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함께 본 히로님이 이렇게 말했다. "영화 보기 전까지는 공장식 축산이라고 하면, 아주 청결하게 잘 관리되는 현대적인 축산업 시설이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공장식이라고 하는 말이 동물을 착취하는 그런 비윤리성을 은폐하는 네이밍인 것 같아요."
나와 은재님은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우리는 이 문제를 조금 먼저 알고 있어서 '공장식 축산'이란 용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굳혀가고 있었다. 어쩌면 막연하게 공장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성향의 사람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공장식 축산'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흰 가운을 입고 위생모를 쓴 작업자와 연구원을 떠올릴 것이다. 반대로 '농장 축산'이라는 단어에서는 더럽고 냄새나는 돼지우리 이미지가 연상될 수도 있다. 동물이 기계화된 공정에 순응할지라도 기계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은 잠시 외면하고 기계화된 대규모 축산업에 호의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공장 대신 농장"이라는 구호는 공허하게 들렸을 것이다.
어쨌든 히로님은 이 영화를 보고 한 주가 지나도록 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 공장식 축산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나니 고기를 먹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사무실 안에서 밥을 먹을 때는 살코기는 거의 먹을 일이 없었지만, 고기를 찾으며 풀을 먹는 것과 풀을 즐기며 풀을 먹는 것은 아주 다른 일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점심을 같이 먹고 오늘 같은 날은 저녁까지도 함께 먹곤 하는데, 식성이 같은 동지가 늘어나서 기쁘다.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관람한 모든 이들에게 채식의 복음이 전파되기를 기원한다.
4/20 오계위령제를 다녀와서...
비록 꽃놀이에 대한 기대는 4월의 어이없는 눈으로 인해 부서져버렸지만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날이었습니당.
동물위령제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을 위해 죽은 동물을 기리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입니다. 내가 내 돈 들여 키웠으니 어떻게 죽어도 상관 없다는 게 아니라, 그 생명도 귀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입니다.
얼마전 금천구에서 누렁이 새끼를 망치로 100번 넘겨 쳐서 죽인 사건이 있었지요. 기사에 댓글이 꽤 달렸길래 사람들의 인식이 어떨까 궁금해서 대충 읽어보았죠. 물론 그들의 잔인한 행위에 대해 비난하는 댓글이 많았습니다만, '그 개가 시끄럽게 굴어서 죽었다잖냐, 그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저럴 수 있다'는 글들이 꽤 눈에 띄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는거죠. 누렁이든 오계든 생명은 생명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겁니다. 어떤 생명도 어떤 이유에서든 그렇게 목숨을 잃어서는 안되는거죠. 어쩔수 없이 그 생명을 취해야하는 경우라면 적어도 그 생명을 기억하고 그 죽음이 헛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날 오계농장에서 본 25,6일쯤 된 병아리들이 생각납니다. 보통의 닭농장에서라면 벌써 육계로 도축되고도 남을 시간인데 이 녀석들은 손 위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아직 작고 삐약삐약 소리를 냅니다. 자연스러운 성장단계에서 생후 25일은 아직 유아기인겁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 자연스러운 성장단계를 거치고 본연의 습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떤 생명에게나 적용되는 사회..
그런 사회에 살고 싶습니다.
비록 꽃놀이에 대한 기대는 4월의 어이없는 눈으로 인해 부서져버렸지만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날이었습니당.
동물위령제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을 위해 죽은 동물을 기리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입니다. 내가 내 돈 들여 키웠으니 어떻게 죽어도 상관 없다는 게 아니라, 그 생명도 귀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입니다.
얼마전 금천구에서 누렁이 새끼를 망치로 100번 넘겨 쳐서 죽인 사건이 있었지요. 기사에 댓글이 꽤 달렸길래 사람들의 인식이 어떨까 궁금해서 대충 읽어보았죠. 물론 그들의 잔인한 행위에 대해 비난하는 댓글이 많았습니다만, '그 개가 시끄럽게 굴어서 죽었다잖냐, 그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저럴 수 있다'는 글들이 꽤 눈에 띄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는거죠. 누렁이든 오계든 생명은 생명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겁니다. 어떤 생명도 어떤 이유에서든 그렇게 목숨을 잃어서는 안되는거죠. 어쩔수 없이 그 생명을 취해야하는 경우라면 적어도 그 생명을 기억하고 그 죽음이 헛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날 오계농장에서 본 25,6일쯤 된 병아리들이 생각납니다. 보통의 닭농장에서라면 벌써 육계로 도축되고도 남을 시간인데 이 녀석들은 손 위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아직 작고 삐약삐약 소리를 냅니다. 자연스러운 성장단계에서 생후 25일은 아직 유아기인겁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 자연스러운 성장단계를 거치고 본연의 습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떤 생명에게나 적용되는 사회..
그런 사회에 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