섯 살은 너무 빠른 나이야.

지혜는 중년여성 같이 가면을 쓴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은 그러다가 서른이 넘어서도 결혼하지 못할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할 때에 지혜의 얼굴은 너무나 밝고 명랑했다. 하지만 잠시 딴청을 피우거나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해서 지혜가 나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있을 때의 얼굴은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민낯을 감추려고 환하게 웃는 가면을 쓰는 일은 좀 더 나이를 먹고 난 뒤에 시작해도 될 텐데, 재빨리 가면을 갖춰 쓰는 일은 꽤나 힘이 들 텐데, 나는 지혜가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내가 괜히 이 아이 앞에 나타나 아이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리고 지혜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나는 서른이 넘어서도 결혼하지 못했다. 지혜가 스물다섯 살에 결혼을 했을까 문득 궁금하다.

4.

화요일과 목요일에만 했던 과외는 하루 더, 토요일까지 하기로 했다. 나로서는 수입이 늘어 나는 일이 반가웠지만, 수업시간이 늘어나도 진혁이의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진혁이 아버지는 기본적으로 아들에 대한 기대가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석차나 점수에 대해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밤 시간에 아이들을 보살피는 베이비시터, 주기적으로 자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말상대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귀가하면 진혁이는 책을 덮어놓고 밖으로 달려 나가곤 했고, 나는 진혁이가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나면 다시 방으로 불러들여 수업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아이 아버지는 수업 시간을 끝까지 다 채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가끔은 내가 그 집을 떠나고 가족들만의 휴식시간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기색을 내보이기도 했다. 나 역시 퇴근이 싫을 리 없었지만 지혜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지혜는 수업시간이 지켜져야 한다고 고집했고 우리들 중 누구도 지혜의 의견을 거스를 정도로 용감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달리 지혜는 진혁이의 성적에 민감했다. 마치 동네의 다른 아줌마들이 자기 아들을 챙기듯 진혁이를 챙겼다. 둘은 같은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여느 엄마보다도 나은 면이 있었다. 지혜는 정확한 시험 일자와 출제범위를 알고 있었고 담당 교사들의 경향도 파악하고 있었다. 진혁이란 녀석은 기말고사가 언제니? 라고 물으면, 어... 언제였더라... 다음주 수요일, 아니 화요일인가... 이런 식으로 어물어물 넘어가고 말았기 때문에, 나는 지혜의 도움이 없었다면 과외를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조금 초조했다. 진혁이의 성적이 적어도 과외를 시작하기 전보다는 조금 나아지기를 바랐다.

지혜는 자기의 진로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 중학교 시절 내내 성실하고 인기 많은 아이였음에도 고등학교 진학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종종 동네 선배인 나에게 고등학교 때의 일을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비평준화였던 시기에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서열화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있었는데 지혜는 반대로 그런 상황을 부러워했다. 고교입시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시험 날의 실수로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친구들이 느낀 패배감이 어떠했는지 설명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애는 우수함을 인정받기를 원했다. 기숙사가 있는 외고에 원서를 넣어보고 싶어 했지만 진혁이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딸이 외고에 가겠다고 고집했다면 말리지 않았을 테지만 그애가 기숙사 학교를 포기하고 가까운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결정하자 내심 안도하는 것 같았다.

진혁이네 가족은 모두 지혜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아침에 밥을 짓는 일은 아이들 아버지가 했다지만 마트에서 조리된 반찬이나 인스턴트 식품을 사다가 냉장고에 채워 놓고 그릇을 꺼내놓는 일은 지혜의 몫이었다. 가족의 규칙에 따르면 설거지와 뒷정리는 진혁이가 해야 할 일이었지만 지혜가 잔소리를 하다가 제풀에 지쳐서 알아 해치우고 마는 때가 많았다. 지혜는 가사노동 외에도 가족들을 위해 감정의 많은 부분을 투자하고 있었다. 동생에게 어머니가 할 것 같은 잔소리를 했고 아버지에게 마치 부인이 할 것 같은 잔소리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가끔 지혜는 가족들에게 화가 난 것 같았다. 여러 모로 재주가 많은 아이였지만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편안하게 내버려두는 방법은 도무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도 그 나이를 지나왔지만 내가 알고 있는 소녀는 나였을 뿐이라 지혜에게 무언가 이래라 저래라 조언하기가 어려웠다. 만약 내가 그 입장이라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하지만 청춘은 이유 없이 화내는 것이 아니라 이유 없이 웃는 시기이다. 자기가 해놓은 일을 자랑하는 때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꿈꾸는 때이다. 지혜는 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외롭게 버텨내고 있었다.

5.
기말고사가 끝난 토요일, 과외수업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진혁이네 가족은 외가에 방문할 거라 했다. 무사히 학년을 마쳤으니 쉬어도 좋을 때였다. 다음주 화요일에 진혁이의 시험지를 가채점한 결과를 보았다. 석차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절대평가 점수로는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나는 쪽집게 과외선생이 아니었고 지금도 자기가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는 이상 성적을 올리는 비법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오랜 시간 책상 앞에 붙잡아 두었던 학생인데 결과가 이래서야 부끄러운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혁의 아버지가 나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오셔도 됩니다. 이 무슨 말인가 당황했다. 그는 방학을 맞아 일자리를 잃은 과외선생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 역시도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는 늦은 귀가 후 자동차 안에서 갑자기 그들에게 일어난 가족의 문제를 털어놓았다.

그의 장인은 장모가 세상을 떠난 뒤 침울한 시기를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그에게 너무 자주 찾아오지 말라고 했단다. 그는 장인이 자기를 배려해서 하는 말인 줄 알고 혼자 되셨는데 가까이에서 지내자고, 원한다면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장인의 입장은 달랐다. 지혜가 어릴 때는 친탁을 했다는 평을 들었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제 어머니를 ·닮아 간다는 것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손녀에게서 죽은 딸의 모습을 보는 일이 무척 괴롭다고, 장인은 속내를 숨기지 않고 사위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홀아비가 된 두 사람의 만남이 서로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고 했다.

진혁이 아버지는 장인에게 하지 못한 말을 나에게 했다. 장모가 계실 때에도 반찬을 얻으러 갔던 건 아니었다고, 당신의 혈육을 보기 싫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죽은 아내를 닮은 딸애를 자기는 매일 보고 있다고, 토하듯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절절하게 섞인 비애에 공감했지만 한편으로 지혜의 고통스러운 자기학대적 잔소리를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혜의 아버지가 장인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장인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언젠가 아주 오래 전에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아내가 죽고 그의 장모가 죽은 뒤에 그가 내 앞에서 자기 장인에 대해 묘사할 때의 느낌은 마치 벌레나 강아지풀에 대해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장인이 자기와 아이들을 거부하는 이유가 마치 그의 아내, 즉 장인의 딸에 대한 배신인 양 묘사했다. 하지만 장인이 느끼고 있을 깊은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아픔, 그 딸애와 비슷한 아이의 성장과장을 다시 한 번 목격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공포, 심지어 그 조차도 이해하고 있을 법한 아내를 잃은 남편의 고통스러움에 대해서도.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다만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임금을 받기 위해서 굴종적인 태도를 취했던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고용된 과외교사였다. 그러나 나는 그가 장인에 대해 말할 때 그가 느꼈던 공포를 이해했다. 그는 고립되어 있었다.

진혁과 지혜, 그들의 아버지는 이 도시를 떠났다. 아버지의 부모가 살고 있는 지방으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자기 아이들을 보살피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성실한 아버지였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 결과 진혁이와 지혜의 삶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순수한 전래동화 이야기

동생과 채팅 중, 새로 나온 채팅 프로그램을 보고 신기해하자...

동생: 토끼가 달나라에 가는 세상인데 뭐 이런 정도 쯤이야.

나: 꺅 토끼가 갔대? 벌써?

동생: 추석이 대목이라
엄청 떡치고 있는데
토끼라서


나: 아풀싸...

동생: 내 워딩은 숨겨진 더러운 뜻같은건 없어
그냥 순수한 전래 동화로 해석해야해


그렇다고 합니다.

2013년 9월 9일 월요일

환경의 변화와 글쓰기.

1.

밖으로 나가면 도라지와 콩이 자라는 밭이 보인다. 눈이 푸르니 좋다. 공사장에서 들리는 소리도 싫지 않다. 비가 오는데도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경외심이 든다.

새벽에 꿈을 꾸었다.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꿈이었다. 앞머리를 정성스럽게 가지런히 빗어내렸다. 현실에서 머리모양을 다듬느라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는데 꿈에서는 오래도록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기분 좋게 잠에서 깼다. 스스로를 보살피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간밤에는 매실주를 마셨다. 과일주에 취약한 체질인데 매실주를 그렇게 많이 마시고도 뒤끝이 없다니 신기하다. 닭죽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노트북을 켰다. 이제 일을 해야지. 여섯 시간 동안 내달리면 한 권 분량은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2.

커피를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재떨이로는 뚜껑이 달려 있는 캔커피 빈 통을 활용하고 있었다. 담배를 한 모금 마시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고 재떨이가 되어버린 캔커피를 무심코 집어 들었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3.

춥지만 따듯하고 시끄럽지만 고요하다. 마음의 문제. 내 안으로 도피하는 중.

4.

모든 사람들이 이불을 나누어서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철수는 안타까웠다. 부족함이 적다면 과연 우리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까? 소유욕 또는 사적 만족감을 충족할 수 있을까?

5.

어느 글쟁이가 자신을 글쓰는 자판기에 비유한 적이 있었다. 입금이 되면 원고가 또르르 굴러 나온다는 이야기. 그때는 웃고 넘어갔는데 지금 내 상황이 그러한 듯. 또르르 또르르 두 권 정리해서 보내고 다음주를 준비하고 있다. 또르르 막힘 없이 나오기를...

6.

녹색이 많이 보이는 환경에서 지내고 있다.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확실히 이명은 줄어 들었다. 그런데 파리와 모기가 많다. 산모기라 그런지 모기에 물린 직후에는 엄청 크게 부풀어 오르고 심하면 통증을 느낄 때도 있다. 파리 모기 외에도 벌레가 많다.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나방이 내 몸에서 이륙을 준비하는 걸 보고 기겁했다. 사람에게 좋은 환경이 벌레에게도 좋은 환경이겠지. 귀찮아도 좋다.


2013년 8월 9일 금요일

아주 작고 섬세한 것에 대해.

마이크로는 본래 백만분의 일 단위를 부르는 전문용어, 그러나 일상적으로는 아주 작은 것을 의미하는 수식어로 많이 사용한다. 마이크로-소프트나 마이크로-네시아가 백만분의 일이라는 숫자 단위와 관련있지는 않다. 다만 작은 것, 섬세한 것, 정밀한 것을 연상하게 하는 마이크로-라는 접두어를 사용한 단어일 뿐이다. 마이크로가 너무 흔히 사용되었기 때문일까, 요즘은 더 작은 단위인 나노를 쓰기 시작하더라. 아이팟-나노, 은-나노 같은 식으로 더 작고 섬세하고 정밀하게 개량된 상품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그렇다면 나노보다 더 작은 수를 부르는 단위로는 무엇이 있나 궁금해졌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피코, 펨토, 아토, 젭토, 욕토 같은 전문용어가 있더라. 머지 않아서 이런 이름을 하나 씩 가져다 쓰는 상상을 해본다. 피코-폰, 펨토-프로젝터 같은 상품이 대중에 선보이게 되겠지. 그 중에 가장 작은 단위인 욕토(yocto)는 10의 마이너스 24제곱인데, 이는 1/1000의 8제곱과 같기 때문에 8을 뜻하는 그리스어 οκτ?(오크터)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0.000 000 000 000 000 000 000 001 이라고 쓰면 대체 얼마나 작은 수인지 정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영 쩜 영영영영영영영... 읽다 보면 혀가 꼬이고 숨이 넘어가니, 그저 '욕토'라는 어쩐지 욕 같고 토할 것 같은 용어를 기억하는 편이 낫겠다.

본래 작고 섬세한 것들은 이해하기 어렵고 정확하게 표현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자기가 모른다고 해서 그런 영역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인정 여부과 상관 없이 세상에는 이미 그렇게 작고 섬세한 것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아주 작고 섬세한 부분을 미리 발견하고 이해한 사람들이 그것을 부르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버려도 곤란하다. 그러면 우리가 대화할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언젠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마음으로 또 머리로 더 작고 섬세한 것들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성장인 걸까?

2013년 6월 25일 화요일

이해하기 위한 노력.

오래 좋아했던 선생님이 최근 했던 이야기 몇 마디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합리적인 보수주의 또는 인생의 관성으로 인한 한계라고 납득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깨달음. 우성학적인 힘의 논리를 지지하고 있구나. 예전에 했던 이야기에서도 그런 암시가 숨어있는 대목이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는 약자에게 너그러운 편이 아니었다. 한때 나는 그런 태도가 공정함이라고 믿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그가 했던 몇 마디 말은 심지어 나를 때리는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몇 번이고 재구성했다.

관계의 종결이 아쉬운 것은 아니다. 만나서 불편한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니까.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것보다는 더 이상 존경을 표현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새벽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허약해졌기 때문에 힘의 논리를 지지하는 것은 아닐까? 노년기에 접어든 그의 신체는 약해지고 있고 그의 건강이 이전보다 좋아질 가능성은 없다. 퇴직한 후로 사회적인 최소한의 권력도 잃었다. 이제 그를 찾아가는 제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본래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었다. 그는 고립되었다. 틀림 없이 그는 자신이 가졌던 건강과 권력, 몸과 마음이 모두 강했던 시기의 일을 계속해서 회상하고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상실을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늙고 늙은 남자의 속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까, 하지만 이런 가설을 세워보고 나니 혐오 대신 연민이 찾아와서 내 마음이 편하다.

2013년 3월 25일 월요일

오늘의 망상 : 돌과 여자

1. 늑대

- 남자를 늑대에 비유하는 이유는 뭘까?
- 늑대가 악당으로 등장하는 유럽의 민담 <빨간모자>와 <일곱마리 아기염소> 이야기.
빨간모자에서는 늑대가 할머니와 빨간모자를 잡아 먹었는데 사냥꾼이 구출, 일곱마리 아기염소 이야기에서는 늑대가 엄마가 없을 때 엄마인 척 들어와서 새끼염소 여섯마리를 잡아 먹었는데 엄마염소가 집에와서 시계속에 숨어있던 막내염소와 함께 자기 새끼들을 구하려고 늑대의 배를 가르고 속에 돌을 채워넣지.

- 두 이야기에서 복수의 방법이 늑대의 배를 가른 뒤 돌을 채워넣고 다시 꿰매어서 늑대가 스스로 죽게 하는 것이라는 공통점 발견.

- 엄마 염소는 초식동물이니까 그렇다고 쳐, 근데 사냥꾼이라면 늑대를 사냥해야지 왜 뱃속에 돌을 넣어서 스스로 죽게 하나?

-늑대가 알려주는 교훈은 (특히 육식을 할 때) 음식은 꼭꼭 씹어먹어야 한다.

2. 돌로 죽이는 방법들 - 투석형

- 뱃 속에 돌을 넣어 죽이는 복수와 투석형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

- 투석형의 유래, 사례에 대해서 찾아봄
현대의 투석형, 이란의 끔찍한 사례들을 보다 보니, 투석형은 간통이나 동성애에 대한 처벌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하셨던 케이스가 간통으로 끌려온 것이었지. 근데 간통이면 남녀가 떡을 쳤을 텐데 왜 여자만...

- 지인과 페이스북 메신저로 대화
이선생님이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예를 들며 동화가 잔혹했다는 이야기를 하심. 내 생각엔 민담을 동화로 판 놈들이 문제라고 말씀드림.
그리고 당시 몇몇 일본작가들이 했던 자극적인 민담의 패러디가 나쁜 짓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원전연구인 것처럼 포장하는 일은 나빴다는 요지의 이야기...

3. 그리스 신화에서 돌

- 투석과 돌 채워넣기는 다르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감. 뱃속에 돌을 채워넣어 죽도록 한다는 이런 종류의 복수는 좀 더 여성적이라는 생각이...

- 레아가 제우스를 살리려고 크로노스한테 돌을 먹게 했다는 이야기. 크로노스는 제가 제 아비에게 했든 자식들이 저를 죽일까봐 겁을 먹고 레아가 낳은 자식들을 하나씩 집어삼켰는데, 자식을 낳자 마자 남편에게 빼았긴 레아가 막내인 제우스만은 구하려고 남편을 속여 돌을 먹게 함.

- 레아가 어머니 가이아의 도움을 받았던가? // 가이아는 대지의 여신, 티탄.

4. 돌을 먹는 사람들

- 돌을 먹게 하는 죽음의 이야기, 다른 건 없나 검색하다가, 미국과 중국에 돌 먹는 여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돌이 맛있다고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http://m.nocutnews.co.kr/view.aspx?news=2150081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8018241&srcid=595528

5. 화형과 투석형

- 지인과 문자메시지로 유럽의 화형과 투석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했던 이야기.

- 적어도 유럽의 마녀사냥에 대한 기록 중 투석이 함께 행해졌다는 기록은 없을 거예요. 예수님의 포쓰 넘치는 말씀 덕분에. / 사람을 불태워 죽이지 말라고도 말씀하셨다면 좋았을 텐데. / 남의 석유를 탐하지 말라. / 타 종교를 존중하고 이해하라...


6. 그림 동화는 동화가 아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는 사실 동화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독일어의 '메르헨 M rchen'을 동화로 옮기는데, 메르헨은 어원상 '이야기'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그림 형제의 메르헨은 작가를 알 수 없이 전해 내려오는 옛날 이야기, 즉 폴크스메르헨 Volksm rchen을 수집하여 다듬어낸 것이다. (중략)

그림 형제는 우리에게 이른바 동화집을 엮어 낸 사람들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근대 독일 문학의 창시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독일의 언어와 문학의 발전에 큰 공을 세운 학자이기도 하다. (중략)


그림 형제가 옛이야기를 수집한 데는 "민중의 정신"이 만들어낸 문학의 원형으로서 "자연 시가 Naturpoesie"를 추구한 낭만주의적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에게 민간 전승 문학은 인류의 "모든 삶을 촉촉하게 적시는 영원한 샘"에서 나오는 "영원히 타당한 형식"이다. 이러한 견해에서 그들은 아힘 폰 아르님과 클레멘스 브렌타노의 민요 수집을 도우면서 자신들도 민담을 수집하게 된다. (중략)


1818년 1월 18일 아힘 폰 아르님에게 보낸 야코프 그림의 편지에 보이듯이, 그림 형제가 원래 어린이를 염두에 두고 옛이야기 책을 편찬한 것은 아니었다.
"나로서는 어린이들을 위해 이 옛이야기 책을 쓴 것은 전혀 아니었네. 그러나 그들에게도 상당히 바람직할 거야. 나는 그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네."
그렇기는 하지만 초판이 나오자 실제 독자는 어린이들임이 드러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미 1819년의 2판부터 특히 빌헬름의 손질이 가해지며, 이는 판을 거듭할수록 강화된다. 2판의 서문에서 그림 형제는 어린이와 옛이야기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문학의 내부에는 어린이들을 그토록 경이롭게 복되게 보이도록 하는 저 순수함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똑같이 파르스름할 정도로 새하얗고 순결한,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림 형제가 옛이야기들에 놀라울 정도의 순수함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화에는 비록 많은 수정을 거친 최종판을 보더라도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읽어주기 어려운 잔혹한 장면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따라서 이런 옛이야기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주기에 적합한가하는 물음이 제기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영국 점령군이 그림 동화의 인쇄를 금지시킨 일도 있었다. 거기서 보여지는 잔혹성들이 나치의 강제 수용소를 연상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잔혹한 장면들은 독일의 옛이야기에만 나오는 것은 아님을 생각하면, 그러한 연관성은 이내 반박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잔혹한 장면, 성적인 장면들이 걸러지지 않고 옛이야기들 속에 들어가 있게 되었는가를 그러한 이야기들을 탄생시킨 실재 세계와의 관련에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후략)

출처: <문학과 교육> 2000년 봄호, 필자: 김경연

전문읽기: 그림 동화 -- 정말 무시무시한 `동화`??? http://schonte.egloos.com/7103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