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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2일 금요일

목수의 예술.

그는 나무로 가구를 만든다. 나무를 다루는 그의 손길은 부드럽다. 재단한 나무를 옮길 때면 어린아이를 안듯이 조심스레 끌어 안는다. 나무판을 톱으로 잘라 모양을 만들 때, 사포질을 해서 표면을 다듬을 때, 심지어 날카로운 끌로 찍어낼 때 조차도 그의 손은 다정하게 나무를 쓰다듬는다. 그는 가구를 주문하는 손님을 대할 때 보다 나무를 대할 때 더 친절하다.

가구 손잡이를 파거나 곡선의 무늬를 넣거나 홈을 파기 위해서 트리머를 사용할 때 그는 몸을 낮추고 나뭇결과 강철날이 만나는 부분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흔들림 없이 민첩하게 팔을 뻗어 나무를 긁어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굵은 나뭇밥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강철날의 움직임이 멈춘 다. 마침내 그가 원하는 모습이 나왔는지 확인하려 톱밥을 불어내는 그의 입술에는 웃음이 담겨 있다.

나무조각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구멍을 파고 도웰핀이나 비스킷을 집어넣은 뒤 결합부위가 꼭 맞물리게 하려고 클램프로 사이를 죄어 놓을 때 그의 눈이 빛난다. 고무망치를 들고 톡톡 가볍게 두드리며 정확한 교차점을 찾아낸다. 그가 잘라서 다듬어 놓은 나무들은 순종적이다. 그의 손가락이 움켜쥐는 대로 그가 처음 그려놓은 도면과 같은 모양을 찾아 나간다.

나무에 기름을 먹이기 위해 그의 열 손가락이 구석구석 표면을 쓰다듬는 모습은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성스럽게 기름을 먹이고 잠시 기다린 뒤 얼룩이 남지 않도록 겉을 닦아 내는데 이때 기름이 마르며 피어나는 냄새는 기묘한 흥분을 일으킨다. 가장 고운 사포를 쥐고 마무리 작업을 할 때 그는 사포를 들지 않은 왼손으로 끝없이 나무표면을 어루만진다.

숲에 목수가 나타나면 나무들이 떨고 목수가 먹줄을 튕기면 나무가 고개를 숙인다고 했던가. 나무를 지배하는 목수, 그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는 아주 천천히 일하고 꼼꼼하게 살핀다. 작업실에서 그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용을 감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음악은 전기톱과 대패와 사포가 움직이는 모터 소리, 세상에서 가장 거친 예술이다. 그런 공연이 매일 그의 공방에서 펼쳐진다.


2013년 9월 24일 화요일

카페에 그림을 그렸다.

카페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시멘트 노출된 바닥에 수성페인트로 쓱쓱 드로잉을 했다. 이제  그림이 다 마르면 그 위에 에폭시로 코팅을 해서 마무리할 예정이다. 그러면 반짝반짝 예쁘겠지.
 
카페 로고와 아이디어 스케치
아이디어가 이 정도 수준이었다능...

카페 들어가는 입구

큼지막한 로고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원두...

핸드 그라인더로 시작합니다.

드립커피를 내리기도 하고요.

프렌치프레스로 우려내도 맛있고요.

하트가 뿅뿅 날아다니는 커피를 마셔보아요.
 
 
바닥에 림 그리는 일은 무척 즐거웠다. 콘크리트 벽에 벽화를 그리는 것과는 많이 다른 작업이었다. 시멘트 바닥이 무척 차갑고 가루가 까끌거려서 조금 고생스러웠다. 붓질을 하다 보니 안료에 시멘트 가루가 섞여서 결국 군데군데 얼룩이 남아 수정하느라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쨌든 귀여워서 맘에 든다.
 
카페 인테리어 소품으로 나무 조각품을 배치하려고 한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줄톱으로 나무판 오려내는 방법을 배웠다. 이 작업이 굉장히 재미있어서 원래 벽화로 처리할까 했던 부분을 조각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아직 색칠하기 전의 나무 글씨 조각.

한쪽면을 색칠한 판재를 오려서 컵 모양을 만들었다.
스무개 정도 만들어서 주르르 늘어 놓아야지.
 
 
내 카페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면서 카페 소개글도 썼다.
 
 
"Mit Kaffee" 밋 커피는 독일어로 "커피와 함께"라는 뜻입이다.

독일에 커피가 처음 전해졌을 때 커피를 즐겼던 사람들은 모두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파리, 로마, 빈에서는 남성들이 카페에 모여 담소를 나누었지만, 독일의 남성들은 동네 호프집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고 합니다. 남편을 술집에 빼앗긴 독일 여성들이 모이던 장소가 바로 커피하우스입니다.

그래서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진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낸 것과 달리 독일식 커피는 드립커피 맛과 향이 부드러운 드립커피를 중심으로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멜리타 벤츠 여사가 세계 최초로 종이필터 드리퍼를 개발했고 이를 시작으로 커피 드리퍼 브랜드 멜리타가 탄생했습니다. 전세계에 보급된 비스듬한 빗면을 가진 도자기 드리퍼는 커피에 대한 독일 여성의 사랑을 보여주는 제품입니다.

미국의 커피 역사에도 독일식 커피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로 차를 마시던 미국에서 보스턴 차 사건을 계기로 독립을 하면서 미국의 차 문화는 커피 문화로 변화했습니다. 차를 마시듯 연하고 부드러운 커피를 마시게 되면서 독일식의 드립커피가 미국에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전세계에서 즐겨마시는 아메리칸 스타일 커피의 원조는 바로 독일의 커피인 셈입니다.

저희 밋 커피는 아로마가 풍부한 블랜드 드립커피와 신선한 에스프레소 베이스 커피 그리고 다양한 차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커피하우스와 같이 고객님들이 즐겁고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 오픈 예정, 무사히 끝나기를...

2013년 8월 1일 목요일

목공에 대한 책.

1. 철천지의 친환경 목공 만들기, 김민석, 이비컴, 2006.

DIY 관련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저자가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목공용구와 간단한 소품만들기 예시를 보여주고, 인터넷으로 취합된 회원 작품을 소개한다. 작품의 난이도가 들쭉날쭉하지만 다양한 취향의 개성있는 소품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절판)
                                                 


2. (왕초보 지나 아빠의) 무턱대고 DIY, 유재헌, 김민석 공저, 이비컴, 2009.

위 사이트에서 활동한 회원이 가족과 아이를 위해 목공 DIY에 빠져들어 만들어낸 귀여운 작품들이 소개된 책이다. 폐목재나 헌 가구를 활용한 리폼작업, 가정용 소품과 소가구 위주의 예시, 전반적으로 빈티지 느낌의 디자인이 통일감 있다. 공구 사용법은 작품 예시 사이에 아주 간략하게 삽입되어 있다. 백과사전 식의 편집이 아니라 잡지를 보듯 편하게 예시를 참고하기 좋을 듯.

알라딘 링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450135



                                                 


3. (DIY 내가 만든) 우리집 가구, 박종석, 소리들, 2007.

목공용 판재와 부자재, 공구, 페인트 등의 사용법을 간단히 설명한 뒤, 작은 소품이나 가구들을 만드는 방법을 상세항 과정샷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DIY관련 책자의 기본 포맷이다.) 작품 예시 사이사이에 공구의 상세 사용법을 팁, 잔소리 등의 박스에 넣어 섞어두어서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려면 반드시 통독이 필요하다. 편집과 구성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아기목마, 주방용 요리책 받침대 등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알라딘 링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059230


                                                 


4. 아이들을 위한 목공 DIY, 양슈쥐엔, 혜지원, 2008.

전동 직소, 트리머, 샌더, 드릴 등 전동 목공구의 사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기구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가 참고하기 좋다. 전체적으로 구성이 깔끔해서 자료가 한 눈에 들어온다. 책 제목이 보여주듯 아이들 방을 꾸미기 적절한 가구와 소품을 제작하는 방법 위주로 예시가 담겨있다. 작은 목제 장난감부터 수납용 가구까지 다양한데 디자인에 통일감이 있어서 이 스타일이 마음에 드는 독자라면 그대로 따라해도 좋을 듯.

알라딘 링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795719


                                                 


5. 가구제작 및 목공예 기능사 - 필기.실기시험대비, 김한희, 이은오, 조항기 공저, 일진사, 2010.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실시하는 가구제작 기능사목공예 기능사 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수험서. 본문은 제도법, 목곡 수공구와 기계 공작법, 목재와 철물 등의 재료 등에 대한 교과서식 설명과 각 장에 해당하는 출제 예상문제(4지선다형 객관식문항)가 수록되어 있다. 보통 이런 자격검정은 문제은행식으로 출제되기 때문에 이 책을 기본으로 공부하면 시험대비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점을 수색해본 것은 아니지만 이 책 말고 마땅히 볼만한 다른 수험서가 없는 듯 싶다.) 앞부분의 내용은 거의 모르는 내용이라 그럭저럭 흥미로웠지만 뒷부분의 조형예술과 공예사, 산업안전 등은 겉핥기 식으로 매우 간략하게 다룬다.

내 경우에는 자격시험에 별 관심 없이 목공에 관련된 책을 구하다가 작품제작 예시 위주의 서적이 아니라 교과서식 학습서도 보고 싶어져 구입했는데, 쓸모를 기대하며 한 장 씩 읽어 나가며 조금씩 실망하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만든 책이고 업데이트 되는 내용은 그리 많지 않은 듯, 내가 다니는 목공방에서 자주 사용하는 최신 공구들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고 대신 아교접착제 만드는 법이라든가, 코르크 채취법 같은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 제도권 교육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일깨워준다. 쓸모 없는 정보를 가려내는 것은 학습자 개인이 해야 할 몫이니까.

알라딘 링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290842X


                                                 

6. 쉽게 배우는 간단 목공 작품 100 - 수납 선반부터 가든 가구까지, <두파!> 편집부, 김남미 옮김, 한즈미디어, 2012.

다양한 형태의 의자, 테이블, 선반, 책장 등 100개의 작품을 소개하는 책이다. 전체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디자인의 목가구가 아니라 만들기 쉽고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 많아서 초보자도 쉽게 따라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시를 설명하는 본문의 구성도 마음에 든다. 딱 한 페이지에 한 작품의 구조와 도면의 치수를 제시하고 제작법 등을 설명한다. 초보자 입장에서 무언가 간단하게 뚝딱 만들어볼까~ 하는 기분이 들 때 참고하기 좋을 듯.

알라딘 링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754242

                                                 

7. 목공 DIY - 가구도 Hand-made 시대, 주택문화사 편집부, 주택문화사, 2007.

아주 상세하게 작품제작의 과정을 사진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목공을 혼자 배우는 독학자 같은 사람에게 필요하겠다. 그러나 반대로 보자면 당연히 책의 분량 상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6번의 간단목공작품과 기획의도가 정 반대에 있는 책이라고 보면 되겠다.) 꼼꼼한 설명은 무척 도움이 되고 상세한 설계도면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러나 가로로 넓은 판형은 펼쳐보기 너무 괴로웠다. 디자이너가 왜 이랬던 걸까 따져묻고 싶을 정도이지만 예의와 염치를 아는 인간이므로 그러지 않았다. 미루어 짐작해보자면 아마도 최초에 이 콘텐츠가 만들어졌을 때는 인터넷에 기반하여 배포되었을 것이고, 책의 저자 나 편집자가 모니터의 가로화면을 고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8. 서양 가구의 역사(살림지식총서 424), 공혜원, 살림, 2012.

서양 가구사를 간략히 살펴보기 위해 구입. 아직 시작하지는 못했다. 한국 전통가구과 중국, 일본가구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다뤄주는 책이 있다면 좋겠다. 가구의 역사를 깊게 파고들 계획은 없지만 조금쯤은 알고 싶어서...

알라딘 링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218647

                                                 


(이후로 추가할 예정)


                                                 

2013년 7월 27일 토요일

내가 만든 나무 탁자.

무엇이든 실용적인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아주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더 낫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회화나 문학, 신화 같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떠날 마음은 없었으나, 그 속이 너무나 깊어 아무리 헤집어도 손에 잡히지 않는 상황이 지겹기도 했다. 현실적인 삶에서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기능을 가진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느꼈다.

의복부터 시작했다. 천을 자르고 바느질을 했다. 옷과 가방을 수선했고 소품을 만들었다. 때로는 대바늘이나 코바늘을 들고 뜨개질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물이 디자이너 부띠끄 제품 만큼 근사할 리는 없고 그 정도의 미적 성취를 기대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의생활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을 익히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만든 것에 대한 애착이 생겨버리면 객관적 평가와 무관한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에 바느질과 뜨개질을 배우고 확실히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예전부터 늘 좋아했다. 최근에는 채식으로 요리하는 일에 좀 더 진지해졌다. 두유가 유제품을 대체할 수 있고, 유부가 어묵을 대체할 수 있으며, 표고버섯이 붉은 살코기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기존의 레시피를 수정해 나갔다.(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그러다 요리가 단순해지기 시작했다. 잡채에 들어가는 재료가 줄어들다가 마침내 당면도 빠진 야채 볶음이 되었다. 찐 감자, 볶은 당근, 구운 마늘 같은 것으로 한 끼를 해결했다. 이쯤 되어버리면 요리라기보다 조리에 가까운 수준, 하지만 제철 식재료를 단순하게 조리해서 먹을 때 가장 맛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만족스럽다.

그 다음으로 주거 문제.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공사현장의 일용직 노동자가 되는 경험이라도 가능할 텐데 어떤 현장에서도 여자 인부를 원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일단 이론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대략의 건축구조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었는데 만만한 책이 보이질 않아서 실내건축기사 자격증 교재를 샀다. 단조로운 수험서를 통해 포틀랜드 시멘트의 응결에는 보통 4~6시간이 걸린다는 것, 코르크판이 흡음판으로 쓰일 뿐 아니라 단열판으로도 쓰이는 내장재라는 것, 콘크리트 중에 거푸집 속에 미리 자갈을 넣고 모르타르를 주입하는 프리팩트 콘크리트란 특수 자재가 있다는 것, 벽돌쌓기에는 네덜란드식 영국식 프랑스식 등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주로 네덜란드 식의 벽돌쌓기로 모서리에 칠오토막을 쓴다는 것, 미역 같은 해초류를 건물의 미장 재료로 쓰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잡다한 지식을 써먹을 일은 전혀 없었다. 내 손으로 시멘트 한 포대도 구입해 본 적이 없는데 특수 시멘트의 종류와 사용법을 알아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고 개탄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로서는 전혀 쓸모 없는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인류 문명이 멸망할 때까지 벽돌이나 못의 규격 같은 단순한 사실들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만 같다. 쓸모 없지만 결코 변하지 않을 안전한 지식을 쌓아가는 일은, 마치 희랍어를 배우는 것 처럼 유쾌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런 공부가 전혀 쓸모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천장에 곰팡이가 피어난 것을 발견했을 때 결로현상의 원인과 대처방안을 알고 있어서 꽤나 위안이 되기도 했다. 비록 보수공사를 마친 뒤에도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사는 집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혼란과 공포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수험서 한 권을 읽은 보람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건축 제도법을 다루는 다른 수험서를 읽고 있다. 제도용구를 사용하는 방법, 컴파스와 자를 이용해 직선을 2등분 하는 방법, 직각을 3등분하는 방법, 원에 내접하는 정삼각형을 그리는 방법, 반대로 삼각형에 내접하는 원을 그리는 방법 따위를 흥미롭게 배워가고 있다. 원의 면적을 동심원으로 2등분하는 방법은 오 분 정도 들여다 보다 넘겨버렸다. 자격증 시험을 볼 계획은 없으므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은 가볍게 넘어가도 좋다.

내 평생에 컴파스와 자를 이용해 이런 작업을 해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T자와 먹줄펜을 들고 제도 작업을 하는 설계자는,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지 않고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쓰는 작가와 같이 멸종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2013년에 수공구를 이용한 제도를 배워서 뭐에 쓰겠는가? 하지만 언젠가는 쓸모가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상상해본다. 시골집 다락에서 그 집의 것이 아닌 설계도면이 불쑥 튀어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먼저 도면 오른쪽 하단의 표제란 정보를 찾아보고, 정투상도 읽는 방법을 회상하며 그 집의 모습을 상상해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 도면이 이웃 누구네 집의 것인지 알게 될 수도 있겠지. 오래된 자료를 해석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제도법 공부는 한자 공부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실용적인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최근에 시도했던 몇 가지는 가죽공예와 목공예이다. 가죽을 썰고 구명을 뚫고 바느질을 해서 소품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가죽제품을 수선하는 일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이 작업은 손질된 재료를 구입해서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예술적인 측면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무두질하는 기술을 배워보고 싶다. 

담배케이스와 머니클립 세트

담배와 라이터가 쏙 들어가는 크기

머니클립은 단순한 구조


목공예는 가죽공예에 필요한 목타프레스, 바느질용 포니 같은 공구를 만들기 위해서 우연히 시작했는데, 이 작업이 가죽공예보다 재미있다. 게다가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트리머로 모양을 다듬고, 드릴로 구멍을 뚫어 조각을 연결하고, 사포질을 해서 매끈하게 표면을 다듬는 과정 내내 향긋한 나무 냄새가 난다. 목재가 된 나무는 묵직하고 단단하다. 그러나 한참 손을 대고 있으면 부드럽고 따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평생 나무를 만진다면 참 좋겠다.



이것은 내가 만든 나무 탁자,
흔들리는 탁자를 뜯어낸 뒤 리폼한 것이다.




2013년 7월 23일 화요일

의자와 책장에 대한 책을 읽었다.

1. 의자의 재발견, 김상규, 세미콜론, 2011. 

가구회사 디자이너,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지금은 강단에 서고 있는 저자의 안목이 돋보이는 책이다. 의자와 인체공학, 대량생산 시스템의 영향, 실험적인 디자인의 의자들, 의자의 정치학에 대해서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야기를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의자와 신체의 관계, 인간의 자세, 노동과의 관계 등 의자의 인류학적, 사회사적 의미가 새롭게 보인다. 의자를 통해 인간을 보는 작업에 흥미가 없는 독자일지라도, 다만 순수하게 미학적인 관점에서 눈을 즐겁게 해 주는 풍부한 도판을 감상할 수 있다. 

여러모로 만듦새가 좋은 책이라 만약 평점을 매긴다면 별 다섯 개에 하나 두 개 더 추가하고 싶다.



의자의 다리가 네 개라는 고정관념를 깨는 한 다리 의자, 앉기와 서기 사이의 동작을 지지해주는 구조이다. 서서 일하는 서비스업 노동자를 위해 제공한다면 좁은 공간에서도 효율적인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좋겠다. 




간결한 구조로 미니멀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울름 의자. 울름 조형학교에서 실제로 쓰였다고 한다. 같은 디자인의 의자를 지금도 자노타 사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판매가격은 550달러에 달한다고 하니 의자 계의 고전 명품으로 인정받은 모양이다. 





의자에 앉은 채 몸을 뒤로 젖히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흔들의자 겸용의 사각의자. 가볍게 뒤로 젖혀 흔들흔들 즐기다 보면 다시 정자세로 돌아오기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재미있는 디자인이다.









2. 세상 모든 책장, 알렉스 존슨, 김미란 옮김, 위즈덤스타일, 2013.

전형적인 형태에서 벗어난 다양한 책장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책장에 대한 블로그 (http://theblogonthebookshelf.blogspot.com)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가 기발한 책장들을 소개한다.





사다리 모양으로 단순한 구조의 책장. 조금 불안해 보이지만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지만 않는다면 안정적일 듯.




책 모양으로 디자인된 목재를 조립해서 책을 꽂아두면 책 더미를 만들 수 있다!



발트해의 자작나무로 조각한 세상에 하나 뿐인 책장이다.


높은 곳의 책을 쉽게 뺄 수 있게 계단 형으로 설계된 책장이다. 문짝 달지 않고 쓴다면 완전 편리할 듯.



책이 붕 떠있는 느낌을 주도록 만든 예술적인 구조의 책장. 하지만 빽빽하게 책을 쌓아두어서 빈 공간이 사라진다면 조형미를 느끼기 어려울 것 같다.


정말로 공중에 떠 있는 모양의 책더미 선반도 있다. 책으로 선반을 가려버리는 디자인이 무척 재미있다.


캣워크 기능을 더한 멋진 책장!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 이란 제목의 작품. 읽지 않은 책의 무게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덧. 구글의 블로그 서비스는 아이폰과 조합이 좋지 않은 것일까? 이미지 삽입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몇 차례 수정해 보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저 모양으로 업로드되고... 아, 몰라.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