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 고개를 들어 철탑을 보니 그곳에 사람이 있다. 유성기업 노조투쟁 힘내요.
"우리의 요구는 법과 원칙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지저분한 공작으로 합법적인 민주노조를 파괴한 자본가, 유성기업의 투쟁을 외면하는 언론에 분노한다. 철탑에서 백일을 보낸 노동자를 두고 귀족노조라는 말이 어찌 나오나? 사측이 용역깡패를 고용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사건을 불기소 처리한 처리한 검찰, 국민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도 자본의 편에 서 수수방관하는 정부의 합작이다. 어려운 상황에도 몸을 던져 싸우는 유성기업 노동자들 승리하세요.
2014년 2월 28일 금요일
2014년 1월 13일 월요일
독재자의 죽음과 시민들의 슬픔.
꽤 어릴 적 기억. 김일성이 죽었을 때 평양시민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와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을 뉴스에서 보았다. 그때 북한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연기하는 걸까 아니면 세뇌당한 걸까 그렇게 느꼈더랬다.
인민 모두를 잘 살게 해준 것도 아니고,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정치범으로 몰아서 잔혹하게 죽이고, 고문하고, 핍박하고, 일반인들이 진실을 알 수 없도록 언론을 통제하고 은폐하고 그랬는데, 그런 지도자가 죽었다고 슬퍼할 이유가 없잖아?
인민 모두를 잘 살게 해준 것도 아니고,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정치범으로 몰아서 잔혹하게 죽이고, 고문하고, 핍박하고, 일반인들이 진실을 알 수 없도록 언론을 통제하고 은폐하고 그랬는데, 그런 지도자가 죽었다고 슬퍼할 이유가 없잖아?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 일이지만 울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가 죽었을 때 서울시민들도 길거리로 나와 울었다고 한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울 엄마도 너무 슬프고 무서워서 울었다고 한다.
비록 독재자일지라도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의 마음음 북에서든 남에서든 진심이었을 것 같다. 나도 노짱 가셨을 때 엄청 울었으니까. 집단의 광기, 그런 슬픔의 체험을 공유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김일성이나 박정희에 대한 비판이 객관적으로 납득되기 어려울 것이다.
비록 독재자일지라도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의 마음음 북에서든 남에서든 진심이었을 것 같다. 나도 노짱 가셨을 때 엄청 울었으니까. 집단의 광기, 그런 슬픔의 체험을 공유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김일성이나 박정희에 대한 비판이 객관적으로 납득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박정희의 과오에 대해 그가 얼마나 왜곡되고 과대평가된 인물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씨알도 안 먹히는 데는 이유가 있지 싶다.
기업의 정부.
엠비가카가 광우병 위험 소고기를 수입한다 했을 때에도 식재료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들은 괴담을 유포한다는 오명을 써야 했다. 만약 그것이 안전한 소고기라면 광우병 발병 가능성이 없음을 수입업체가 입증해야 할 일인데도 말이다.
초고압 송전탑 인근에서 생활하는 일이 인간과 동식물에 유해한가의 문제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실제로 송전선로가 들어온 뒤 암 발병률과 사망률이 늘어난 마을이 있는데도 전자기파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건이 은폐된다.
인체에 유해할 가능성이 있는 사안에 대해 기업이 그 무해성을 입증하기 전까지 사업을 보류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어야 할 텐데 이상한 일이다.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깨달았다. 국민의 정부가 아니라 기업의 정부라는 자본주의 국가의 대전제를 인정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관련 기사 보고 울컥해서.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
● "쌍둥이 생명을 앗아간 '악마의 물질', 분탕질은 아직도…"
● 누가 죄 없는 엄마와 뱃속 아이를 죽였나
● "두 아이 낳아도 하늘로 간 두 아이가 그립다"
● 배구감독부터 의사까지…다양한 직업의 피해자들
● 두 번째 인생 꿈꾸던 그녀의 죽음, 책임은 누가?
● 산소통이 '절친'인 이들, 죽음보다 더한 고통
● 연이어 사망한 자매, 남은 가족들의 죄책감은…
● 가습기살균제가 앗아간 엄마, 남겨진 아이들의 고통
초고압 송전탑 인근에서 생활하는 일이 인간과 동식물에 유해한가의 문제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실제로 송전선로가 들어온 뒤 암 발병률과 사망률이 늘어난 마을이 있는데도 전자기파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건이 은폐된다.
인체에 유해할 가능성이 있는 사안에 대해 기업이 그 무해성을 입증하기 전까지 사업을 보류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어야 할 텐데 이상한 일이다.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깨달았다. 국민의 정부가 아니라 기업의 정부라는 자본주의 국가의 대전제를 인정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관련 기사 보고 울컥해서.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
● "쌍둥이 생명을 앗아간 '악마의 물질', 분탕질은 아직도…"
● 누가 죄 없는 엄마와 뱃속 아이를 죽였나
● "두 아이 낳아도 하늘로 간 두 아이가 그립다"
● 배구감독부터 의사까지…다양한 직업의 피해자들
● 두 번째 인생 꿈꾸던 그녀의 죽음, 책임은 누가?
● 산소통이 '절친'인 이들, 죽음보다 더한 고통
● 연이어 사망한 자매, 남은 가족들의 죄책감은…
● 가습기살균제가 앗아간 엄마, 남겨진 아이들의 고통
386세대에 대한 기억.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취업에 도움 안 되는 동아리 활동이란 것이 여전히 있었고 동아리 고학번 선배들이 종종 후배들에게 술을 사주러 학교에 왔었다.그중에는 술기운을 빌려 만만한 여자 후배를 성추행하거나 남자 후배 앞에서 쥐뿔만한 권위를 내세우며 군기를 잡았던 개차반 같은 놈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주 정상적인 어른들이었다.
경쟁적인 사회생활에 지쳐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후배들로부터 위로받기를 원했던 외로운 중년의 부장님, 법인카드를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공금을 가장 아름답게 유용할 방법을 찾아낸 과장님, 또는 조금 인상된 월급을 혼자 쓰기 미안해서인지 술자리를 통한 부의 재분배를 도모했던 대리님들. 직업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선배들은 너무 바빠서 연락하기 어려웠고 우리에게 술을 사주러 온 선배들은 꽤나 나이가 많았다. 다만 같은 동아리에 적을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선배들로부터 술을 많이도 얻어 마셨다.
선배들은 후배를 만나면 당신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특히 80년대 학번 선배들의 이야기가 스펙타클했다. 군부독재에 대한 분노와 도심에서 벌어진 전쟁 같은 시위에 대한 생생한 묘사, 스러져간 동지들에 대한 연민과 사회와 타협한 자신의 비굴함에 대한 고백, 대부분 이런 이야기였다. 각기 다른 선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의 구조와 전개, 상황묘사에 일치하는 점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군대에서의 경험담과 같이 집단의 체험이 누적된 뒤 개별 화자를 통해 극적인 요소가 부각되어 전해지는 일종의 민담 같았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 같이 들렸다.
옛 이야기가 전해주는 삶의 교훈은 언제나 우회적이다. 술을 따라주며 민주화투쟁의 경험을 전했던 선배들 중에 나에게 이러한 선택을 해야 한다거나 저러한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이는 없었으나 틀림 없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공짜 술이라니 세상에 그런 거 없다. 술자리를 통해서 아주 중요하고 분명한 가치들이 전해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술에 취해서 그것이 어떤 주의인지 굳이 따지지 않았다.
오늘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폭포 같이 우수수 떠올랐다. 화염병을 만들 때 적절한 연료의 용량이라든가 보도블럭을 손에 쥐기 좋은 크기로 깨는 방법 같이 실용적인 정보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을 지라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던 선배들의 표정은 분명히 기억났다. 재미 있는 옛 이야기를 들여주는 투로 말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 공포가 있었고 불안감과 죄의식도 있었다. 무용담 같이 과장된 이야기는 고통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 같다. 그런 투쟁 속에서 무척 아팠구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구나.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했던 거로구나. 이제 좀 알 것 같다.
+
교학사 교과서 철회과정이나 교육감 선거 같은 걸 보면 지금 40~50대 정도 된 학부모들 자식만은 올바르게 키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세대의 정치성향을 통계로 보면 영혼 없는 기회주의자가 훨씬 더 많지만, 그럼에도 자식에게는 왜곡되지 않은 이념에 근거한 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보인다. 부모가 되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바담풍 바람풍 하는 소리가 안타깝기도 한데, 한편으론 부모의 자기배반적 선택 덕분에 세상이 변해왔나 싶기도 하다.
++
경쟁적인 사회생활에 지쳐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후배들로부터 위로받기를 원했던 외로운 중년의 부장님, 법인카드를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공금을 가장 아름답게 유용할 방법을 찾아낸 과장님, 또는 조금 인상된 월급을 혼자 쓰기 미안해서인지 술자리를 통한 부의 재분배를 도모했던 대리님들. 직업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선배들은 너무 바빠서 연락하기 어려웠고 우리에게 술을 사주러 온 선배들은 꽤나 나이가 많았다. 다만 같은 동아리에 적을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선배들로부터 술을 많이도 얻어 마셨다.
선배들은 후배를 만나면 당신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특히 80년대 학번 선배들의 이야기가 스펙타클했다. 군부독재에 대한 분노와 도심에서 벌어진 전쟁 같은 시위에 대한 생생한 묘사, 스러져간 동지들에 대한 연민과 사회와 타협한 자신의 비굴함에 대한 고백, 대부분 이런 이야기였다. 각기 다른 선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의 구조와 전개, 상황묘사에 일치하는 점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군대에서의 경험담과 같이 집단의 체험이 누적된 뒤 개별 화자를 통해 극적인 요소가 부각되어 전해지는 일종의 민담 같았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 같이 들렸다.
옛 이야기가 전해주는 삶의 교훈은 언제나 우회적이다. 술을 따라주며 민주화투쟁의 경험을 전했던 선배들 중에 나에게 이러한 선택을 해야 한다거나 저러한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이는 없었으나 틀림 없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공짜 술이라니 세상에 그런 거 없다. 술자리를 통해서 아주 중요하고 분명한 가치들이 전해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술에 취해서 그것이 어떤 주의인지 굳이 따지지 않았다.
오늘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폭포 같이 우수수 떠올랐다. 화염병을 만들 때 적절한 연료의 용량이라든가 보도블럭을 손에 쥐기 좋은 크기로 깨는 방법 같이 실용적인 정보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을 지라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던 선배들의 표정은 분명히 기억났다. 재미 있는 옛 이야기를 들여주는 투로 말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 공포가 있었고 불안감과 죄의식도 있었다. 무용담 같이 과장된 이야기는 고통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 같다. 그런 투쟁 속에서 무척 아팠구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구나.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했던 거로구나. 이제 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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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교과서 철회과정이나 교육감 선거 같은 걸 보면 지금 40~50대 정도 된 학부모들 자식만은 올바르게 키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세대의 정치성향을 통계로 보면 영혼 없는 기회주의자가 훨씬 더 많지만, 그럼에도 자식에게는 왜곡되지 않은 이념에 근거한 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보인다. 부모가 되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바담풍 바람풍 하는 소리가 안타깝기도 한데, 한편으론 부모의 자기배반적 선택 덕분에 세상이 변해왔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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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0성 내 아이가 커서 나와 다른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는 거부감도 한몫 할 듯. 우리 부모들은 다 체험하고 있지만^^
김0철 왜 그런마음 있잖아요. 나는 똥물에서 살아도 자식은 맑을물에서 살게 하고싶은, 내 아들이 다니는 학교가 교학사 교과서 채택했다면, 발끈할 수 밖에 없을 듯. 그런 오염물을 아이가 접촉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
김0철 왜 그런마음 있잖아요. 나는 똥물에서 살아도 자식은 맑을물에서 살게 하고싶은, 내 아들이 다니는 학교가 교학사 교과서 채택했다면, 발끈할 수 밖에 없을 듯. 그런 오염물을 아이가 접촉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
2014년 1월 4일 토요일
추모.
신약성서를 다시 읽어보고 있다. 이번에는 새번역으로 읽는데 의미가 강렬하게 전해진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마태복음서 10:34-39 RNKSV)
시래기를 데치려고 솥을 불에 올려 두었다가 실수로 왼손 중지와 약지가 달궈진 뚜껑을 스쳤다. 깜짝 놀랐지. 손을 찬물에 식히는데 손가락이 한참동안 화끈거렸다. 불은 무서워.
어릴 때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보았던 기억이 났다. 자기 몸에 불을 지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 이유는 뭘까.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처벌하는 대신 자기를 희생시키는 방법을 택하다니, 그리 고통스럽게, 왜 그렇게 선량하신 건가요...
얼마 전 돌아가신 분의 이름은 차마 부르지도 못하겠다. 명복을 빕니다.
...
겨울 지나면 봄 오겠지.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마태복음서 10:34-39 RNKSV)
시래기를 데치려고 솥을 불에 올려 두었다가 실수로 왼손 중지와 약지가 달궈진 뚜껑을 스쳤다. 깜짝 놀랐지. 손을 찬물에 식히는데 손가락이 한참동안 화끈거렸다. 불은 무서워.
어릴 때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보았던 기억이 났다. 자기 몸에 불을 지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 이유는 뭘까.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처벌하는 대신 자기를 희생시키는 방법을 택하다니, 그리 고통스럽게, 왜 그렇게 선량하신 건가요...
얼마 전 돌아가신 분의 이름은 차마 부르지도 못하겠다. 명복을 빕니다.
...
겨울 지나면 봄 오겠지.
엽서 한 장 써주세요.
[밀양으로 엽서쓰기! ]
추위에도 한참 투쟁 중인 밀양 어르신들을 위해 밀양으로 엽서쓰기 프로젝트를 해보려고 합니다.
송전탑 건설에 대해 반대하는 연대와 지지, 중앙집중식 전기정책과 핵발전에 대한 분노, 투쟁 중에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애도, 겨울철 건강하게 보내시라는 염려, 사랑과 우애와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짧은 편지글을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당원님들 주위분들께도 동참을 권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 사람이 한 장의 엽서를 채워주셔도 좋고 여러 장 만들어서 모아주셔도 좋겠습니다. 엽서 형식도 좋고 편지나 카드 등 종이에 여러분의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해주세요. 노안이 오신 분들을 위해 글씨는 되도록 큼직하게 써주시고요.
엽서나 카드 편지 등을 보내주시면 1월 중으로 밀양으로 전달하도록 할게요. 성남 용인 인근에 계시는 분들은 연락주시면 제가 받으러 가겠습니다. 다른 지역 계시는 분들은 경기녹색당 사무처로 발송해주세요. (주소: 안양시 만안구 안양8동 성결대학로 22 남창빌딩 202호)
손글씨에 자신이 없다면 댓글로 달아주셔도 좋습니다. 저에게 따로 쪽지를 주셔도 좋고요. 인터넷에 남겨주신 글은 따로 인쇄해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밀양으로 가는 2차 탈핵 희망버스 일정이 1월 25일~26일로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함께 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연말연시 따듯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성남녹색당원 이동현 드림
2013년 12월 30일 월요일
총파업.
12.28. 총파업. 시청 광장. 십만명 정도 모였다고 한다. 나도 그 중 하나. 선배언니와 만나서 녹색당에 합류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남동생과 남자친구까지 합류하여 넷이 함께 어슬렁거렸다. 이렇게 깃발이 많이 날리는 대규모 집회는 정말 오랜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구호를 외칠 때, 박근혜는 사퇴하라, 라고 하면 조금 불편한 기분이 든다. 똑같은 이야기라도 사퇴 같이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를 사용하는 대신 물러나라 하면 될 것 같은데. 하야하라 같은 말도 그렇다. 좀 더 쉽고 편하게 쓰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 은하철도 999 주제곡을 따라 부르며 점심밥을 지어 먹었다. 애인님과 통화를 하다가 파업철회 관련 소식을 들었다. 민주당에 화가 났다. 남자친구 말대로 다 된 밥에 숟가락 하나 얹는 짓. 화내지 말고, 더 단단해져야겠다.
2013년 12월 26일 목요일
겨울의 메모.
겨울이 되면 지하철 탔을 때 엉덩이 닿는 부분이 따듯한 게 참 좋다.
겨울에는 버스 배차시간 벌어지는 상황이 참 괴롭다. 환승하려던 버스 배차시간이 12분 간격인데 주말이라 그런지 차가 꽤나 밀려서 20분이 지나서야 왔다. 추운데 덜덜 떨었더니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스쿠터나 자동차 운전할 때 버스에는 특히 양보를 해야겠다.
추운 계절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져도 좋은 분위기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정부에서 대놓고 민영화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자회사를 만들어 고수익 철도를 매각할지라도 '이것은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아웅 야동의 한 장면 같은 꼬라지가 맘에 들진 않지만, 적어도 민영화가 공공재를 사유화하려는 사악한 시도라는 사실에 많은 시민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겨울에는 버스 배차시간 벌어지는 상황이 참 괴롭다. 환승하려던 버스 배차시간이 12분 간격인데 주말이라 그런지 차가 꽤나 밀려서 20분이 지나서야 왔다. 추운데 덜덜 떨었더니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스쿠터나 자동차 운전할 때 버스에는 특히 양보를 해야겠다.
추운 계절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져도 좋은 분위기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정부에서 대놓고 민영화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자회사를 만들어 고수익 철도를 매각할지라도 '이것은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아웅 야동의 한 장면 같은 꼬라지가 맘에 들진 않지만, 적어도 민영화가 공공재를 사유화하려는 사악한 시도라는 사실에 많은 시민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변호인.
허지웅이 변호인에 대해 쓴 글을 읽었다. 이 영화가 재미있는 영화라는 결론에는 동의한다.
그는 한 편의 영화로 인해 다시금 촉발된 정치적 의견 대립이 피곤하고 끔찍한 일이라고 느끼는 모양이다. 그래, 진심을 담아 울먹이며 외치는 목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런 의문이 든다. 영화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재미만은 아니지 않나? 그 이상의 가치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조롱받아야 할까? 이 영화가 사회적 맥락 바깥에서 재미로 소비되기를 기대하는 이유는 뭘까?
아래는 허지웅의 글 마지막 부분.
사실 <변호인>을 감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단점은 영화 외부로부터 발견된다. <변호인>의 단점은 세상에 일베가 있다는 것이다. <변호인>의 단점은 세상에 여전히 비뚤어진 정의감만으로 모든 걸 재단하며 민폐를 끼치는 열성 노무현 팬덤이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공모자이자 공생관계인 저들은 <변호인>과 관련해서 역시 아무런 의미없는 소음만을 양산하며 논쟁의 가치가 없는 논쟁의 장을 세워 진영의 외벽을 쌓는데 골몰할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건 피곤한 노릇이다. 그 난잡한 판에 억지로 소환되는 건 더욱 끔찍한 일이다. 이 재미있는 영화가 재미를 찾는 관객들과 불필요한 소음없이 만나고 헤어지길 기대한다. 허지웅 (주간경향)
우리의 총파업.
(사진은 고동민 선생님 페이스북에서 가져옴)
12월 22일 일요일 오후, 정동에 갔다. 한참을 대치하던 중 경찰이 쏜 최루액을 얼굴에 맞았다. 정면으로 최루액을 맞은 것은 처음이었다. 무척 괴로웠다. 눈이 매워서 눈을 뜰 수가 없었고 콧물과 침이 줄줄 흘렀다. 다급하게 물로 캡사이신 성분을 씻어 내느라 옷이 젖어버렸다. 추운 날씨에 젖은 옷을 입은 채 버티려니 힘이 들었다.
시위현장에서 경찰과 대치할 때면 나는 언제나 공포를 느꼈다. 군복무를 대신해 이런 일을 해야만 하는 이들이 가엽고 안타깝다가도 그들의 눈빛에서 적개심이 보이는 순간 두려움에 몸이 떨린다. 검은 갑옷을 입고 줄지어 서 있는 젊은 남자들은 보통 나보다 키가 크고 건장하다. 그들은 조직적인 훈련을 받았을 테고 자기가 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지도 않을 것 같다. 이들을 대면하고 있으면 내가 한 없이 작고 약하게 느껴져서 괴롭다.
밀고 밀리는 몸싸움이 격해질 때는 그나마 감정적인 소모가 덜하다. 허나 요즘에는 체력적으로 버겁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여자라고 하더라도 젊은 나이니까 내 아버지 뻘 되는 아저씨들 보다야 낫겠지 싶어 앞에 나서는데 이런 저질체력으론 그닥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공포와 불안감을 가지고 앞에 서는 것이 전략적으로 보면 우리의 투쟁을 방해하는 일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한다.
정동대첩, 캡사이신 공격 이후로 겁이 나서 후방으로 빠져나왔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다고 편해지지는 않았다. 춥고 배가 고팠다. 어렸을 때 부당한 체벌을 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와 같이 분노와 저항감이 커지는 만큼 공포심과 무기력감도 커졌다. 결국 경찰이 해산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경찰대원들이 실수로 서로에게 캡사이신을 쏘고 말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다.
나도 저런 모습이었겠지.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본인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타자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이는구나. 비극의 희극화.
***
다음 날, 딴지일보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1) 맥심
2) 맥심
글을 읽으며 한참을 웃었다. 경찰이 체포영장만을 가지고 수배자가 있지도 않은 건물을 깨부수고 들어가 저항하던 노동자들을 연행해간 뒤 아무 성과 없이 돌아서는 와중에 사무실 비품을 도둑질하려 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 우리에게 비극적인 일을 희극적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없다면 어떤 저항도 계속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당신의 파업
정끝별
21세기는 파업의 시대가 아니라고
세계를 바꾸던 파업의 시대는 갔다고 나는 말했다파업 백 일을 맞아 서울역 광장에서 거리 축제를 열던 저녁
택시는 좀체 무악재를 넘지 못했다 금요일이었고 퇴근 시간이었고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늦저녁부터 비가 그칠 것이라고 기상 캐스터가 말했다
황사도 좀 씻겨 내리겠다고 택시 운전사가 말했다
너무 막힌다고 나는 말했다
지금은 실업천만이니
아카시아나 파업을 하는 시대라고
아카시아가 꿀을 만들지 않으면 꿀벌이 사라지고 꿀벌이 사라지면 농산물 대란이 일어날 것이니 파업을 하려면 아카시아쯤은 해야 한다고
얼마 전에는 꿀벌이 파업을 했는데
꿀벌 유충이 곰팡이를 뒤집어쓴 채 줄줄이 죽어나가 꿀벌이 멸종될지 모르고 아카시아 파업도 꿀벌 파업과 연대되어 있을 것이니 파업은 꿀벌이나 하는 거라고 나는 말했다.
폐쇄된 직장 앞에서 오지 않는 기자들을 향해 기자회견을 할 때 당신의 명분이 너무 옳은 것이어서
사장집 앞에서 샌드위치맨이 되어 1인 시위를 할 때 당신의 요구 조건이 너무 당연한 것이어서
낡은 메가폰을 들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 다짐할 때 당신의 외침이 너무 오래된 것어이서
당신의 파업은 위험천만이라고 나는 말했다
가다 서다 무악재를 넘어 서울역 광장에 도착했을 때
빗 속의 로커가 목이 마르도록 사막의 갈증을 외칠 때
덜 젖으려는 사람들이 잰걸음으로 광장을 빠져나갈 때
축제의 무대가 우산에 가리고 마이크까지 젖어버렸을 때
당신의 파업은 파업 중인 거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던 밤, 거리 행진을 뒤따르다
손에 든 촛불을 꺼뜨리지 않으려 비를 가리다
기어코 헛발을 내딛고 말았던
삔 발목을 주무르다 택시에 우산을 두고 내렸던
세기의 상현달이 반괄호처럼 먹구름에 꽂혀 있던
당신의 파업이 늦은 밤이었다
***
친구가 정끝별의 시 <당신의 파업>을 사진으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왔다. 2007년에 발표한 작품인데 지금 보아도 우리의 상황은 여전하다. 암울한 기분으로 친구에게 이 '여전함'에 대해 토로하자 친구는 '더함'을 말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하구나. 시간이 지나니 더한 거겠지.
우리는 어떤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고 있는지 규명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경찰의 폭력과 정부의 폭주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알고 있다. 아프고 화가 난다. 그러니까 웃으며 파업을 해야겠다.
고용주가 없는 프리랜서로서 파업에 동참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몇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토요일에 쉬기 위해서는 주중에 바쁘게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결심, 금요일 저녁에 원고의 수정요청이 들어온다면 무시하겠다는 다심, 추운 겨울날 길거리를 헤매다 보면 기관지염이 악화되리라는 자명한 사실.
나에게는 왕좌를 깨부술 능력이 없고,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재산을 팔아주겠노라 약속한 대통령을 저지할 힘이 없고, 어머니의 가면을 쓰고 조잘대는 교활한 코레일사장의 낯짝에 접근할 방법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내 몸을 움직여 거리로 나가는 것뿐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 어떤 상황이든 그 날 거리로 나가지 않는다면 나에게 변화를 요구할 자격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나마도 하지 않는다면 너무 부끄러운 일.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으며 모두의 행복은 연대와 우애와 연민과 웃음에서 출발한다. 나 하나는 작고 무력하지만 우리는 강하다. 이제는 보여줄 때가 됐다. 12월 28일, 노동을 멈추고 거리로 나와 함께 하기를 요청드린다.
2013년 12월 21일 토요일
녹색당에 대한, 지난 총선 때의 소개글.
2012. 4. 9. 월요일
이동현
총선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 선거의 막바지로 갈수록 여야의 공방은 치열해지고 조중동문 찌라시의 핑크빛 선전도 낯 뜨겁게 계속되고 있다. 이 혼탁한 시류에 맞서 국내유일의 민족정론지 딴지일보는 도도하게 자리를 지키며 깨어있는 시민들의 역사적 선택, 4.11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 필독 님의 ‘정당비례투표를 도와주마!’ 기사를 접한 독자 여러분 사이에서 녹색당과 청년당에 대한 소개요청이 쇄도했다. 이에 화답하여 녹색당을 소개하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드리고자 한다.
언제까지 핵발전소 돌릴 텐가?
옆 나라에서 핵발전소가 무너졌다. 옛날 옛적 얘기도 아니고 바로 일 년 전 일이다. 그동안 27만 후쿠시마 지역 주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열도 전체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원전사고 이후 삶은 불안의 연속이다. 기형아의 출산을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이 임신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당장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수산물이 없다.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찾기 위해 시민들이 스스로 방사능측정기를 들고 다니며 알아보고 있는데, 그 결과를 인터넷에 올리거나 하여 남들에게 알리면 불법이 된단다. 시민들의 입을 틀어막는다고 방사능 물질이 사라질 리 없는데 정부의 대책이 이렇다. 다른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사고였다. 사람이 성실하게 대비해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단 말이다. 일본 사람들이 미처 막지 못한 사고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막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느 마피아의 호연지기?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5~6.5리히터 규모의 지진에 버티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10년 주기로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으며, 5년 안에 6.0 이상의 지진이 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참고로 후쿠시마 원전의 내진설계 기준은 7.9였으나, 예상하지 못했던 강도 9의 지진에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한반도엔 대지진이 살금살금 피해가거나, 지진이 일어나도 모든 핵발전소가 지각판에 임플란트 박고 팔십 세까지 튼튼하게 서있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핵발전소에서 뿌리가 돋아나길 기대하는 대신, 그냥 이걸 안 해버리는 방법도 있다. 졸라 위험한 걸 안전하다고 우기지 말고 이제 그만하자. 낡은 핵발전소는 핵폭탄이다. 이것이 녹색당의 강령 1조다.
한반도의 지진 발생지역과 원자력발전소 위치
오른쪽 지도는 기상청 발표, 국내지진발생 추이(1978~2011년)
왼쪽 지도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위치(2011년)
핵발전소의 폐기는 지역 주민들의 오랜 염원이었다. 지난 4월 4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발전위원회는 고리원자력발전소의 폐쇄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통해, “납품 비리에 이은 고리1호기 비상전력 공급중단 사고와 사고은폐는 고리원전에서도 일본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선언하며 ‘고리원전 즉각 폐쇄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에 앞서 3월 22일, 부산시의회는 고리 1호기의 폐쇄를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안을 결의하고 결의문을 관계부처에 발송했다. 가동 이후 2011년까지 총 108건의 불시정전 사고가 있었던 핵발전소, 안전하지 않다면 폐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시민들의 요구사항,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경위를 조사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노후한 고리 1호기의 재가동을 승인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참고로 새누리당 비례대표 1번 민병주 후보는 지난 2007년, 설계대로라면 30년이 지나 폐쇄돼야 했던 고리원전 1호기의 수명연장에 관여하신 위인이란 사실을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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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은 노후 핵발전소 폐쇄법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핵발전소를 모두 폐기하고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이 계획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능하다. 실제로 독일의 녹색당은 사민당과의 연정으로 2022년까지 자국 내 모든 핵발전소를 폐기하도록 원자력법을 개정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역시 원전폐기 및 재검토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소수정당인 녹색당과 정책적 연대의 가능성이 보이는 지점이다.
방사능 위협 유일한 대안, 녹색당
녹색당의 첫 번째 비례대표, 탈핵후보 이유진의 이야기
녹색당은 한 발 더 나아가 방사능에 오염된 일본산 식료품을 추적하고 시민들에게 알리며 정부에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일을 계속해왔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일본산 수산물 중 세슘이 검출된 물량은 무려 1,768톤에 달한다. 이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미온적이다 못해 냉랭한 정도. 냉장명태부터 냉동고등어까지 방사능에 오염된 각종 수산물이 국내로 수입되는 와중에, 일본산 생선을 국산으로 귀화시켜 판매했던 악덕 유통업자들의 활약상도 드러났다.
녹색당은 우리의 밥그릇을 지켜내기 위해 발로 뛰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에 수 차례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금지, 일본산 수입식품에 대한 방사능 검사 강화, 식품방사능에 대한 엄격한 관리대책을 촉구해왔다. 녹색당은 모든 국민이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는 식량정의를 추구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4월 6일, 녹색당 광화문 선거캠프에서의 기자회견 (관련자료)
4대강 삽질을 막을 이는 누구인가?
가카치세 토건성대, 대운하로 시작해 4대강으로 이름을 바꾼 대규모 난개발 삽질로 전국의 강줄기가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저항하고 있는 농민들의 땅, 팔당 두물머리를 기억하자. 팔당의 농민들은 가카에게 당한 걸로 치면 우리 국민들 중 누구보다도 고농도의 고초를 겪은 분들이다.
팔당호 일대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뒤 이곳 농민들은 유기농업을 시작했다. 팔당 지역은 유기농특구로 지정됐던 수도권 최대의 친환경 농업단지로 2011년에는 세계유기농대회가 열리기도 했던 곳이다. 2007년, 대선후보 시절의 가카께서는 친히 팔당을 찾아와 유기농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노라 약속했다.
그러나 가카의 약속은 역시나 거짓말, 이 친환경 농업지역에 4대강 정비 토건족이 들이닥쳤다. 친환경 농업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기상천외한 흑색선전이 난무했고, 세계유기농대회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경기도지사 김문수가 유기농이 발암물질을 생성한다는 참신한 주장을 발표해 세계농업계를 혼란에 빠트리는 한편, 국토관리청은 농지에 침입해 불법적인 토지측량을 감행했다.
팔당 두물머리에서 불복종텃발을 선언한 농민후보 유영훈
우리나라 친환경 농업의 역사가 시작된 유기농업의 중심지, 팔당의 농민들은 대를 이어 일궈온 삶의 터전에 토건족의 삽날이 쑤시고 들어오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이들은 반민주적인 4대강 사업을 저지하기 위해 지치지 않고 싸웠다.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팔당부터 서울까지 꼬박 2박 3일을 삼보일배 하고, 자기 몸을 바쳐 단식으로 투쟁했다.
오랜 시간 저항해 온 팔당의 농민 유영훈은 녹색당의 두 번째 비례대표 후보가 되어 이번 총선에 출마했다. 유영훈 후보는 자영농 중심의 농업진흥과 한미 FTA 폐기, 식량자주권 확보를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정책을 주장한다. 누군가에게 4대강은 철지난 이슈일지 모르지만 녹색당은 포기하지 않는다. 4대강 심판과 탈토건을 약속하는 녹색당 농민후보 유영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3월 21일, 4대강범대위와 녹색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통합진보당의 정책협약식
생명의 권리는 중요한 가치인가?
녹색당의 공식행사는 국민의례 대신 생명의례로 시작한다. 생명의례의 절차는 지금 여기에 함께 있는 소중한 생명인 주변 사람들과 인사하며 시작하고, 개발로 인해 스러져간 생명을 위해 묵념하며 끝난다. 녹색당은 국가주의를 넘어, 전 인류가 동의하는 보편적 가치인 생명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녹색당은 유일하게 생명권과 동물정책을 의제로 채택한 정당이다. 동물학대를 막고, 유기동물 대책을 세우고, 야생동물을 보호하며, 비윤리적인 공장형 축산을 금지하는 등 동물권을 확립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녹색당은 우리나라의 3대 동물보호단체(동물사랑실천협회, 동물자유연대, 카라)와 정책협약을 맺고 지지를 받고 있다.
녹색당 내 동물권 연구모임의 이름은 ‘개나 소나’, 이들은 말 못하는 동물들의 입장에서 생명의 권리를 고민한다. 개나, 소나, 사람이나, 동등한 생명의 권리를 법률로 보장할 수 있도록 명문화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일단 녹색당 안으로부터, 정당행사에 반려동물과 함께 참석할 수 있도록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수평적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인가?
녹색당의 정당조직은 수평적인 구조로 느슨하게 얽혀있다. 녹색당에는 전국 각 시․도당의 연합체인 ‘전국당’이 있지만 서울 ‘중앙당’은 없다.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사무처장‘이 있으나 ‘사무총장’은 없다. 시․도당에서는 ‘운영위원장’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대표’ 따위는 없다. 녹색당은 기존 정당의 수직적 정당조직 구조와 이를 드러내는 용어의 사용을 거부한다.
녹색당은 여성, 청년, 청소년, 비정규직, 소수자를 포함한 풀뿌리사람들의 힘으로 정치의 변화를 시도한다. 녹색당의 여성당원 비율은 53%, 당직자와 국회의원 후보자 중에서도 여성의 비율이 절반 이상인 유일한 정당이다. 전국 각 시․도당 및 창준위에 20대 대표(운영위원장)의 수는 청년당 다음으로 많다. 또한 녹색당은 정당 비정규노동정책 평가에서 한국비정규센터, 민변, 민교협으로부터 만점을 받은 스마트한 정당이기도 하다. 녹색당의 모든 정책공약은 당원들의 직접적인 토론을 거쳐 만들어졌다. 국회의원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도 당원의 직접추천을 거쳤고 직선으로 결정했다.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는 숲과 같이 녹색당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출신성분도 다양하다. 환경운동가, 여성·청소년 인권활동가, 풀뿌리 주민활동가, 생협 조합원, 교육자, 성직자, 농부, 어부, 예술가, 의료인, 장애인, 채식인, 성소수자 등등. ‘나는 꼽사리다’의 두 띨띨이, 선대인 소장과 우석훈 선생 역시 녹색당의 친구들이다.
2012년 3월 4일, 녹색당 창당대회
마지막 선택은 녹색이다
핵발전소의 폐기, 4대강의 원상복구, 생명권 확립, 수평적 민주주의의 의제에 동의한다면, 그 영혼의 색상은 녹색임이 분명하다. 기존의 정당정치에 대한 환멸을 안고 기표소에 고독하게 선 채 20개나 되는 정당의 명단을 앞에 두고 고뇌할 초록빛 영혼의 소유자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번 4.11 총선에서 녹색당의 비례대표 정당 번호는 11번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린다.
녹색과 영혼의 싱크로율이 낮은 분들에게도 몇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다.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생태계의 파괴에 주의를 기울이시기를, 생명존엄성의 훼손으로 귀결되는 무분별한 성장을 약속하는 거짓말에 속지 마시기를, 그리고 새로운 정당의 창당을 분열의 조짐으로 오해하지 마시기를.
녹색당 창당대회 행사장에 전해진 진보신당의 축하 현수막
최근 창당한 녹색당과 청년당, (사회당과 합체하고) 늠름하게 버티고 있는 진보신당의 활동이 야권통합과 정권교체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생각이나 친박연합 등이 보수진영의 표를 분산시킬 가능성만으로 구국의 정당이 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유로, 소수 진보정당의 활동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양당의 대결구도 속에서 승리를 위한 전략을 선택했다고 해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냉소를 보낼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정당은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권력을 분배하기 위한 실험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녹색당은 비례대표 5%의 득표로 세 명의 후보를 국회에 입성시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탈핵후보 이유진, 농민후보 유영훈, 생명권후보 장정화는 녹색당의 가치를 현실로 펼쳐 보일 후보들이다. 또한 양양·영덕·봉화·울진의 박혜령 후보와, 해운대기장을의 구자상 후보가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다. 영덕 핵발전소 유치 백지화 투쟁에 앞장섰던 박혜령 후보와 낙동강에서 환경생명운동을 계속해온 구자상 후보의 선전도 기대하고 있다.
생태적 지혜, 사회정의, 참여민주주의, 비폭력, 지속가능한 발전, 다양성의 존중, 녹색당의 가치를 지지하는 유권자에게 이번 총선은 즐거운 선택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 기회는 소중한 한 표의 힘을 모아 우리 정당정치에 초록빛 새 봄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만약 미래가 있다면, 그것은 녹색이다.”
- 페트라 켈리
2013년 12월 17일 화요일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 희망버스가 밀양에 간 이유
밀양 희망버스 참가 후 딴지일보에 기고한 에세이입니다. 현장을 담아내기에 부족한 글이지만 가능한 쉽고 재미있게 풀어 써보려고 노력했어요. 딴지일보 편집부에서도 밀양 송전탑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메인페이지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노출시켜 주었어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소식 전하기로 했습니다. ^^
http://www.ddanzi.com/ddanziNews/1729584
+ [딴지라디오] 그것은 알기 싫다 059a. 또 만명 떠밀려난다:밀양
http://radio.ddanzi.com/broadcast/1782072
팟캐스트 녹음을 마치고 아쉬움이 가득.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희망버스는 지역성을 부각시키는 방식의 집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밀양 희망버스를 타고 나서 새삼 깨달았다. 서울 대한문, 삼성역 한전본사 앞에서도 촛불집회나 기자회견을 했던 일, 전국을 가로지르는 도보순례의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농민들이 서울로 '상경'해서 경복궁을 바라보며 시위를 하는 형태가 아니라, 반대로 수도권과 다른 지역 사람들이 해당 지역에 찾아가는 일이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는 말이다. 나의 내부에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밖으로. 밀양 지역 주민들이 바로 자기의 장소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공간이다.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어 먹을 것을 구하고 집을 지어 살면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워내고 이제 노년이 된 사람의 개인적인 역사가 이루어진 공간이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관계는 그 장소를 떠나면 파괴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역성이란 그 지역의 지리적 기후적 특징이 고려되어야 한다거나 갈등이 생겼을 때 지역주민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맥락 이상의 역사성을 가지고 접근할 문제이다.
+ 이미지 백업
http://www.ddanzi.com/ddanziNews/1729584
2013. 12. 02. 월요일
글: 이동현
사진: 김하나, 노완호
노완호 그림
도회지에서 온 어린 벗들을 만나러 나오시는 밀양 할머니들 눈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1. 범죄 없는 마을
2013년 11월 30일 아침, 밀양으로 가는 희망버스를 탔다. 경기도 남부에서 출발하는 우리 버스에 함께 탄 일행은 모두 32명이었다. 일찍 출발한 덕분에 다른 버스보다 먼저 밀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전날 경찰에서 언론사에 돌린 보도자료에서는 마을로 들어가는 11개 길목에서 교통통제를 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늬들이 버스를 막으면 걸어서라도 가야겠다고 다짐하며 가지고 있는 신발 중 가장 편한 등산화를 챙겨 신었다. 우리 버스가 밀양에 도착하자 네 차례나 경찰의 검문을 받으며 멈춰섰다. 하지만 마을 근처로 가까이 가기까지 통행을 제지당하지는 않았다. 전국에서 수천 명이 몰려드는 판국에 합법적인 근거 없는 차량통제가 얼마나 쪽팔리는 짓인지 경찰도 깨달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109기 송전탑 공사현장 옆에 있는 상동면 도곡마을이었다. 마을에서 희망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동네 어르신들과 인사를 했다. 나를 비롯해 우리 일행 중에는 여자가 많았다. 우리가 할머니들 모여 계신 천막으로 가자 할머니들이 다가와 손을 잡고 끌어 안으며 반겨주셨다. 어데 안아 보제이, 우리 손주 손부같데이. 팔순이 넘어 보이는 꼬부랑 할머니, 주름진 마른 손, 두꺼운 옷을 껴 입어도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몸피. 할아버지들은 둑 위에 불을 피우고 따로 모여 계셨다. 할아버지들은 멀리서 오느라 고생 많았십니데이, 고맙심데이, 이런 인사를 하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할아버지 중에 여자에게 손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분은 없었다.
도곡저수지 둑 위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도 할머니는 할머니끼리,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끼리 나뉘어 앉았다. 남녀칠세 부동석의 규칙이 아직도 지켜지는 현장을 보자 새삼 실감이 났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구나.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작은 기념비가 서 있었다. 2002년 5월 1일, 밀양시 상동면 도곡리 도곡마을, 범죄 없는 마을. 법 없이도 살아가던 사람들이 경찰에 연행되고 취조당하고 법정에 서게 되었다. 한국전력 직원들이 들이 닥치고 송전탑이 세워지면서, 범죄가 범람하는 대도시에 전기를 끌어 대기 위해 범죄 없는 마을 어른들이 범법자가 되어버렸다.
범죄 없는 마을
2. 외부세력의 개입
밀양에서 일어나는 일에 왜 늬덜이 참견이나고, 외부세력은 개입하지 말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물어보자. 공사현장에 상주하는 경찰병력과 한전직원은 밀양의 내부세력인가? 밀양경찰서에서 경찰과 의경이 주렁주렁 열리는 포돌이 나무 농사라도 짓고 있단 말인가?
송전탑 건립에 반대하는 밀양의 4개면 16개 마을 주민을 탄압하기 위해 외부에서 투입된 경찰병력은 어마어마한 숫자로, 지난 10월 공사가 재개된 후에는 무려 3000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다. 여기에 더해 한국전력에서 파견한 용역 인력도 500명 정도로 추산된다. 11월 30일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모인 시민은 2000여 명(경찰추산 1400명), 이를 저지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은 4000명이었다.
주민들의 협조로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새빨간 거짓말, 경찰력을 투입해서 저항하는 주민들의 발목을 잡고 뒤통수를 후려치는 동안 한전에서는 헬기로 자재를 운송하며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공사현장 인근에 있는 마을로 향하는 도로에는 경찰 검문이 계속되고 마을 주민이든 외부인이든 그들을 거치지 않고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밀양으로 시집을 와서 평생 살아온 여든 두 살 할머니의 말씀, 쟈들이 우리를 말려 죽일라꼬 그런갑다. 외부세력인 경찰과 한전이 이들을 완전히 고립시키지 못하도록 외부세력인 희망버스 시민들이 그곳으로 갔다.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들에 대한 폭압을 그만두라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대화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
밀양의 일부 시민단체에서 희망버스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도곡마을의 칠순 할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시내에 나갔다가 욕을 얻어먹은 적도 있다고 한다. 밀양 시내에 거주하는 시민이나 송전탑이 지나지 않는 남부 지역 주민들 중에는 송전탑이 지나는 북부 산골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저항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밀양 사람들 중에도 내부의 희생을 강요하는 세력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남한 사람들 중에 군부독재를 지지하는 세력이 존재한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독재국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송전탑이 필요하다는 한전의 주장 때문에 평생 농사를 짓고 살던 노인들이 희생당할 정당성이 생기지는 않는다.
밀양시 사회봉사단체협의회에서 내건 현수막
"희망버스 탈 회비가 있거든 연말 불우 이웃 돕기에 쓰십시요"
이웃돕기 성금은 연말만이 아니라 매 달 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
3. 님비는 개뿔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국가 전체를 위한 지역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송전탑 건립에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에게 지역이기주의라는 낙인을 찍는다. 지역에서 전기를 생산하지 않으면서 엄청난 양을 소비하고 있는 도시민의 이기주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만약 한수원의 주장대로 핵발전소가 안전하다면 여의도에 건립하면 될 것이다. 국회 앞에 넓은 국유지가 있으니 토지보상 문제도 없고 한강이 지나가니 용수로도 충분하겠다 딱 좋은 입지다. 여의도에 핵발전소를 지으면 송전탑을 세워서 전기를 끌어다 쓸 일도 없다. 대기업에 싼 값으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농촌지역 사람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본의 탐욕일 뿐이다.
송전탑은 가장 땅값이 싼 동네를 골라 세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밀양 북부 농촌지역은 땅값이 싸다. 여기 땅을 팔아봐야 딴 데 가서 농사지을 땅을 살 수가 없다. 송전탑이 세워지면 그렇잖아도 싼 땅 값이 더 내려간다. 토지의 가치가 떨어져서 은행담보로 받아주지도 않는다. 농부에게서 땅을 빼앗는 건 굶어 죽으라는 소리 밖에 더 되나? 아버지 박통이 너무나 그리워 새마을운동 시즌2를 굳이 재개하고 싶다면 발암물질 석면으로 뒤덮인 지붕을 교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지 잘 살고 있는 마을의 지붕 위로 고압선이 지나가게 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밀양 주민들의 투쟁이 보상금을 더 많이 받으려는 알박기라고 단정 짓는 이들도 있다. 지역에 개발사업이 시작되면 언제나 보상금 문제가 쟁점이 된다. 이번에도 한전에서 제시한 보상금은 지역민을 분열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 심지어 연말까지 보상금을 받아가지 않으면 한 푼도 받지 못할 거라며 비열한 최후통첩을 보내왔다. 한편으로는 토지강제수용 절차를 밟고 주민들을 고소고발하며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투쟁하고 있는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요구사항은 더 많은 보상금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은 송전탑 중에 마을에서 가까운 곳은 우회하거나 송전선을 지중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보상을 요구했던 다른 지역은 이미 보상금을 받고 투쟁을 포기했다. 지금까지 투쟁하는 지역의 주민들, 8년 넘게 송전탑 반대 투쟁을 계속해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상금을 더 받자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치우 할아버지가 농사짓던 땅에 설치한 조형물
우리가 연대해서 할아버지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분향소
작년 1월에 보라마을 이치우 할아버지는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자기 몸에 불을 붙이고 분신자결하셨다. 그리고 3월 첫 탈핵희망버스가 밀양으로 향한 뒤 송전탑 문제가 이슈가 되자 공사가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10월이 되어 공사가 재개되면서 더 많은 경찰병력과 한전인력이 마을로 투입되었다. 연로한 주민들만으로 맞서기는 물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어려운 싸움이었다. 이번 희망버스가 도착하기 전까지 52명의 주민들이 다치고 20여 명이 연행되었으며 1명이 구속되었다.
이들이 이렇게 송전탑에 반대하며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만난 고답마을 할아버지의 말씀, 우리 집에서 송전선로가 이백오십미터 뿐이 안 떨어졌는데 그래가 우에 사노? 도곡마을 할머니의 말씀, 철탑이 들어서믄 시어른 산소가 거서 지척인기라. 마을 주민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이대로 살다 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도곡저수지 둑 위에 둘러 앉아 다른 희망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마을 할아버지들이 앰프를 가져오셨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불렀다. 할머니 할아버지 힘내시라고 돌아가며 연대발언을 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기도 했고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아가자고 다짐하는 노래도 불렀다. 더 부를 노래도 없고 할 이야기도 없고 심심하니 그럼 구호라도 외쳐볼까 하며 누군가 시작했다.
송전탑을 짓지마라. 여러 번 외치고서 다른 구호를 찾다가 한 희망버스 참가자가 외쳤다. 한국전력 개놈들은 물러가라.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그러자 여든이 넘은 꼬부랑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아이고 내는 욕 모린데이, 욕허지 마래이. 개놈이란 표현이 욕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들은 조금 부끄러워졌다. 분위기가 숙연해지자 마을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다른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는 욕 잘 한데이, 요넘들 좆방맹이를 뽀사뿔라. 우리들은 차마 그 어휘를 따라 외치지는 못했지만 주먹을 치켜세우며 함께 웃었다.
도곡마을에는 평생 욕이라곤 모르고 살았던 할머니도, 욕을 능숙하게 하는 할머니도 살고 계신다. 커다란 양은주전자에 완벽한 비율로 50인분 커피를 끓여낼 수 있는 할머니도 계시고, 밀감을 쥐어주며 농갈라 먹으라고 신신당부하는 할머니도 계신다. 외지에서 온 젊은이들을 상대하기 어색해서 뒤쪽에 조용히 있다 누군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발견하고 달려가 알려주는 할아버지도 계신다. 이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지금처럼 한 마을에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그것이 이분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이다.
농성장에서 쉬고 계신 할머니들
이곳은 할머니 구역으로 할아버지들은 함께 앉지 않습니다.
할매가 간다.
트럭을 타고 이동! 할배 달려~
4. 송전탑을 향해서
희망버스 일정이 바뀌었다. 탈핵집회가 무산되면서 각자 도착한 마을에서 송전탑 공사현장을 향해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도곡마을에는 경기도 남부와 충청도 홍성, 강원도 등지에서 출발한 버스가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150명 정도, 뒤에 합세한 이들을 합하면 200명 쯤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공사현장으로 향하는 산길은 경찰과 의경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경찰병력은 600명 정도 된다고 들었다. 이 정도 숫자로 경찰의 저지를 뚫고 올라갈 수 있을까 겁이 났다.
할머니들이 앞장을 섰지만 체력 좋은 젊은이들이 금방 따라잡았다. 산세가 험하고 가파른 길이었다. 할매할배들이 이런 산을 매일 다니다니 무슨 고생인지, 게다가 길목마다 경찰이 막아서기 때문에 길이 아닌 곳을 돌아가느라 더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팡이를 짚은 꼬부랑 할매가 이렇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일정 때 시집와 갖고 돼지 두 마리 끌고 맨발로 산을 뛰어 댕겼재, 순사놈들이 얼매나 못살게 굴었는가. 그래도 여서 살았는기라. 손톱이 닳도록 흙파면서 살았는기라. 이제는 고마 한전놈들이 산길을 막고 올라가도 몬하게 가로막고... 할머니는 설움이 북받혀 울먹이셨다.
산길을 가로막은 경찰부대
저지선 통과, 이것은 무혈혁명
산 중턱에서 스크럼을 짜고 있는 경찰병력과 마주쳤다. 다해봐야 서른 명 정도의 인원이었지만 좁은 길을 가로막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그만 내려가세요. 우리가 공사현장을 파괴하려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들이 우리를 저지할 권리가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투쟁 경험이 많은 노동조합 아저씨들이 맨 앞에 서서 경찰과 대치했다. 일부는 산기슭을 돌아서 올라갔다. 우리 쪽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에 결국 시민들이 경찰을 에워 싼 형국이 되었다. 그렇게 1차 저지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저지선에는 더 많은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백 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비슷한 방법으로 체력이 좋은 아저씨들이 주로 앞에 서서 경찰을 몸으로 막았고 여자들과 노인들은 산을 타고 경찰의 등 뒤로 돌아갔다. 경찰들은 뒤로 들어온 시민들을 막으려고 뛰어다녔다. 몸이 날랜 시민들이 산비탈을 뛰어다니자 경찰을 그쪽을 잡으려고 했고 결국 경찰의 저지선이 느슨해져서 우리는 산길을 올라갈 수 있었다. 시위현장에 많이 가 본 어떤 아저씨가 말했다. 산이라서 뚫었지 도시에서는 이 정도로 못 뚫는다고. 만약 가두시위였다면 도로를 가로막은 전경버스를 쓰러뜨리지 않는 한 나갈 길이 없었을 것이다.
공사현장 앞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뚫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병력이 가로막고 있었다. 가파른 비탈이라 뒤로 돌아갈 길도 없었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비탈에서 여러 번 미끄러졌다. 상황이 위험해지자 경찰도 희망버스 참가자도 서로를 염려하기 시작했다. 나는 앞에서 미끄러질 것 같은 의경의 등을 붙잡았다. 어느 여경은 내가 떨어질까봐 나무 둥치에 발을 딛으라며 뒤로 물러서기도 했다. 추운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올라간 우리들과 겨울산에서 명분 없는 공사현장을 지키기 위해 버텨야 했던 경찰들 모두 가엽다는 생각을 했다. 결론은 한국전력 나빠요.
이 추위에 늬덜도 고생이 많다.
하지만 공무수행 중에 얼굴을 가리는 건 좀...
5. 한국전력이 송전탑을 세우는 이유
765kV 송전탑은 우리나라에 세워진 송전탑 중 가장 전압이 높다. 높이만 140미터, 이제까지 우리들이 봤던 송전탑과는 사이즈가 다르다. 미국, 캐나다, 중국 같이 국토가 넓은 나라에서 장거리 송전을 위해 짓는 것이다. 자연경관이 파괴되고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뒤로 하고, 일단 사람의 삶에 미치는 악영향만 살펴보자. 초고압 송전탑의 전자파에 노출되면 암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수 없이 많다.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에 76만 5천볼트 초고압 송전로를 짓겠다는 것은 생존과 건강에 직접 위협을 가하는 것과 같다.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와중에도 한국전력이 76만 5천볼트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는 이유는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옮기기 위해서이다. 밀양 지역을 지나가는 송전선로는 신고리 원전에서 북경남 변전소로 향한다. 송전탑과 핵발전은 한 몸이나 다름 없는 연장선에 있다. 전기를 만들었으니 어딘가 옮겨서 써야하지 않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고리원전 5~8호기는 아직 건립되지도 않았다. 국회에 건설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제출된 상황. 그러니까 아직 짓지도 않은 핵발전소 때문에 송전탑을 짓는다고 이 난리가 난 것이다.
109호 송전탑 건설현장
경찰은 한전만 지켜주고 할매할배들은 안 지켜줘?
원자력은 깨끗하고 값싼 에너지라는 주장은 거짓말이다. 후쿠시마 원전 터지고 나서 지금 일본 전역과 태평양이 방사능으로 오염되고 있다. 원자력은 깨끗하지 않다. 더럽고 위험하더라도 아주 저렴하다면 싼 맛에 써볼 수 있는 거 아니냐고, 2900원짜리 티셔츠 골라 입을 땐 그래도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핵발전은 안전하지도 않은 데다 싸지도 않다. 얼마 전 고리원전 1호기가 재가동하고 50일만에 작동을 멈췄다. 왜냐고? 모른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발전소에서도 이유를 모르겠단다. 자꾸 고장나는 발전소는 전기를 싸게 생산하는 발전소가 아니다. 지난 몇 해 동안 전국에 전력난 비상이 걸린 이유는 전력수급이 일정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다. 핵발전이 되다 말다 지랄이라 공장 회사 가정에서 손해본 비용은 누가 책임지나?
물론 우리가 언제나 안정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건 아니다. 내가 쓰는 고물 노트북도 가끔 작동이 되다 말다 해서 이 길지도 않은 글 쓰는데 몇 번을 쉬어 갔다. 이 노트북이 지금 당장 작동을 멈춰봐야 지금 쓰는 글과 그동안 엄선해둔 야구동영상이 날아가는 정도의 피해가 있을 뿐이다. 헌데 핵발전소가 그따위로 돌아가면 어떤 피해가 일어날지, 후쿠시마에서 다들 보지 않았나?
문제의 고리원전. 고리고리 멀리멀리 떨어진 외진 동네 같지만 부산에 있다. 원전에서 부산시청까지 거리는 고작 25km. 핵발전소 터지면 부산에서 폴싹 주저앉고 마는 거 아니다. 울산, 포항, 경주, 대구까지 바람이 어디로 불 지 바닷물이 어디로 흐를 지 누가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데? 부산이 제2의 후쿠시마가 되어버리면 그 뒤의 일은 정부가 책임질 것인가? 원전사고는 기업이나 정부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의 범주가 아니다. 그러니까 핵발전 그만하고 송전탑 그만짓고 평화롭게 살자. 이렇게 주장하기 위해 우리는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갔다.
무대에 오른 밀양 투쟁 합창단 할머니 할아버지들
6.
저녁 7시가 넘어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밀양역으로 모였다. 낮 동안 각기 다른 마을에 도착해 송전탑을 향해 올라간 뒤 마무리로 한 자리에 모이는 문화제였다. 내가 함께 했던 도곡마을 쪽에서는 큰 부상자와 연행자가 없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피해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모두 모이느라 시간이 늦어졌지만 행사는 예정대로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문화공연 중 투쟁하는 어르신들이 직접 꾸민 무대가 있었다. 대중음악의 노랫말을 개사해서 합창을 하신 것이다. 여러 노래 중 한 대목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야이 야이 야~ 내 나이가 어때서~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인데~ 평생 묵묵히 흙을 일구며 살아오신 분들이 노년이 되어 정부에 반대하는 투쟁을 시작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의 삶은 너무나 연약한 기반 위에 서 있다. 국민이 건강하게 살 권리, 사유재산을 소유할 권리, 노동을 할 권리를 정부는 지켜주지 않는다. 반대로 기업의 편에 서 우리의 건강권, 재산권, 노동권을 침해하는 데 공권력을 투입했다. 밀양에서, 강정에서, 용산에서, 영광에서, 새만금에서, 대추리에서, 대한문 앞에서, 각지의 투쟁현장에서, 국가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생존권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 모든 곳에서 우리는 자기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연대한 우리, 버스를 타고 밀양에 모인 우리,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 [딴지라디오] 그것은 알기 싫다 059a. 또 만명 떠밀려난다:밀양
http://radio.ddanzi.com/broadcast/1782072
팟캐스트 녹음을 마치고 아쉬움이 가득.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희망버스는 지역성을 부각시키는 방식의 집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밀양 희망버스를 타고 나서 새삼 깨달았다. 서울 대한문, 삼성역 한전본사 앞에서도 촛불집회나 기자회견을 했던 일, 전국을 가로지르는 도보순례의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농민들이 서울로 '상경'해서 경복궁을 바라보며 시위를 하는 형태가 아니라, 반대로 수도권과 다른 지역 사람들이 해당 지역에 찾아가는 일이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는 말이다. 나의 내부에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밖으로. 밀양 지역 주민들이 바로 자기의 장소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공간이다.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어 먹을 것을 구하고 집을 지어 살면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워내고 이제 노년이 된 사람의 개인적인 역사가 이루어진 공간이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관계는 그 장소를 떠나면 파괴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역성이란 그 지역의 지리적 기후적 특징이 고려되어야 한다거나 갈등이 생겼을 때 지역주민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맥락 이상의 역사성을 가지고 접근할 문제이다.
+ 이미지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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