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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25일 화요일

권력의 술수.

"고통을 겪는 사람과 그 고통을 알 권리가 있는 사람들 사이의 교신을 막는 것은 권력의 오랜 술수 중의 하나이지."

김영래, 숲의 왕, 문학동네, 2000. 81쪽.

2014년 1월 13일 월요일

독서취향 테스트.

http://book.idsolution.co.kr/

나는 열대우림 독서취향이란 결과가 나왔다. 취향에 대한 설명은 공감한다. 하지만 이 사이트에서 취향에 맞을 거라고 추천하는 책은 대개 다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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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명의 원천인 태양의 영향력이 가장 두드러진 곳. 어마어마한 태양 에너지로 인해 엄청난 양의 강수량과 엄청난 생산력의 동식물군이 번성한다. 열대우림이 차지하는 면적은 전체 지구 표면의 3%에 불과하지만, 이곳엔 전지구 생물의 15%가 살고 있다. 이곳에 사는 생물 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 아직도 인간에 발견되지 않은 동식물들을 헤아릴 수 없다.

극단적으로 다양하고 비옥한. 열대우림의 자연적 특성은 당신의 책 취향을 대변하기에 가장 적당합니다.

•밀림 같은 포용력:
마치 열대우림과도 같은 극도로 다양하고도 조밀한 책 소비 행태를 보임. 그 어떤 극단적인 내용이라도, 그 어떤 괴상하고 수상한 내용이라도 이 취향에선 대체로 기꺼이 소비되는 편. 가장 다양한 종류의 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지적인 대식가' 계층.

•태양 같은 직관력:
중요한 사실은 돼지처럼 무작정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수준 높은, 가치있는 책을 정확히 판단한다는 점. 이런 심미적 분별력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보임.

•원시적인 진실성:
당신의 취향은 뭔가 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내용과 표현을 선호함. 비록 조잡하고 미숙하더라도, 책이라면 무릇 솔직하게 자신감있게 꾸밈없이 쓰여져야 함.

당신의 취향은 전체 출판 시장의 약 5% 정도에 불과하지만, 소비 규모는 15% 이상일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유명 소설 작가의 상당수가 이 취향에 속합니다. 당신의 취향 중에도 작가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 많을 듯.

2013년 8월 1일 목요일

목공에 대한 책.

1. 철천지의 친환경 목공 만들기, 김민석, 이비컴, 2006.

DIY 관련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저자가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목공용구와 간단한 소품만들기 예시를 보여주고, 인터넷으로 취합된 회원 작품을 소개한다. 작품의 난이도가 들쭉날쭉하지만 다양한 취향의 개성있는 소품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절판)
                                                 


2. (왕초보 지나 아빠의) 무턱대고 DIY, 유재헌, 김민석 공저, 이비컴, 2009.

위 사이트에서 활동한 회원이 가족과 아이를 위해 목공 DIY에 빠져들어 만들어낸 귀여운 작품들이 소개된 책이다. 폐목재나 헌 가구를 활용한 리폼작업, 가정용 소품과 소가구 위주의 예시, 전반적으로 빈티지 느낌의 디자인이 통일감 있다. 공구 사용법은 작품 예시 사이에 아주 간략하게 삽입되어 있다. 백과사전 식의 편집이 아니라 잡지를 보듯 편하게 예시를 참고하기 좋을 듯.

알라딘 링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450135



                                                 


3. (DIY 내가 만든) 우리집 가구, 박종석, 소리들, 2007.

목공용 판재와 부자재, 공구, 페인트 등의 사용법을 간단히 설명한 뒤, 작은 소품이나 가구들을 만드는 방법을 상세항 과정샷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DIY관련 책자의 기본 포맷이다.) 작품 예시 사이사이에 공구의 상세 사용법을 팁, 잔소리 등의 박스에 넣어 섞어두어서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려면 반드시 통독이 필요하다. 편집과 구성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아기목마, 주방용 요리책 받침대 등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알라딘 링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059230


                                                 


4. 아이들을 위한 목공 DIY, 양슈쥐엔, 혜지원, 2008.

전동 직소, 트리머, 샌더, 드릴 등 전동 목공구의 사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기구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가 참고하기 좋다. 전체적으로 구성이 깔끔해서 자료가 한 눈에 들어온다. 책 제목이 보여주듯 아이들 방을 꾸미기 적절한 가구와 소품을 제작하는 방법 위주로 예시가 담겨있다. 작은 목제 장난감부터 수납용 가구까지 다양한데 디자인에 통일감이 있어서 이 스타일이 마음에 드는 독자라면 그대로 따라해도 좋을 듯.

알라딘 링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795719


                                                 


5. 가구제작 및 목공예 기능사 - 필기.실기시험대비, 김한희, 이은오, 조항기 공저, 일진사, 2010.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실시하는 가구제작 기능사목공예 기능사 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수험서. 본문은 제도법, 목곡 수공구와 기계 공작법, 목재와 철물 등의 재료 등에 대한 교과서식 설명과 각 장에 해당하는 출제 예상문제(4지선다형 객관식문항)가 수록되어 있다. 보통 이런 자격검정은 문제은행식으로 출제되기 때문에 이 책을 기본으로 공부하면 시험대비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점을 수색해본 것은 아니지만 이 책 말고 마땅히 볼만한 다른 수험서가 없는 듯 싶다.) 앞부분의 내용은 거의 모르는 내용이라 그럭저럭 흥미로웠지만 뒷부분의 조형예술과 공예사, 산업안전 등은 겉핥기 식으로 매우 간략하게 다룬다.

내 경우에는 자격시험에 별 관심 없이 목공에 관련된 책을 구하다가 작품제작 예시 위주의 서적이 아니라 교과서식 학습서도 보고 싶어져 구입했는데, 쓸모를 기대하며 한 장 씩 읽어 나가며 조금씩 실망하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만든 책이고 업데이트 되는 내용은 그리 많지 않은 듯, 내가 다니는 목공방에서 자주 사용하는 최신 공구들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고 대신 아교접착제 만드는 법이라든가, 코르크 채취법 같은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 제도권 교육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일깨워준다. 쓸모 없는 정보를 가려내는 것은 학습자 개인이 해야 할 몫이니까.

알라딘 링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290842X


                                                 

6. 쉽게 배우는 간단 목공 작품 100 - 수납 선반부터 가든 가구까지, <두파!> 편집부, 김남미 옮김, 한즈미디어, 2012.

다양한 형태의 의자, 테이블, 선반, 책장 등 100개의 작품을 소개하는 책이다. 전체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디자인의 목가구가 아니라 만들기 쉽고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 많아서 초보자도 쉽게 따라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시를 설명하는 본문의 구성도 마음에 든다. 딱 한 페이지에 한 작품의 구조와 도면의 치수를 제시하고 제작법 등을 설명한다. 초보자 입장에서 무언가 간단하게 뚝딱 만들어볼까~ 하는 기분이 들 때 참고하기 좋을 듯.

알라딘 링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754242

                                                 

7. 목공 DIY - 가구도 Hand-made 시대, 주택문화사 편집부, 주택문화사, 2007.

아주 상세하게 작품제작의 과정을 사진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목공을 혼자 배우는 독학자 같은 사람에게 필요하겠다. 그러나 반대로 보자면 당연히 책의 분량 상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6번의 간단목공작품과 기획의도가 정 반대에 있는 책이라고 보면 되겠다.) 꼼꼼한 설명은 무척 도움이 되고 상세한 설계도면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러나 가로로 넓은 판형은 펼쳐보기 너무 괴로웠다. 디자이너가 왜 이랬던 걸까 따져묻고 싶을 정도이지만 예의와 염치를 아는 인간이므로 그러지 않았다. 미루어 짐작해보자면 아마도 최초에 이 콘텐츠가 만들어졌을 때는 인터넷에 기반하여 배포되었을 것이고, 책의 저자 나 편집자가 모니터의 가로화면을 고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8. 서양 가구의 역사(살림지식총서 424), 공혜원, 살림, 2012.

서양 가구사를 간략히 살펴보기 위해 구입. 아직 시작하지는 못했다. 한국 전통가구과 중국, 일본가구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다뤄주는 책이 있다면 좋겠다. 가구의 역사를 깊게 파고들 계획은 없지만 조금쯤은 알고 싶어서...

알라딘 링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218647

                                                 


(이후로 추가할 예정)


                                                 

2013년 7월 23일 화요일

의자와 책장에 대한 책을 읽었다.

1. 의자의 재발견, 김상규, 세미콜론, 2011. 

가구회사 디자이너,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지금은 강단에 서고 있는 저자의 안목이 돋보이는 책이다. 의자와 인체공학, 대량생산 시스템의 영향, 실험적인 디자인의 의자들, 의자의 정치학에 대해서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야기를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의자와 신체의 관계, 인간의 자세, 노동과의 관계 등 의자의 인류학적, 사회사적 의미가 새롭게 보인다. 의자를 통해 인간을 보는 작업에 흥미가 없는 독자일지라도, 다만 순수하게 미학적인 관점에서 눈을 즐겁게 해 주는 풍부한 도판을 감상할 수 있다. 

여러모로 만듦새가 좋은 책이라 만약 평점을 매긴다면 별 다섯 개에 하나 두 개 더 추가하고 싶다.



의자의 다리가 네 개라는 고정관념를 깨는 한 다리 의자, 앉기와 서기 사이의 동작을 지지해주는 구조이다. 서서 일하는 서비스업 노동자를 위해 제공한다면 좁은 공간에서도 효율적인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좋겠다. 




간결한 구조로 미니멀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울름 의자. 울름 조형학교에서 실제로 쓰였다고 한다. 같은 디자인의 의자를 지금도 자노타 사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판매가격은 550달러에 달한다고 하니 의자 계의 고전 명품으로 인정받은 모양이다. 





의자에 앉은 채 몸을 뒤로 젖히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흔들의자 겸용의 사각의자. 가볍게 뒤로 젖혀 흔들흔들 즐기다 보면 다시 정자세로 돌아오기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재미있는 디자인이다.









2. 세상 모든 책장, 알렉스 존슨, 김미란 옮김, 위즈덤스타일, 2013.

전형적인 형태에서 벗어난 다양한 책장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책장에 대한 블로그 (http://theblogonthebookshelf.blogspot.com)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가 기발한 책장들을 소개한다.





사다리 모양으로 단순한 구조의 책장. 조금 불안해 보이지만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지만 않는다면 안정적일 듯.




책 모양으로 디자인된 목재를 조립해서 책을 꽂아두면 책 더미를 만들 수 있다!



발트해의 자작나무로 조각한 세상에 하나 뿐인 책장이다.


높은 곳의 책을 쉽게 뺄 수 있게 계단 형으로 설계된 책장이다. 문짝 달지 않고 쓴다면 완전 편리할 듯.



책이 붕 떠있는 느낌을 주도록 만든 예술적인 구조의 책장. 하지만 빽빽하게 책을 쌓아두어서 빈 공간이 사라진다면 조형미를 느끼기 어려울 것 같다.


정말로 공중에 떠 있는 모양의 책더미 선반도 있다. 책으로 선반을 가려버리는 디자인이 무척 재미있다.


캣워크 기능을 더한 멋진 책장!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 이란 제목의 작품. 읽지 않은 책의 무게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덧. 구글의 블로그 서비스는 아이폰과 조합이 좋지 않은 것일까? 이미지 삽입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몇 차례 수정해 보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저 모양으로 업로드되고... 아, 몰라. ㅠㅠ)

2013년 7월 15일 월요일

한강, 희랍어 시간.

한강, 희랍어 시간, 문학과지성사

"눈물이 흘렀던 길에 지도를 그려뒀더라면. 
말이 흘러나왔던 길에 바늘 자국을, 핏자국이라도 새겨뒀더라면.

하지만 너무 끔찍한 길이었어.
혀와 목구멍보다 깊은 곳에서 그녀는 중얼거린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남편과 이혼하고 아들의 양육권마저 빼앗긴 여자는 실어증의 재발로 직업마저 포기했다. 말하지 못하는 여자, 그래서 울지도 못하는 여자는 말을 되찾기 위해 가장 낯선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희랍어 수업, 여자는 집요하게 정교한 문법체계를 가진 고대의 언어를 바라본다. 그녀는 희랍어 문자, 그 형상들을 소리내어 읽을 수 없다. 

이야기는 다른 감각을 잃은 사람들의 관점으로 넘어간다. 청력을 잃은 여자 목수에게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희랍어 강사가 편지를 적어 보낸다. 눈이 멀어 가는 남자는 남의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을 보고 소리를 읽어내는 여자와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여자는 열일곱 소년이었던 남자의 첫 사랑이었고 그는 자기의 눈이 완전히 멀어 버린 뒤 여자와 소통할 방법이 없을까 두려워한다. 여자는 남자를 거부했고 남자의 사과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들은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어둠을 향해 걸어가는 남자는 침묵 속에 살아가는 여자에게 자신의 어릴 적 어리석음과 상실의 고통을 담담하게 털어 놓는다. 여자의 회신 여부는 알 수 없다.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 그들은 상실한 감각 때문에 아프다. 또는 아프기 때문에 감각기관을 잃었다. 

말을 잃은 여자가 잃은 것은 발성의 기능이 아니라 소통의 의지였다. 그녀가 세상에서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마지막 끈인 아이는 이혼하고 양육권을 가져가버린 남편에 의해 미국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여자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단 한 마디도 항의하지 못하고 다시 침묵으로 가라 앉았다. 침묵 속에는 오랜 증오와 고통이 가득차 있었다. 

"아무것도 아물지 않았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여자는 이제 아무도 쓰지 않는 언어인 희랍어로 글을 쓴다. 땅에 누워 있는 여자, 죽어버린 또는 죽음을 기다리는 여자에 대한 시. 희랍어를 가르치는 남자는 여자의 희랍어 시에 자연스레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여자는 자기의 마지막 목소리인 희랍어 문자를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여자는 도망쳤다. 남자는 여자를 따라가 사과했다. 남자는 여자가 침묵 속에 살았던 그의 첫 사랑 같이 소리를 듣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남자의 사과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침묵하는 여자와 시야가 어두워지는 남자는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밀어내지도 않았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희랍어 시간에 강사와 학생으로 만났고 일정한 거리를 두며 서로의 존재를 인식했다. 그들은 조금씩 변했다. 언어화되지 않은 미묘한 변화를 통해 조금씩 닮아갔다. 

"이 세계는 덧없고 아름답지요, 라고 그가 말한다.
하지만 이 덧없고 아름다운 세계가 아니라, 영원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원했던 거지요, 플라톤은."

아름다움을 시각으로 식별해내지 못하는 남자는 현실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절대적 이상-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을 설명한다. 그의 첫 사랑 귀머거리 목수 여자가 믿고 있는 선량한 신은 언제나 우리 인간들을 보며 슬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만일 소멸의 이데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깨끗하고 선하고 숭고한 소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른 일곱 살에 죽은 그의 친구 요하임 그룬델은 죽음과 소멸에는 이데아가 없다고 단언했다. 영원한 것이 없는 이 세상에서 그는 다시 생기거나 사라지지 않는 이데아와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욕망했다. 

완전한 침묵 속에서도 여자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남자는 진리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침묵 속에서 어둠 속에서 서로를 찾아냈다. 보르헤스의 말 대로 세계는 환이고 삶은 꿈일지도 모른다. 아른한 세상에서 외로운 영혼이 서로를 찾았다. 그것은 죽은 언어를 배우는 일만큼 덧없지만 문법같이 정교하게 진행되었으며 소통에 대한 갈망은 언제나 그렇듯이 절박했다. 



2013년 7월 10일 수요일

채식주의자.

한강, 채식주의자, 창비, 2007.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세 편의 이야기가 각기 다른 화자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영혜의 남편은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된 아내의 변화를 관찰하고, 영혜의 형부는 그의 아내로부터 영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영혜를 갈망하며, 영혜의 언니 인혜는 완전히 미쳐버린 여동생의 마지막을 지킨다.

영혜가 왜 고기를 먹지 않는지, 어째서 악몽을 꾸는지, 그녀의 몽고반점은 왜 사라지지 않았는지, 온몸에 꽃을 그린 사람을 만지며 젖어버린 이유는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가 나무가 되려 하는 이유는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언니. ......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영혜는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서서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물구나무선 채 햇빛을 쬐며 사타구나 사이에서 꽃을 피운다. 그렇게 그녀는 동물에서 벗어나려 한다. 나무가 된다.

채식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는 사실을 꽤 오래 잊고 있었다. 만약 내 아버지가 나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게 하려고 나를 때렸다면 나 역시 삶에 대한 희망을 버렸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나에게 그런 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자해하는 대신 상대를 공격할 것이다. 하지만 영혜는, 그 순하고 부드러운 여자는, 소통을 체념하고 이해받기를 포기하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버렸다.

"기껏 해칠 수 있는 건 네 몸이지.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그거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

인간의 삶이란 이토록 슬프고 외로운 것이었다. 동물을 죽여 그 시체를 먹고, 다른 사람을 억지로 먹이고 보살피는 것, 또는 꿈을 꾸느라 잠들지 못하고, 나무가 되기 위해, 인간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반복하는 것.

여자는 비인간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녀가 자살했다거나 자기 삶을 돌보지 않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가치 없는 소모가 인생의 전부라면 그것을 종결할 권한마저 빼앗아가는 일은 가장 무자비한 폭력이다. 영혜는 브래지어로 옭죄지 않은 자기의 젖가슴을 좋아했다. 젖가슴으로는 아무 것도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무가 되었다.

종교와 순수와 탐미.

비가 거세게 내리는 날 지하철을 타고 가다 엔도 슈샤쿠의 <깊은 강>이 떠올랐다.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지하철에 있었다. 책을 덮어놓을 수가 없는 대목이 연이어져 몇 개의 역을 지나치고 말았고 결국 통곡하듯 울었다. 그 날의 기분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작가 이름과 책 제목은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하고 있을 법한 선배언니가 생각났다. 전화를 걸어 이러이러한 내용의 책을 기억하고 있는지를 묻자 언니는 책 제목과 작가 이름을 알려주고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면 그때 같지 않을 걸." 우리가 학생이었던 시절에도 언니가 이 책에 대해 비슷한 표현을 썼던 기억이 났다. 다시 보면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평이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작품은 실망스러운 쪽에 속할 것이다. 형식이든 내용이든 새로울만한... 것을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깊은 강이 주었던 울림은 신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다룬 흔한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작품의 주인공은 진지한 가톨릭 신자였고 범신론자였으며 깊은 강 처럼 흐르는 사랑 외에 어떤 물살에도 순응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엔도 슈샤쿠의 책에 담겨있난 신과 사랑은 미시마 유키오와 다니자키 준이치로 같은 일본의 탐미주의 작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종교색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색깔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밀도는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의 예에서 보듯 가장 자기중심적인 작가들의 유미적 태도에서 비롯한 종교적 열망이란 임시방편의 도피처와 같아 믿음직하지 않다. 분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골드문트의 이야기에도 비슷한 메시지가 있었는데...
 
 

2013년 6월 12일 수요일

복수라는 이름.

갑자기 목포에서 전화가 왔다. "복수언니가 네 주소를 알고 싶다는구나......" (중략) 처음, 난, 정말 놀랐다. 복수언니 이름이 복수라는 것이 아닌가. 목포언니가 살며시 말해주었다.

딸이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경우, 우린 그 딸에게 '복수'라는 이름을 부여한단다.

ㅡ 여지선, 문학, 그림을 품다, 푸른사상, 2010, p.39.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

서로에게 행복한 사랑이라는 강력한 교류와 친밀감을 모르고 인생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놓친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무의식적으로 이를 느끼고, 그로 인한 실망감 때문에 질투나 압박감, 잔인성을 띠게 된다.
 ㅡ 버틀란드 러셀
그래서일까, 애정의 밀도가 낮은 사람은 두렵다.


2013년 6월 6일 목요일

문학과 현실.

커트 보네거트라는 미국 작가가 있다. 2차세계대전 때 참전했는데 독일군한테 포로로 잡혀서 드레스덴의 수용소에 갖혀 있었다고 한다. 드레스덴 폭격, 하늘에서 소이탄이 대량으로 쏟아졌고 오랜 역사를 가진 이 도시는 통째로 불타버렸다. 사망자 수는 공식적으로 3만명 이상, 하지만 이 도시로 피난을 온 피난민의 수는 집계가 어려워서 여기저기 말이 다르다. 승리한 전쟁의 대학살에 대한 기록은 너무나 많으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미군과 영국군이 폭격을 가했던 살육의 밤에 미군포로로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보네거트는 <제 5 도살장>을 썼다.

이 작품을 보면 미래나 희망이라는 말은 환상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네거트 스타일의 블랙유머가 마음에 든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이런 유머에 정말로 취약하다. 읽을 때도 섬뜩한 기분이고 나중에 다시 생각해볼 때에는 내장이 썰리는 것 같은 격통이 밀려온다. "그렇게 가는 거지" 이런 문장은 가슴으로 쑥 들어와 무릎을 꿇고 울게 만든다. 그동안 인류를 덮친 수많은 자연재해와 인간이 만들어낸 전쟁과 학살의 광기를 피해 이제까지 내가 살아남은 이유는 무언가를 잘 해냈거나 특별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다만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과연 행운일까?) 그러나 어떤 이유로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다면 나도 이 문장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가는 거지.

그렇게 가버리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저 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학으로 도피하지는 말자.

트위터에서 황규관‏@gyugwan 선생님이 쓰신 글을 보았다.

"문학의 뒤에 숨지 말자. 문학은 현실에 대한 방패가 아니라 현실이 구성하는 세계가 아니었던가."

이 말씀에 대해 이런 설명을 더하셨다.

"작가가 현실과 대면할 때는 맨몸으로 하라는 의미였습니다. 문학적 해석과 표현은 그 직접적 대면 이후에 가능한 무엇이니까요."

(수정)

2013년 6월 4일 화요일

법구경.

처음으로 구해본 불경은 법정스님이 번역하신 법구경-진리의 말씀, 숫타니파타 두 권이었다.
둘 다 이레출판사에서 나온 것이고 서세옥의 그림이 표지에 들어가 있었다.
게시판에서 관련 글을 보고 오랜만에 책을 펼쳐보았다. 두 구절을 옮겨본다.


스스로 자신을 일깨우라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라
자신을 지키고 반성하면
그대는 평화롭게 살게 되리라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이고
자기야말로 자신의 의지할 곳
그러니 말장수가 좋은 말을 다루듯이
자기 자신을 잘 다루라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한 첫 문장.

"Whenever you feel like criticizing any one," he told me, "just remember that all the people in this world haven't had the advantages that you've had"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지면 이 말을 명심해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너처럼 혜택을 누리고 사는 건 아니란다." - 더 클래식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 민음사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 문학동네

(번역본 비교 출처 http://blog.daum.net/bonokensin/6759370)

2013년 5월 30일 목요일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에드워드 사이드는 자신이 "아도르노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추종자"라고 말년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말년의 양식'이란 용어 역시 아도르노의 저작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사이드는 토마스 만, R.슈트라우스, 장 주네, 람페두사, 카바디 등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이 예술가들의 '말년성'에 주목한다.

말년성은 한 예술가가 평생에 걸쳐 이룩한 미적 노력의 완성이다. 이러한 미적 노력이 반드시 보기 좋은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타협할 수 없는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이 말년이 되어서야 폭발적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말년성은 필연적으로 예술가의 사망 이후에 발견되는 특성인데, 이 책에서 다루는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말년적 형식을 창조했다. (책에서 언급하지 않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경우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년성은 최후의 저항이며 망명의 형식이다. 예술가가 사망한 뒤에도 예술작품이 전해질 것이라는 미래를 전제했을 때, 예술가는 현재의 지배체제 또는 정상성을 넘어서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럽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물이 예술가 사후의 사람들에게는 비극적인 저항과 저항의 '재미'를 전해준다.

그(에드워드 사이드)가 음악의 "과묵함" "암시적 침묵"이라고 부른 것이야말로 음악의 가장 큰 즐거움이며, 정치적으로나 다른 면으로나 절망 가득한 곳에서 피어오르는 한 줄기 희망이다. 그것은 "불안정한 망명의 영토"이며, 거기서 우리는 "먼저 무엇이 파악될 수 없는지 진실로 파악한 다음, 그래도 어떻게든 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마이클 우드 / 에드워드 사이드,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장호연 옮김, 마티, 2008.)에 수록된 서문의 마지막 문단.

아도르노는 배제된 것에 대해 예술가가 마지막으로 관심을 보인 결과물을 '파국적 예술작품'이라 불렀다. 예술의 역사에서 말년의 작품은 파국이지만, 말년성은 분열의 원동력이 되어 영원히 예술을 시간 속에 남겨둔다. 그 불안정한 망명의 영토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예술은 다만 환상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가야할 길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말년의 양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