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1일
지난 밤 11시쯤 내가 두 개의 시간을 동시에 염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 시간으론 자정이 지나 21일이 되었지만, 시차 덕분에 중국에서는 아직 20일이었다. 80일동안 세계일주를 떠난 필리어스 포그가 지구를 동쪽으로 한 바퀴 돌아온 덕분에 하루의 시간을 벌었듯, 나는 중국으로 여행을 온 덕분에 서른 살 생일이 되기 전까지의 한 시간을 얻었다.
나름대로 꽤나 의미 있는 한 시간이 생겼으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인 잠자기로 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꿈도 꾸지 않고 푹 잠들었는데 새벽에 보니 간밤에 카톡으로 생일축하 메시지가 들어와있었다. 아, 기쁘다. 삼십세. 엄마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생일축하. 너 없는 아침에 식구 모두 미역국 먹고 네 생각한다. 좋은 경험하고 건강 신경쓰고. 사랑해♥" 엄마 사랑해. 태어나서 기뻐요.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 도미토리에서 한 방을 쓴 아가씨들과 바이바이 인사를 하고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오후에는 이 도시를 떠날 것이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난징 대학생 아이들의 머리맡에 감사와 행운의 말을 적은 종이쪽지를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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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의 지하철 2호선 노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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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로터리 형의 거대한 육교 |
버스정류장으로 나가서 12로를 타고 샤오자이 짠에서 내리고 보니까 종루에서 지하철 2호선도 연결된다. 여기는 상점가인 듯한 분위기인데, 사거리를 완전히 커버하는 로터리형 육교가 있었다. 이런 길을 만들다니 홍콩같다. 시안도 엄청 복잡한 대도시로구나.
메모장 쓰면서 걷다가 급발진하는 자전거와 충돌할뻔했다. 여기선 차 사고임; 오늘도 길을 잃을까봐 조마조마 주위를 두리번대면서 걷다가 카메라 메고 가는 남학생 둘을 발견, 리스보우관(역사박물관)이 어디냐 물으니 자기들도 그쪽으로 간다고 따라 오란다. 이 방향일 것 같다는 예감이 맞았다. 낄낄 기쁘다.
8시 30분인데 산시성 역사박물관 앞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입장객 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표를 사려면 일찍 가야 한다고 했다. 박물관 개장 시간은 9시 부터. 무려 30분이나 서둘러 도착했는데, 일요일이라 그런가 사람이 많았다.
산시성 역사박물관(陕西历史博物馆 샨시리스보우관)
개장시간: 9:00~17:30(16:00까지 입장 완료)
방문객 수 제한: 오전 2500명, 오후 2시 이후 1500명
월요일 휴관, 무료입장
주소: 西安市 小寨东路 91号
홈페이지(중국어, 영어, 일본어 제공) http://www.sxh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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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성 역사박물관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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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웅성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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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관광객도 많이 방문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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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관광 학생들도 한 무리 |
산시성 역사박물관은 저우언라이의 유언으로 지어진 박물관이라고 한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홍위병들이 고문화재에 불싸지르고 다닐 때 저우언라이가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막아낸 유물이 한두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저우언라이가 없었으면 시안의 보물들은 봉건사회의 구태라는 이유로 피괴되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영웅화를 위한 스토리텔링일지 모르지만 이런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다는 건 그의 미적 감수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당나라 풍으로 디자인한 박물관 건축물도 으리으리한 규모에도 우아하고 아름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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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성 역사박물관을 지키는 사자 |
산시성 역사박물관 입구에 들어가면 거대한 사자상이 서 있다. 너도나도 사진을 찍길래 나도 한 장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독자제위의 안구건강을 위해 공개하지 않겠다;) 박물관 1층은 선사시대부터 진나라까지의 고대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한 층 위의 2전시실은 한나라부터 남북조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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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부장품 토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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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크고 눈도 크고 코도 크고 입도 크다. 북위의 남자들은 크고 아름다왔던 모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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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주 시대 돌무덤에서 출토된 석관 클릭해서 확대해보면 섬세한 채색문양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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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깜찍한 녀석은 유니콘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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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을 읽어보니 시에즈(獬豸 해치)라고 해서 머리에 뿔이 하나 달린 상상의 동물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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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위 때 살았던 독고 신(独孤信)이란 사람의 도장 26면체로 주사위 같이 굴려 가며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도장을 다 찍고 나면 손가락은 인주 범벅이 되었겠다. |
역사박물관의 3전시실은 수당대의 유물과 장안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멀티미디어 자료가 있었다. 시안은 당나라의 수도였던 만큼 당대 장안성의 구조를 디오라마 모형으로 만들어 보여주기도 했다. 멀티미디어 시설도 훌륭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 같았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나쳤다.
전시실에는 유물의 수가 엄청 많고 종류도 다양했다. 섬유, 도기, 청동, 금은기, 부장된 생활용품부터 장신구, 당삼채 도용 등등. 책에서 봤던 유명한 작품부터 이런 스타일의 당삼채도 있었구나! 놀랄만한 신기한 애들까지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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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장식으로 썼던 액막이 도깨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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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의 부리부리 왕눈이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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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채로 만든 섹시한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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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당초무늬가 아로새겨진 황금 술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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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대의 교역품이기도 했었던 섬유제품 많이 손상되었지만 동글동글한 무늬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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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확 띄는 선명한 녹색의 당삼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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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무늬를 점토판으로 만들어 붙인 화려한 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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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모양을 따라서 만든 당삼채 각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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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면을 따로 만들어 이어 붙인 디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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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뿔을 파내서 술을 마셨던 유목민의 취향을 한족들은 이렇게 요란한 스타일로 재해석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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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꽃 무늬가 격자로 그려진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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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모양을 재현한 그릇 수박과 참외 같은 덩쿨식물이 서역으로부터 중국에 전해진 시기가 바로 당나라 때였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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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의 줄무늬를 차용한 듯한 그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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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기형과 유약의 흐름이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당삼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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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 무늬를 보는 것 같이 섬세한 유약의 흐름이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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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폴록도 울고 갈 듯, 물감이 흐르는 모양이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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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하고 화려한 모양의 유골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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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의 부장품이었덩 상상계의 동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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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 상인들과 함께 들어온 낙타는 이빨이 귀요미 |
당삼채방을 지나니 송대의 단아한 청자가 다양하게 놓여있다. 명청대까지의 유물도 전시하고 있었다. 그 중에 금나라의 어린이 모양 도자베개 귀엽긔. 휴대용 장기판도 있었고. 어쩐지 금나라 사람들은 유쾌했을 것 같다. 명청대의 정교한 도자를 샅샅이 둘러 보았지만 남아있는 사진이 거의 없다. 역시 내 취향은 중세에 머물러 있구나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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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 때의 아이 모양 베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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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금 대의 유물 장기판 장기말이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구성은 지금과 차이가 없다. |
다음 방으로 넘어가니 석굴이 있었다. 응? 박물관 안에 왜 석굴이 있지? 황당할 겨를도 없이 압도되고 말았다. 어둑한 실내에 은은한 조명을 받고 계시는 부처와 보살, 주변에 새겨진 천불까지, 멋졌다. 북송 대에(1067년) 건립된 종산석굴(钟山石窟)로 옌안(延安)에 위치한 석굴군의 일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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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도 참; 어쩜 석굴을 뜯어오니... 했는데 알고 보니 복제품이다. |
그런데 부처님 손 모양이 아리송했다. 보통 불상을 보고 부처님 이름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손 모양이라 수인(手印)이라 한다. 손을 들어서 손바닥을 보이도록 하는 수인은 시무외인이라 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이 코끼리를 멈추게 했던 모습으로 권위를 상징한다. 하지만 종산석굴에서 오신 부처님은 손바닥을 쫙 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손에 무엇을 쥐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어쩐지 조금은 부끄러워 하면서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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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부처님의 수줍은 손 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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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사람과 비교해보면 크기가 이 정도... 중앙의 불상은 높이가 1.4미터 크기라고 한다. |
유물이 많은 만큼 관람객도 많아서 정신 없이 돌아다녔다. 내가 박물관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한적함인데 여긴 완전 시장통 관광지였다. 각국의 언어로 전시작품을 설명하는 가이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학생들은 서로 밀치고 당기고 달리고 난리통에,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펑펑 터졌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잽싸게 박물관을 빠져나와 샤오쟈이로 돌아와 지하철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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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의 지하철, 내부 장식도 당삼채로 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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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약이 흘러내린 당삼채 도편의 무늬는 현대 추상예술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
서안음식의 특징 중 하나로 꼽는 대표적인 말이 교자연(饺子宴)이다. 교자의 잔치라는 뜻으로 그만큼 다양한 종류의 교자(만두)가 발달했다는 것. 남방의 화려한 딤섬에 비하면 형태는 소박하고 평범하지만 내륙교통의 중심지였던 만큼 재료 면에서는 더 풍부하다고, 기차에서 만난 서안 토박이 왕선생이 말했었다.
"천하의 물산이 모이는 동네가 바로 시안이거든."
왕선생의 애향심을 존중하지만, 중국에서 (적어도 한족 거주지역에서) 교자가 맛없는 동네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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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자연으로 유명한 덕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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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시의 중심 종루와 고루 사이에 있는 엄청난 규모의 건물 안에 있다. |
시안에서 교자연을 즐길 수 있는 음식점으로 덕발장(德發長)이 유명하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중국에서 오랜 기간 유학했던 미식가 치오네 님에게 연락을 했을 때, 시안에 간다고 했더니 대뜸 "덕발장의 교자연을 즐기세요"라는 조언을 들었었다. 왕선생에게 물어보았을 때에도 이 집이 제일이라 추천해주었다.
(각종 교자에 자라탕이 포함된 코스요리 정보는 치오네 님의 블로그를 보시암.)
하지만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 빡빡했고 혼자서 코스요리를 먹고 있기도 부담스러워서 간단하게 샐러드와 교자 한 접시를 먹기로 했다. 만두는 전복 물만두(鲍鱼水饺 바오위슈에지아오)를 골랐다. 먼저 양파를 식초에 무친 샐러드와 희멀건 국물 한 공기가 나왔다. 수저나 손을 씻는 물일까 고민하다 물어보니 만두 삶은 물이란다. 우리나라 냉면집에서 면수 주는 거랑 비슷하게 따듯한 국물로 마시라고 나오는 듯.
중국에선 날음식을 잘 안 먹게 된다.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었다가 배탈이라도 나면 지옥이 펼쳐질테니... 그런데 양파초무침을 지나치치 못한 걸 보면 아삭아삭한 채소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교자도 식초에 찍어서 우걱우걱 먹었다. 우왕 씐나~ 맛있어. 중국에 도착해서 제일 맛있게 먹은 식사. 식사 다운 식사는 처음인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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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발장의 전복 물만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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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면은 이렇게 생겼다. |
만두를 폭풍 흡입하고 숙소로 돌아와 부리나케 짐을 챙겼다. 난징 대학생 아가씨들이 새빨갛게 익은 홍시와 석류를 남겨두고 갔다. 고마와라. 숙소에서 체크아웃하고 배낭을 둘러메고 기차역으로 갔다. 다음 목적지는 팬더의 고향 청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