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도무지 여자를 이해할 수 없어.” 그가 대답했다.
“이런, 제럴드.” 내가 말했다. “여자는 사랑을 해야지 이해하려고 하면 안 돼.”
_오스카 와일드 『캔터빌의 유령』(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난 도무지 남자를 이해할 수 없어.” 그녀가 대답했다.
“이런, 로라.” 내가 말했다. “남자는 조련을 해야지 이해하려고 하면 안 돼.”
_ 문득 이런 패러디에 대한 남자들의 감상은 어떠할지 궁금합니다.
박성국(박): 저는 위의 원문에서, 여성을 수동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남성주의적 시선에서 비롯된 불편함을 느낍니다. 해당 패러디에서는, 남성을 개나 애로 취급하는 여성의 우월의식에 대해 반감을 느낍니다. "나 애 아니야! 컹컹!"
이동현(이): ㅇㅇ 저는 원문을 읽고서 좌절감을 느꼈어요.
박: 한국의 댄디들 중 나이 불문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아요. 일단 사리사욕을 챙기는 것에는 거리를 두고, 예술가로서의 정신적 귀족주의를 추구하면서도 여성은 사랑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 실로 역사가 반복된다는 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담론-신체의 결합으로 재생산된다는 말이겠죠. (중략) 근데 이 태도는 일단 남성의 그 지속적인 성욕과 섹스 판타지와 결합한 거라, 윤리적인 잣대 없이 그런 태도가 억제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이: 좌절의 이유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은 저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데, 위의 문장에 따르자면 사랑받기를 원하는 욕망과 자기존중감의 거래를 시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남자 또는 남성성에 대해 규정할 때는 자기검열이나 배려심 같은 것을 필터로 사용하기 마련인데 반해, 남자들이 여자에 또는 여성성에 대해 규정할 때는 꽤나 과감하게 결과물을 내보이는 경향이 있더군요. 종종 상처받아요. 지금도 그렇고요.
저 역시 성욕과 섹스판타지가 강렬한 타입이지만, 그것이 남성을 객체화하고 대상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남자들에겐 왜 그것이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그보다 먼저, 객체화하고 대상화된 상대와의 섹스가 좋을까 의문이에요.
박: 보수적 남성은 처녀성을 전제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고(섹스-수동적 객체화), 댄디들 역시 여성을 자신이 사랑을 주고 봉사해주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섹스-수동적 객체화). 일단은 남근이라는 상징적 권력 탓이 아닐지. 나는 있는데, 여자는 없는 거죠. 그러니까 줘야 되는 거고, 주는 사람이 갑이고 받는 사람이 을이니까 나는 성적으로 적극적이고 배타적인 사랑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한국 음악가들에게도 엄청나게 보편적인 태도죠, 스토니 스컹크의 노래에서도 "여자들아 침대로 와랔ㅋ" 이런 내용의 가사가 있기도 하고. 찾아보면 아마 그런 남근주의적 인식들이 드러난 언어들로 산을 쌓을 듯.
이: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걸 두고 뭐라 하기 어렵지만, 자지가 단단해지고 정액이 나오는 과정이 그렇게나 감동적이었을까 싶고, 그래서 그것을 호혜적으로 남에게 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걸까 싶어요. 게다가 그런 걸 사랑이라고 부르다니 딱 십 분만 지나고 돌이켜 생각해봐도 부끄럽고 쑥쓰러울 텐데 싶어 안타깝기도 하고요.
박: 확실히 남근은 남성이 갖는 경이로울 정도의 절대적인 힘과 자신감의 원천이예요. 발기부전치료를 받다가 고자가 된;; 남성들이 잃는 자신감과 그들이 느끼는 절망은 끔찍할 정도라고 하네요. 공허한 거죠, 단단해지거나 정액을 내지 못하니까. 인터뷰를 봤는데, 제 입장이 되지 않고는 절대로 이 느낌을 모를 거라고 해요. 극도로 이기적인 한국 마초의 경우에는 누나-동생하던 사이인데도 의식이 없는 연상의 여성을 강간하고 그걸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하기도 하더군요. 결국 객체화-대상화가 낳는 극단적인 폭력의 사례지요.
Los Angeles 거주/백인 사회에 편입 못한 한인 남성들: 지인을 통해 전해들었는데 이 친구는 자기 만나면서 돈을 원하는 여자들이 싫어서 그런 여성들에게 "벌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나봐요. 또 다른 친구는 자기가 어떤 여자에게 잘해줬는데 결국 헤어지고, 그것 땜에 상처를 받아서 조금 사귀고 섹스하다가 헤어지고를 여러 차례 반복. 결국 "여자는 다 똑같애"류의 객체화, 대상화가 일방적 폭력을 유발하는 시발점이죠.
신: 여튼 유머의 진실은 우주를 한 바퀴 돌리는 데에 있으니 !! 수긍이 가는 패러디입니다.
--- 페이스북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믿는다면, 남북통일이나 세계평화도 바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