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9일 수요일

죽은 아이에 대한 기억.

팬더는 흰색에 검은 무늬야 아니면 검은 색에 흰 무늬야? 언젠가 내가 팬더 사진을 보여주자 그애가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단호하게 답했다. 흰 바탕에 검은 무늬야. 왜? 갓 태어난 아기 팬더는 흰 쥐 같은데 자라면서 검은 얼룩이 생기거든.

그애는 대답 없이 술을 마셨다. 아무 말 않다가 갑자기 화를 내며 말했다. 그애가 쓴 책을 사장이 도둑질 해갔다고 했다. 그 책의 기획에 사장이 기여한 바가 있긴 하지만 자료를 수집하고 원고를 작성하는 일은 그애가 도맡아 했다고 했다. 온라인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 사장은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적이 있었다. 사장은 출판사 측에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이름을 원한다며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내겠다고 했다. 선인세의 일부가 그애의 통장에 입금되었다. 그것은 출판사에서 들어온 돈이 아니라 급여인 것 같이 사장의 통장에서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면 공동저자로 표기라도 해달라고 부탁해 보지. 그러자 그애는 성을 냈다. 어차피 그만뒀어. 어쨌든 자기가 쓴 책이니까 읽어볼게. 라고 했더니 그애는 이렇게 말했다. 사서 보지 말고 빌려서 봐. 내가 사장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을 구입한다면 그애는 나에게도 분노할 것 같았다. 씨근대면서도 그애는 책 제목을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도록 할게. 라고 대답하고 나서 나는 아직도 그 책을 읽지 않았다.

어젯밤 그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장 전화를 걸었다. 낯선 남자가 받았다. 그애의 친구라고 했다. 그애가 죽었다고 했다. 언제, 어디서, 왜, 캐묻다가 말았다. 아주 고약한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애를 아는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선배는 바로 이틀 전에도 그애와 통화를 했었다며 내가 전한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선배가 일단 전화를 끊자고 했다. 한참 뒤 전화가 왔다. 여기저기 연락을 해 본 모양이었다. 선배는 한 풀 꺾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나는 그에게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고 있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살펴보니 그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고생했던 것 같다. 약물을 남용했던 것 같다. 습관적으로 약을 집어 먹다가 과용했던 것 같다. 그애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확실히 모르겠다.

얼룩말은 흰 색에 거문 무늬다.

그애가 세상을 떠나기 몇 시간 전에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이 멘션을 곱씹다가 언젠가 팬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마지막으로 얼룩말은 흰 색에 검은 무늬인지 아니면 검은 색에 흰 무늬인지 고민했던 걸까.



꿈 이야기.

꿈 이야기. 러시아 서예가 협회-이런 단체가 존재할까?-를 취재하러 비행기를 타러 갔다. 공항은 민속촌 같이 생겼다. 꼬불꼬불한 골목 사이로 초가집과 기와집이 있는데 그런 작은 집들이 출국 게이트와 대기실을 겸한 장소였다. 러시아로 가는 비행기가 출항하는 장소는 744 또는 477번 게이트, 그러나 이곳을 찾아 가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그러다 어느 집에서 불이 났다. 불길을 피해서 골목을 누비던 중 김일성을 닮은 남자가 나타나 티켓을 검사했다. 확인만 하고는 게이트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다 나디아를 닮은 아가씨를 만났다. 검은 피부에 활기차 보이는 아가씨가 나를 도와주려고 했는데 그 아가씨도 게이트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해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불길은 점점 번지고 나는 갈곳을 찾지 못했다. 이런 꿈.


강간은 살인 만큼 나쁘진 않아.

이웃 초등생 성폭행범에 징역 15년형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161358171&code=950313

이런 기사를 보면, 개자식 죽여버리고 싶다. ㅡ 이렇게 느끼지만

강간죄의 형량이 더 높아진다면, 강간범이 피해자를 살해할 가능성도 높아지겠지. ㅡ 나는 강간당하더라도 살해당하고 싶지는 않다.

남성동지들이 강간범죄에 격하개 분노해주는 상황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 이면에 더럽혀진 여자는 죽는 편이 낫다는 전통적인 순결의식이 깔려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해본다.

댓글 보면, 십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포르노물을 금지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 내 하드의 동영상 지우기는 아까워도 다른 놈을 거세하기는 쉽고 사형시키기도 쉬운 걸까.


예술과 스포츠의 경계에서.

울적할 때는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 동영상을 찾아 반복해서 본다. 지면의 저항이 없는 빙판 위에서 그녀는 자유롭다. 표면으로 미끄러져 내달리다 어느새 활주하며 빙글 날아올라 반짝거리는 그녀의 몸짓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전율이 일어난다. 그 거침 없는 움직임을 통해 전달되는 감정선은 어찌나 섬세한지 경이로울 정도이다.

그런데 가끔 중계방송을 보다 화가 날 때가 있다. 낭랑한 해설자의 목소리 때문이다. 그들이 트리플러츠니 더블악셀이니 기술의 이름을 들고 끼어들면, 한껏 고조된 감정선이 푹 꺾이는 느낌이 든다. 김연아가 보이지 않는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순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찬란한 활주와 이륙을 목격하는 순간, 그것이 점프의 한 종류라는 사실이라는 알려주는 목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해설자가 의상이나 음악에 얽힌 뒷이야기를 이러쿵저러쿵 덧붙이는 것은 대개는 사족이라 떼어내는 편이 낫다. 게다가 연기에 대해서 주절주절 늘어놓는 말은 애초에 전제가 잘못되어 있다. 일테면 김연아가 점프를 하려다 바닥에 쓰러진 상황은, 기술의 실패를 운운하며 점수를 걱정할 일이 아니라, 우리 인생이 언제나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정교한 알레고리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관객이 보내는 응원의 함성도 무척 거슬린다. 빙상장에서도 악장 사이의 박수를 금기시 하는 서양음악의 관람전통을 따랐으면 좋겠다. 관객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빙판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는 분별력을 가지기를 바란다. 다행스럽게도 관객의 비명이나 환호성 같은 것이 김연아의 표현력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감동을 참을 수 없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는 일은 삼가 자제해야 하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 자세라 하겠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나의 불만은 모두 피겨스케이팅이 공연예술이 아니라 스포츠의 카테고리에 속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김연아 덕분에 좋아하는 겨울 스포츠가 생겼으니 나로서는 즐거운 일이다.

폭력의 학습.

어릴 때 수퍼마켓 앞에 있었던 두더쥐 때리기 게임이 생각났다. 아야, 왜 때려, 아파, 이런 목소리가 나왔었지. 실제로 손에 방망이를 쥐고 모형 두더쥐를 두들겨 패는 옛날의 게임에서 느낀 폭력성과 가상공간에서 적군의 머리를 총으로 쏴서 날려버리는 요즘의 게임을 볼 때 느끼는 공포가 별로 다르지 않네.


2014년 1월 13일 월요일

시선.

1.
마사오 님의 글

"우리 솔직히 말해 보자. 우리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을 개념이나 비젼 보고 뽑았냐? 머릿 속엔 단촐하게 '나라 사랑'과 '아빠 사랑' 단 두 가지만 들어 있다는 걸 온 국민이 알고 있지 않은가. (실은 나라=아빠이므로 꼴랑 한 가지만 들어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만.)"

꼭그래야하나? 님의 댓글

"사랑이 밀애다."

이 은밀한 사랑 어쩔....

http://www.ddanzi.com/ddanziNews/1890231


2.
통일대박이란 북한식민지 건설이란 뜻.

https://www.facebook.com/notes/daesun-hong/박근혜와-조선일보의-통일/644975162234784


3.
전기장과 자기장은 리맹뿌와 뒷돈 같이 뗄 수 없는 관계.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108213707801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Electromagneticwave3D.gif


4.
제 귀를 막고 남의 입을 틀어막고 그렇게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어디 두고 봅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101138151&code=940100


5.
낭만창고 사건을 보면 일제가 물러나고 그 잔당놈들이 우익입네 애국입네 하면서 떼지어 몰려다녔을 적에는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111455371&code=940100

+

웹툰 <인천상륙작전>

http://comics.nate.com/webtoon/list.php?btno=55715

독재자의 죽음과 시민들의 슬픔.

꽤 어릴 적 기억. 김일성이 죽었을 때 평양시민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와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을 뉴스에서 보았다. 그때 북한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연기하는 걸까 아니면 세뇌당한 걸까 그렇게 느꼈더랬다.

인민 모두를 잘 살게 해준 것도 아니고,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정치범으로 몰아서 잔혹하게 죽이고, 고문하고, 핍박하고, 일반인들이 진실을 알 수 없도록 언론을 통제하고 은폐하고 그랬는데, 그런 지도자가 죽었다고 슬퍼할 이유가 없잖아?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 일이지만 울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가 죽었을 때 서울시민들도 길거리로 나와 울었다고 한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울 엄마도 너무 슬프고 무서워서 울었다고 한다.

비록 독재자일지라도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의 마음음 북에서든 남에서든 진심이었을 것 같다. 나도 노짱 가셨을 때 엄청 울었으니까. 집단의 광기, 그런 슬픔의 체험을 공유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김일성이나 박정희에 대한 비판이 객관적으로 납득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박정희의 과오에 대해 그가 얼마나 왜곡되고 과대평가된 인물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씨알도 안 먹히는 데는 이유가 있지 싶다.


이게 사는 건가.


일요일 오후, 친구가 sns에 짧은 글을 남겼다.


"나 아파, 아프다고, 망할 놈의 회사."


몸이 아픈데 휴일에 근무해야 하는 상황, 이게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며칠 전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다른 친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교감이 임신 계획 미루고 내년에 담임 맡으래."


씨바 이게 사는 건가...


일상의 기록.



1.

요즘 자고 일어나면 목덜미가 뻐근하더라.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아서 그런가 싶어서 마사지도 해보고 요가도 해보고 그랬지. 잠 자려고 누웠다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잠옷으로 후드티를 입고 자는데 누워 있으면 모자 부분이 뭉쳐서 목 뒤를 자극하는 모양이다. 잠옷을 바꿔야겠다.




2.

오늘의 총파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나는 친구한테 보험공단에서 보낸 청구서 돈 깎아주기 위해 서류 만들면서 저녁시간 보내야 할 듯. 일을 놓진 못해도, 돈을 버는 것도 아니지만서도, 괜히 바쁘네...




3.

친구를 만나서 LOL을 해봤다. 첨에는 근딜이 쉬울 테니 가렌으로 하다가 미스 포츈한테 엄청 당해서 총소리만 나면 도망다녔다. 그 담부턴 미스 포츈으로 신나서 빵빵 쏘고 다녔다. 통계 보니까 킬수는 서너개 정도인데 어시스트 킬수는 열개 이상 나오더라. 미스 포츈이 원래 그런 캐릭인지 아님 내가 막타를 못쳐서 그런 건지 쫌 아쉽.




4.

홍보 일을 맡았다. 첫 회의 마치고 매력적인 사업이라 해보기로 결정. 사실은 시간에 치여 엄두가 안 나지만 거절할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고. 그러나 사업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부각시키면서 동네 주민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함축적인 문구를 써내는 작업이 만만하지 않을 듯 싶다. 이런 건 잘 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누군가 소개시켜 주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이번 달도 주말에 쉬기는 글렀네.




5.

금요일에 로또를 샀다. 로또를 살 정도로 경제적으로 희망 없는 상태는 아니지만, 굳이 생돈을 버린 이유는 꿈에서 대통령을 만났기 때문이다.




노짱이 생전에 봉하마을 계셨을 때 같은 분위기로 시민들 만나서 같이 사진을 찍어주고 계셨다. 나도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서 어째서인지 좌중을 정리하고 지휘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방문객 순서대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들어오시구요, 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안내 역할.




노짱 왼쪽으로 한 가족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는데, 소년에게 엄마 아빠 사이로 서라고 하고 부모에게는 약간 뒤로 물러나서 꼭 붙어 서라고 뭐 그런 이야기를 했다. 노짱 오른쪽으론 어떤 아가씨와 그녀의 어머니 모녀가 같이 와 있었는데 부끄러워 말고 좀 더 바싹 다가오라고 그랬고. 평소 내 성격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지만 그렇게 정해주었다.




모녀 옆에 서 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이쪽은 다 여자들인데 남자들이 같이 사진찍을 기회를 얻도록 내가 비킬까요?"




이렇게 번잡스런 상황에서 사진 속 성비를 맞추기 위해 자기 차례를 양보하다니, 감사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뭐라고 대답하지 고민하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노무현 대통령님은 이미 사진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 같이 환하게 웃고만 계셨다. 말 한 마디라도 붙여볼 걸, 갑자기 후회가 밀려오네.




꿈 때문에 종일 싱숭생숭했는데 이런 맘을 털어 버리려면 어떤 행동이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로또를 샀다. 대통령 꿈에는 복권사는 거라고;;; 딱히 바라는 건 아니지만 만약 당첨된다면 당연히 도네이션 고고싱ㅋ(하지만 당첨결과 거액기부자가 되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꿈에서 봤던 그 아주머니 참 멋있었다. 무재칠시라고 재물이 없어도 다른 사람에게 보시할 수 있는 방법 일곱개가 있댔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자기 자리를 양보하는 거랬다. 어쩌면 이 꿈에서 주인공은 노짱이 아니라 아주머니일지도 모르겠네.

기술과 기세.

손에 칼이 있다고 누굴 찌를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사람을 찌를 수 있는 사람은 연필 한 자루만 있어도 찔러. 왕년에 주먹질 좀 하고 다녔던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싸움은 무기로 하는 게 아니라 기세로 한다는 말씀.

십년쯤 전에 사격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실탄으로 권총 사격을 해보았는데 그 결과가 제법 중앙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격술을 잘 배워두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사격이든 양궁이든 스포츠일 때는 원형 과녁을 쓰지만 군사훈련일 때는 인형 모양 과녁에 쏘게 한다고 들었다. 만약 내가 총을 가지게 된다고 해도 사람이나 동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건 정말 다른 문제..


독서취향 테스트.

http://book.idsolution.co.kr/

나는 열대우림 독서취향이란 결과가 나왔다. 취향에 대한 설명은 공감한다. 하지만 이 사이트에서 취향에 맞을 거라고 추천하는 책은 대개 다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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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명의 원천인 태양의 영향력이 가장 두드러진 곳. 어마어마한 태양 에너지로 인해 엄청난 양의 강수량과 엄청난 생산력의 동식물군이 번성한다. 열대우림이 차지하는 면적은 전체 지구 표면의 3%에 불과하지만, 이곳엔 전지구 생물의 15%가 살고 있다. 이곳에 사는 생물 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 아직도 인간에 발견되지 않은 동식물들을 헤아릴 수 없다.

극단적으로 다양하고 비옥한. 열대우림의 자연적 특성은 당신의 책 취향을 대변하기에 가장 적당합니다.

•밀림 같은 포용력:
마치 열대우림과도 같은 극도로 다양하고도 조밀한 책 소비 행태를 보임. 그 어떤 극단적인 내용이라도, 그 어떤 괴상하고 수상한 내용이라도 이 취향에선 대체로 기꺼이 소비되는 편. 가장 다양한 종류의 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지적인 대식가' 계층.

•태양 같은 직관력:
중요한 사실은 돼지처럼 무작정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수준 높은, 가치있는 책을 정확히 판단한다는 점. 이런 심미적 분별력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보임.

•원시적인 진실성:
당신의 취향은 뭔가 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내용과 표현을 선호함. 비록 조잡하고 미숙하더라도, 책이라면 무릇 솔직하게 자신감있게 꾸밈없이 쓰여져야 함.

당신의 취향은 전체 출판 시장의 약 5% 정도에 불과하지만, 소비 규모는 15% 이상일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유명 소설 작가의 상당수가 이 취향에 속합니다. 당신의 취향 중에도 작가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 많을 듯.

채권추심원 김철수의 하루 19 (마지막화)

2014. 01. 08. 수요일

이작가



 지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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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의 밤


철수는 이 술집에서 수아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아가씨를 만나고 싶었다. 철수가 알고 있는 민수아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과 바로 그 여자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기대감이 동시에 생겼다. 화장실에서 나와 미로 같은 술집 실내를 천천히 걸었다. 방문이 열릴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안을 살펴보았다. 기묘한 설렘과 떨림, 그러나 룸살롱을 빠져나오기까지 수아와 비슷하게 생긴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철수는 입구에 도착해서 화장실을 알려 준 주먹과 다시 만났다. 용기를 내어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그에게 물었다.


“지금 수아, 만날 수 있습니까?”


주먹은 귀찮다는 투로 철수에게 명함을 한 장 건넸다. 단단한 플라스틱 명함에는 ‘강남 골프’라는 상호와 ‘김진아 실장’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철수는 명함을 받아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주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수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주먹은 철수의 몸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등을 떠미는 듯한 기세로 몰아냈다. 그러면서도 친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놀러 오십시오.”


제 발로 쫓겨나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가면서 철수는 그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업소에 수아라는 아가씨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지만 주먹은 위압적인 태도로 다음을 기약했다. 수아는 오늘 출근하지 않았거나 어느 방 안에서 일하는 중이라는 걸까. 철수는 계단참에 멈춰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서 수아를 만나려면 손님으로 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철수는 골프숍으로 위장한 룸살롱의 명함을 소중하게 셔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술집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이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사이로 동료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드문드문 들렸다. 장재완 대리는 연초에 무리를 해서 일본산 중형차를 계약했다. 하지만 차를 사 놓고는 대출금을 갚느라 생활이 빠듯했다. 강남역에 주차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을 지출해야 했는데 주차비는커녕 기름값을 대기도 허덕이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타고 다니지도 못하는 차를 자랑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법무과장은 법무과 업무에는 성과급이 없다는 점이 불만이었다. 여직원과 남직원의 직능은 입사할 때부터 퇴사할 때까지 달랐고 콘돌리자 과장은 더 이상 승진을 꿈꿀 수도 없었다. 남대문에서 외국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상점에서 일하면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비록 시작은 허술했으나 사무실에서 오래 일한 직원들 중 여전히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는 이는 오직 그녀 하나뿐이었다. 콘돌리자 과장은 자신의 일본어 실력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으나 불행히도 주위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일을 하면서 일본어 재주를 써먹을 일이 없기도 했다.

박치훈 과장은 이 술자리를 마치고 다음 차수로 넘어가기를 바라며 부어라 마셔라 연신 술잔을 돌리고 있었다. 신이 나는 척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어서 일어나기를 바라며 ‘이제 좋은 데 갈까요?’ ‘이 잔만 비우고 나가실까요?’하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술자리를 옮길 결정권을 가진 본사 보안과장과 사장은 그들이 본사에서 함께 일할 때 알았던 다른 선배의 뒷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그러는 와중에 오진성은 고현지에게 지분대고 있었다. 꽤 많이 취해서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주제에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며 현지에게 집이 어디인지를 자꾸 캐물었다. 현지는 마뜩찮은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오진성의 호기로운 제안을 거절했다.


“건대 입구에서 가까워요.”

“그래. 이 오오빠가 바래다 준다니까 그러네.” 

“역세권이라 현지 혼자 가도 안 위험해요.”


고현지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하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술에 취한 오진성은 현지가 보내는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했고 그의 상체는 점점 현지를 향해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철수는 괜히 오진성에게 화가 났다. 철수는 붉어진 눈으로 오진성을 노려보았다.

제정신으로 이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조황진 과장이었다. 조황진이 철수를 달래듯 사근사근 말을 붙였다.


“철수 여자친구는 잘 있어?”

“지금 호주에 갔습니다.”

“호주는 왜?”

“워킹홀리데이 간다고.”

“언제 오는데?”

“돌아올지 모르겠습니다.”

“저런…”

“그래도 기다려 봐야죠.”


조황진 과장과 말을 섞으면서도 철수의 시선은 오진성에게 향해 있었다. 취기와 객기가 뒤엉켜 눈알이 뜨거워졌다. 그 뜨거운 시선을 현지마저 알아차렸으나 정작 당사자인 오진성은 철수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내들의 세계에 익숙한 조황진은 두 녀석을 이대로 두었다간 뒤끝이 좋지 않은 사고가 벌어지게 되리라 직감했다. 조황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철수를 일으켜 세웠다. 주량이 한계를 넘어선 것이 분명한 철수가 사고를 치기 전에 그만 들어가 보라고 억지로 권했다.

철수는 동료들을 남겨두고 술집을 빠져나왔다. 휘척휘척. 강남대로를 따라 술에 취한 사람들이 좀비 같이 움직였다. 밤은 피부에 생긴 멍자국처럼 푸르스름하게 얼룩져 보였다. 어둠 속에서 환히 빛나는 네온사인과 가로등의 밝은 불빛이 묵직하고 두텁게 느껴졌다. 철수는 만약 손을 뻗어 빛을 만질 수 있다면 그것이 토끼털 같이 부드러운 감촉일 거라고 상상했다. 그렇게 두 팔로 허공을 더듬으니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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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노점에서 팔고 있는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수레 위에 커다란 곰 인형과 혀를 내밀고 있는 강아지 인형, 바닥에 엎드린 얼룩 고양이와 열쇠고리에 매달린 노랑 오리까지, 보송보송한 봉제인형이 가득했다. 순식간에 낯선 세계가 펼쳐졌다. 철수는 수레 앞에 서서 빼곡하게 쌓여 있는 봉제인형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손을 뻗어 주먹만 한 크기의 코알라 인형을 집어 들었다. 코알라의 앞발 부분에 집게가 숨겨져 있어서 어딘가 달아놓을 수 있는 인형이었다. 집게를 눌렀다 놓으면 플라스틱으로 만든 코알라의 손이 딱딱 소리를 냈다. 그렇게 코알라 인형으로 박수를 치다가 철수는 지갑을 꺼내서 인형 값을 치렀다.


“귀여워라. 저 사주시는 거예요?”


철수가 깜짝 놀라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현지였다. 군대에서 심하게 다친 뒤로 철수의 왼쪽 눈은 거의 아무 것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현지가 옆에 있는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대체 언제부터 곁에 서 있었는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 다 자란 사내가 인형의 세계에 빠져서 정신을 놓고 있는 모습을 여자에게 들킨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현지는 철수가 코알라 인형을 들고 장난을 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당연히 저를 위한 선물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노점 수레에 설치된 밝은 조명 불을 받아 취기에 붉게 달아오른 현지의 뺨이 반짝반짝 빛났다. 발그레한 양 볼의 솜털까지 빛이 났다. 인형의 세계에 가까운 어린 여자의 웃음을 보자 철수는 기꺼이 인형을 내밀었다. 현지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부끄러운 듯 덥석 손을 내지는 않았다. 철수가 코알라의 앞발 집게를 벌려서 현지의 핸드백 손잡이에 인형을 매달아 주었다. 현지는 가방에 달린 작은 털뭉치를 내려다보며 혀를 쏙 내밀었다. 그리고 철수를 향해 말했다.


“주임님. 현지랑 맥주 한 잔 더 드실래요?”


애교가 잔뜩 섞인 목소리를 듣자 철수는 술이 확 깨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현지가 술집에서 철수의 뒤를 따라 나온 것이 분명했다. 철수가 황급하게 그들이 빠져나온 술집 골목을 살폈다. 다른 동료들이 이 모습을 목격하기 전에 어서 자리를 떠야 했다. 인형을 받아들고 배시시 웃고 있는 현지가 원망스러웠다. 철수는 자괴감을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사장의 컴퓨터를 이용해서 메인서버에 접속해야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측할 수 없었다. 며칠에 걸쳐서 이런 일을 하다가는 의심을 살 것이다.


“오늘은 좀 그런데…”

“아, 맞다. 오늘 저녁에 할 일 있다고 하셨잖아요? 무슨 일인데요?”


철수가 변명거리를 찾기 위해 바쁘게 머리를 굴리는 중에 스마트폰 진동이 울렸다. 카카오톡 메시지가 들어왔다. ‘연아(하트) 왜전화안해요?’ 모르는 사람인데, 하면서 채팅창을 열어보는 순간 기억이 났다. 박치훈 과장이 담당한 채무자였다. 화류계에서 일하는 여자의 손님이 가게에 와 있을 때, 전화를 걸어서 빚이 얼마나 되는지 이야기해 달라고 했었다. 철수가 채팅내용을 확인하자 여자로부터 메시지가 연달아 들어왔다. ‘지금전화’ ‘분위기좋으니까’ ‘얼른’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었다.

현지가 고개를 빼고 철수의 전화기를 살펴보았다. 프로필에 예쁘장한 여자 사진이 뜨는 걸 보고는 내심 경계하며 물었다.


“누구에요?”

“채무자에요.”

“어… 현지는 잘 모르지만 밤에는 전화하고 문자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맞아요.”

“오늘 밤에 이 채무자 만나기로 했던 거예요?”

“아니에요.”

“근데 왜 톡하세요?”


철수는 꼬치꼬치 캐묻는 현지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의혹을 살 만한 상황이었다. 이 채무자에 대해서 박치훈 과장에게 연락을 해 주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그도 꽤나 술에 취해서 일을 할 정신은 없을 것 같았다. 박치훈의 능글맞은 얼굴을 떠올리자, 다시 한번 회사 사람들이 철수가 현지와 단 둘이 있는 모습을 목격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철수는 현지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저 술은 더 못 마실 것 같아서…”

“그럼 커피나 한 잔 하실래요?”

“그래요.”


철수가 재빨리 길가의 편의점으로 달려 들어갔다. 2+1 행사 중인 캔커피 세 개를 사들고 나왔다. 현지에게 하나를 주자 현지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철수를 바라보았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자 철수는 다급한 마음에 캔커피 하나를 더 건네주었다. 현지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니라고, 야밤에 카페인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라고, 아무리 눈치를 주어도 철수는 알아채지 못했다. 현지가 실망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터덜터덜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느린 걸음으로 움직였으나 철수는 뒤를 따라가지 않았다.

철수는 편의점 앞에서 캔을 열어 단숨에 커피를 들이켰다. 달콤하고 시원한 음료가 목구멍을 적시자 그제사 갈증을 느끼고 있었구나 깨달았다. 남은 캔커피 하나도 마저 마셔버릴까, 아니면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갈까, 고민하다 생각이 났다. 한참 전부터 서류가방이 손에 없었다. 언제부터였나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자. 술집에서 나올 때에도, 들어갈 때도 없었다. 화장실에서 수아의 대출서류를 찢어 버리고서 가방을 잊고 나왔다.

잰 걸음으로 아까의 술집 화장실을 향했다. 사람 많은 곳에서 몇 시간이나 지났으니 여전히 그 자리에 물건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가방은 이미 사라졌다. 구두자국과 배설물과 토사물 자국으로 더러워진 화장실에서 철수는 깔끔하게 미련을 버렸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게다가 가방을 잃어버린 사건은 오늘 있었던 일들이 모두 현실이라는 점을 분명히 확인해주는 증거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차라리 모든 것이 손을 떠나버리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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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나오는 길에 다시 한번 회사 사람들과 마주쳤다. 본사 보안과장과 사장을 필두로 조황진과 박치훈, 한승철 과장 일행이 일차를 정리하고 나와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얼큰하게 술에 취한 박치훈 과장이 철수를 발견하고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어이, 브라더~”


한껏 들뜬 목소리, 전에 없이 친근한 말투였다. 술 냄새가 훅 밀려오며 동시에 그의 체중이 철수의 왜소한 몸을 짓눌렀다. 철수는 힘겹게 박치훈을 어깨로 밀면서 일으켜 세웠다. 조황진 과장이 다가와 거들었다. 그러자 박치훈은 철수보다 훨씬 덩치가 큰 조황진에게 기대듯이 어깨동무를 했다. 박치훈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조황진에 의지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연민이 밀려왔다. 박치훈은 술에 취한 밤이면 누구에게라도 기대고 싶어지는 것인가, 그래서 아가씨들이 나오는 유흥업소를 향해 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유흥업소를 찾아가는 사내들의 뒤를 따르면서 철수는 심란해졌다. 어느 업소에서 수아라는 아가씨를 다시 만날까 두려웠다. 만약 철수가 수아를 찾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어떻게든 이미 추적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수아의 흔적을 찾아낸다고 해서 그 그림자를 가지고 무엇을 하겠는가? 철수는 수아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체념한 지 오래였다. 수아의 빈자리를 실감하지 않더라도 자취생활은 외롭고 고단했다. 그리고 철수는 박치훈 과장이나 장재완 대리 같이 유흥업소를 들락거리며 외로움을 달래고 싶지 않았다. 철수는 여러 번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수아를 만나지 못한다면 다른 어떤 여자를 만나 어떻게든 결혼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여자라도 아이를 낳아 기르고 결혼생활에 찌들게 되면 잔소리를 쏟아내는 마누라가 되리라. 그때쯤 되면 철수도 회사생활에 찌든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자식이 자라는 과정은 흐뭇하겠지만 아이들이 훌쩍 자란 뒤에는 더 이상 아빠를 상대해 주지 않을 게다. 아내는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남편에게 특별한 관심을 주지 않을 테고 그렇게 되면 철수도 다른 아저씨들이 그러하듯 캔디나 미미 같은 아가씨를 찾아가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런 일을 아내에게 들킨다면 한 편의 막장 드라마가 펼쳐질 테고.

텔레비전 광고에 따르면 인생은 이렇게 구질구질하지 않은 것이었다. 남자는 동창회에 나가서 중형차를 보여주며 성공을 입증하고, 여자는 유명 브랜드 아파트에서 드레스를 걸치고 와인을 마시며, 그 집에 사는 아이는 동무에게 얼음 나오는 정수기를 자랑하며 즐거워해야 한다. 화목한 가정은 그런 그림이어야 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산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철수는 사내들의 뒤를 따르던 발걸음을 멈췄다.

인사도 하지 않고 일행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 하자마자 옷을 벗었다. 셔츠와 속옷을 빨래바구니에 넣고 한 벌 뿐인 양복 재킷과 바지는 옷걸이에 걸어 섬유탈취제를 뿌려놓았다. 휴대전화를 충전기에 연결하면서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내왔던 채무자가 떠올랐다. 애타게 영감님을 속여 줄 전화를 기다렸을 테지. 하지만 이제와 박치훈 과장에게 사실을 알린대도 해결하긴 너무 늦었다.

다음으로 현지가 생각났다. 잘 들어갔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애꿎은 전화 때문에 오해하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코알라 인형 때문에 괜히 앞으로 관계가 어색해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다독거리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연락을 하는 편이 도리어 흠 잡히기 좋은 구실이 아닐까 싶었다.

샤워를 하려고 안경을 벗으면서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에게 새 안경을 맞춰드려야지 하는 결심, 그러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기에도 시간이 너무 늦었다. 별로 급한 일도 아닌데 굳이 밤중에 전화를 드릴 필요는 없겠지. 그러나 내일 아침이나 오후의 적당한 시간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 여유가 있을지는 내일이 되어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철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과거를 보내고 미래를 계획하며 현재를 살았다. 그러나 과거는 설명하기 어려웠고 미래는 기대하기 어려웠으며 현재는 언제나 늦어 버리고 말았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매일매일이 늦어지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 속에서 채권추심원 김철수의 하루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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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정부.

엠비가카가 광우병 위험 소고기를 수입한다 했을 때에도 식재료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들은 괴담을 유포한다는 오명을 써야 했다. 만약 그것이 안전한 소고기라면 광우병 발병 가능성이 없음을 수입업체가 입증해야 할 일인데도 말이다.

초고압 송전탑 인근에서 생활하는 일이 인간과 동식물에 유해한가의 문제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실제로 송전선로가 들어온 뒤 암 발병률과 사망률이 늘어난 마을이 있는데도 전자기파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건이 은폐된다.

인체에 유해할 가능성이 있는 사안에 대해 기업이 그 무해성을 입증하기 전까지 사업을 보류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어야 할 텐데 이상한 일이다.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깨달았다. 국민의 정부가 아니라 기업의 정부라는 자본주의 국가의 대전제를 인정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관련 기사 보고 울컥해서.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
● "쌍둥이 생명을 앗아간 '악마의 물질', 분탕질은 아직도…"
● 누가 죄 없는 엄마와 뱃속 아이를 죽였나
● "두 아이 낳아도 하늘로 간 두 아이가 그립다"
● 배구감독부터 의사까지…다양한 직업의 피해자들
● 두 번째 인생 꿈꾸던 그녀의 죽음, 책임은 누가?
● 산소통이 '절친'인 이들, 죽음보다 더한 고통
● 연이어 사망한 자매, 남은 가족들의 죄책감은…
● 가습기살균제가 앗아간 엄마, 남겨진 아이들의 고통



촛불을 켜고.

촛불을 든다고 대체 뭐가 달라지냐고 그런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밤은 깊어만 가는데 몇 사람이 광장에 모여 촛불을 켠다고 세상이 바뀌겠는가 절망하기도 한다. 환하게 빛나는 얼굴을 보고 이런 대답을 찾았다. 아무리 희미한 빛이라도 스스로를 비춰볼 수는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다면 세상도 아주 조금은 변화한 것이겠지.


386세대에 대한 기억.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취업에 도움 안 되는 동아리 활동이란 것이 여전히 있었고 동아리 고학번 선배들이 종종 후배들에게 술을 사주러 학교에 왔었다.그중에는 술기운을 빌려 만만한 여자 후배를 성추행하거나 남자 후배 앞에서 쥐뿔만한 권위를 내세우며 군기를 잡았던 개차반 같은 놈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주 정상적인 어른들이었다.

경쟁적인 사회생활에 지쳐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후배들로부터 위로받기를 원했던 외로운 중년의 부장님, 법인카드를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공금을 가장 아름답게 유용할 방법을 찾아낸 과장님, 또는 조금 인상된 월급을 혼자 쓰기 미안해서인지 술자리를 통한 부의 재분배를 도모했던 대리님들. 직업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선배들은 너무 바빠서 연락하기 어려웠고 우리에게 술을 사주러 온 선배들은 꽤나 나이가 많았다. 다만 같은 동아리에 적을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선배들로부터 술을 많이도 얻어 마셨다.

선배들은 후배를 만나면 당신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특히 80년대 학번 선배들의 이야기가 스펙타클했다. 군부독재에 대한 분노와 도심에서 벌어진 전쟁 같은 시위에 대한 생생한 묘사, 스러져간 동지들에 대한 연민과 사회와 타협한 자신의 비굴함에 대한 고백, 대부분 이런 이야기였다. 각기 다른 선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의 구조와 전개, 상황묘사에 일치하는 점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군대에서의 경험담과 같이 집단의 체험이 누적된 뒤 개별 화자를 통해 극적인 요소가 부각되어 전해지는 일종의 민담 같았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 같이 들렸다.

옛 이야기가 전해주는 삶의 교훈은 언제나 우회적이다. 술을 따라주며 민주화투쟁의 경험을 전했던 선배들 중에 나에게 이러한 선택을 해야 한다거나 저러한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이는 없었으나 틀림 없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공짜 술이라니 세상에 그런 거 없다. 술자리를 통해서 아주 중요하고 분명한 가치들이 전해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술에 취해서 그것이 어떤 주의인지 굳이 따지지 않았다.

오늘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폭포 같이 우수수 떠올랐다. 화염병을 만들 때 적절한 연료의 용량이라든가 보도블럭을 손에 쥐기 좋은 크기로 깨는 방법 같이 실용적인 정보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을 지라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던 선배들의 표정은 분명히 기억났다. 재미 있는 옛 이야기를 들여주는 투로 말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 공포가 있었고 불안감과 죄의식도 있었다. 무용담 같이 과장된 이야기는 고통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 같다. 그런 투쟁 속에서 무척 아팠구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구나.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했던 거로구나. 이제 좀 알 것 같다.


+


교학사 교과서 철회과정이나 교육감 선거 같은 걸 보면 지금 40~50대 정도 된 학부모들 자식만은 올바르게 키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세대의 정치성향을 통계로 보면 영혼 없는 기회주의자가 훨씬 더 많지만, 그럼에도 자식에게는 왜곡되지 않은 이념에 근거한 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보인다. 부모가 되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바담풍 바람풍 하는 소리가 안타깝기도 한데, 한편으론 부모의 자기배반적 선택 덕분에 세상이 변해왔나 싶기도 하다.


++

김0성 내 아이가 커서 나와 다른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는 거부감도 한몫 할 듯. 우리 부모들은 다 체험하고 있지만^^

김0철 왜 그런마음 있잖아요. 나는 똥물에서 살아도 자식은 맑을물에서 살게 하고싶은, 내 아들이 다니는 학교가 교학사 교과서 채택했다면, 발끈할 수 밖에 없을 듯. 그런 오염물을 아이가 접촉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


2014년 1월 9일 목요일

시선.




우크라이나,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라고, 이런 시위 좋다.


1.
'모든 국민에게 월 300만원 지급' 법안 제출 … 스위스의 복지 실험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557064

중앙 찌라시. 제목에 스위스 기본소득 걸려 있기에 벌써 법안 통과 됐나 싶어 클릭해봤더니 새로운 내용은 없고 그냥 소득구간별 범칙금 납부와 1;12연봉제 소개하며 끄트머리로 기본소득제에 대해 "미국의 일부 주와 남미 몇몇 나라들이 시도는 했으나 어디에서도 제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제도"라고 쓰고 있다.그냥 한국의 좌파들이 유럽 선진국 따라서 네 돈 나눠쓰자 할까봐 두렵다고 말하지 잘 돌아가는 제도를 뭐라 까는 거냐. 개객기들.


2.
 [이명수의 사람그물] 그게 다가 아닐 수도 있다
http://www.hani.co.kr/arti/SERIES/303/618548.html

"나는 ‘모두 함께’보다 ‘따로 함께’란 말이 더 마음에 스민다. 그렇게 살기를 바라고 있다."


3.
[서민의 기생충이야기]대통령 이용법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401071154322&code=990100

대통령은 좌파하기 나름인가? ㅇㅅㅇ

4.
지식e채널 <완전한 세계>

http://ebs.daum.net/knowledge/episode/6955
숲의 나무들이 어떻게 빛과 바람의 변화를 감지하고 해충을 피하는지, 이런 정보를 식물호르몬을 통해 나무들 사이로 전달하고 있다는 내용.
감상평으로 달린 댓글이 인상적이다.

 "나는 나무 옆에 있는 것이 좋은데 과연 나무는 내가 옆에 있어도 좋을까?"


 5.
"머리에 피도.." 변호사가 판사에게 SNS서 막말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40107170007847

변호사 양반이 얼마나 열받아서 판사한테 상소리를 했나 봤더니 내 보기엔 아무 것도 아닌데. 판사 되면 머리에 피 안 말랐단 이야기가 그렇게 모욕적인 느낌일까? 사람이 욕을 좀 먹고 살아야 단단해지는 것 같기도 해...


6.
비욘세, 더이상 누군가의 해석이 필요치 않다
http://ildaro.com/sub_read.html?uid=6558&section=sc7&section2=%EC%9D%8C%EC%95%85

해석에 반대한다, 생뚱맞게 이런 제목이 떠오르기도 하네.

7.
“저작권 문제 없나?”…무료 한글 글꼴 37종 총정리
http://www.bloter.net/archives/176482

폰트 저작권 문제들. 돈 없이 책 만들 때 참고하기.



2014년 1월 8일 수요일

문규현 신부와 함께 하는 우주순례 피정.




우주순례피정이라니, 뭘까? 가톨릭 신자도 아니고 피정을 가본 적도 없고 우주를 순례할 계획 같은 것은 정말로 없지만, 주말 동안 문규현 신부님 가까이서 목소리 듣고 있으면 참 행복하겠다 싶어서 일단 스크랩.



'문규현 신부와 함께 하는 우주순례 피정' 전체 일정 개요

<주제>
사순 피정 '한없이 자비로운...'
에코 피정 '한없이 경이로운...'
대림 피정 '한없이 신비로운...'

<피정 일시와 장소>
* 사순 피정 '한없이 자비로운...'
사순 첫 주일 3월 8일(토) 오후 3시-9일(일) 오후 3시
전북 익산 나바위 성지 내 피정의 집

* 에코 피정 '한없이 경이로운...'
연중 5월 24일(토) 오후 3시-25일(일) 오후 3시
충남 논산 씨튼 영성의 집

* 대림 피정 '한없이 신비로운...'
대림 첫 주일 11월 29일(토) 오후 3시-30일(일) 오후 3시
전북 익산 나바위 성지 내 피정의 집

동반자 : 문규현 신부, 임선영, 이정규
주 관 : 마중물가치교육연구소

<피정 주요 내용>
* 사순 피정 '한없이 자비로운...'
초신성과 홀론 등의 우주이야기를 통해 우주에 깃든 희생과 소멸, 생성의 의미를 이해하고, 하느님의 뜻이 그리스도 수난과 죽음을 통해 사랑과 일치라는 계명으로 새롭고 완전하게 드러남을 묵상함.

* 에코 피정 '한없이 경이로운...'
우주 진화 138억년 여정을 통해 온 우주만물이 하느님을 통해 창조되고 서로 연결된 하나의 지체임을 이해하며, 지금여기 우리를 통해 새 창조 역사가 계속되고 있음을 묵상함.

* 대림 피정 '한없이 신비로운...'
어둠과 빛, 신비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이해를 통해 구원과 메시아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개인적 꿈과 소망, 공동체적 희망을 통합하고 묵상함.

<참가 안내>
* 참가대상 : 관심 있는 분 누구나 - 일반인, 신앙인, 수도성직자...
* 참가신청 : 070-8714-3532, 010-3277-5845, values@ecovalue.kr
* 참 가 비 : 각 피정 당 5만원. 학생 3만원
* 입금계좌 : 우리은행 1005-301-815212 사단법인생명평화마중물

* 각 피정은 주일 파견미사로 마무리합니다.
* 아래 도서를 미리 읽고 오시면 도움 됩니다.
[경이로움], 주디 카나토 저, 이정규 옮김, 성바오로, 2013
[우주 속으로 걷다], 브라이언 스윔 & 메리 에블린 터커 공저, 조상호 옮김, 내인생의책,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