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9일 화요일

루 리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루 리드가 세상을 떠났다.




목소리는 남아 들을 수 있네...

매문에 대해.

 나는 글을 파는 일이 별로 부끄럽지 않았다. 아무리 싸구려 글이라도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쓸모가 있다는 증거일 테니. 예전에 어느 순수한 문학청년 아저씨가 나에게 글을 파는 것과 몸을 파는 게 뭐가 다르냐고 했던 적이 있었다. 똑같은 일이지 싶다. 하지만 몸을 파는 일이 부끄러울 이유는 또 뭔가. 몸의 쾌락이든 알량한 활자든 스스로 노력해서 돈을 버는 일이 남의 돈을 갈취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재화를 만들어내는 사기를 치는 것보다는 나은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아무 말 못했는데 십 년 가까이 지나서 뒤끝작렬. ㅋ 그 문학청년 아저씨 대학 강사였는데 여제자 건드리고 다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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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이라거나 유부남이 미혼여성과 관계를 맺었다거나 하는 문제는 내 문제 아니면 이렇다 저렇다 하고 싶지 않지만 교육자와 학생은 싫다. 종교지도자와 신도의 관계도 그렇고. 연애에서 권력 문제 어디에서나 아주 중요한 쟁점이지만 권력 차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관계는 어쩐지 역겨워서.

2013년 10월 26일 토요일

거짓말에 대해.

나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달콤한 사랑의 말을 속삭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앞에서 어떤 가면을 써도 좋다고 내킨다면 맨 얼굴을 드러내도 좋다고 그것은 온전히 당신이 선택할 일이라고 알려주기 위함이다. 

2013년 10월 19일 토요일

제주행 세월호에서.

선상에서 같은 방을 쓴 아주머니 세 분이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객실의 전기불은 이미 꺼졌는데도 맥주와 과자봉지를 놓고 모여앉은 아줌마들은 잠들 생각을 않았다. 나는 꽤 피곤해서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아직 아홉 시가 되지 않았기에 선상의 카페에 가서 생맥주 오백 한 잔을 시켜놓고 책을 읽었다. 

책을 덮고 나니 열 시가 지나 있었다. 이제는 술자리가 파하거나 다른 자리로 옮겨갔기를 기대하며 객실로 돌아왔다. 아줌마들의 수다는 한층 과열되어 있었다. 최근의 은행금리와 주식투자가 화제에 올라서 대화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귀마개를 끼고 자리에 누웠지만 높은 톤의 목소리는 여전히 생생하게 들렸다. 

좀 조용히 해주세요, 시간이 늦었습니다, 저는 피곤해서 자려고 해요, 밖의 카페나 휴게공간에서 남은 이야기를 하세요, 어떤 문장으로 말을 건네면 좋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에 한 아줌마가 전화를 받았다. 다급하게 여기저기 통화를 마치고 일행에게 들려준 사연은 이랬다. 

딸애가 학원에 가야 할 시간인데 셔틀버스에 타지 않아서 선생님이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아줌마가 학원의 연락을 받고 집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딸애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까무룩 잠이 들어서 학원 버스를 놓쳤고 전화벨이 울리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아줌마는 한탄하듯 말했다. 내가 집에 없으니까 애가 학원도 못 가네. 다른 아줌마들이 그네를 위로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저이들은 자식에 묶여서 맘대로 훌쩍 떠날 수도 없구나. 주부 셋이 큰 맘 먹고 여행 짐을 꾸려 제주도로 가는 길이 얼마나 설레고 기쁠까. 자식이 없는 나로서는 겪여보지 않은 일이지만 비슷한 해방감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줌마들은 맥주 한 캔 씩을 앞에 놓고 두 시간이 넘도록 비우지 않고 있었다. 과자를 먹기 위한 목축임 음료로 맥주를 활용하는 모양. 그 모습을 보니 평소에 술을 즐기던 분들도 아닌 듯 싶었다. 어쩌면 남들 보는 앞에서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어둑어둑한 객실에 숨듯이 모여 앉아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객실 내 에티켓을 들먹이며 이들의 소박한 술자리를 방해하게 된다면 나중에 무척 후회하게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들의 이야기는 애들 학원과 특목고로 옮겨갔다. 입시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토로하다가 우리 애 성적 걱정을 호소하는 아이러니. 귀마개를 다시 장착하고 잠을 청했다. 

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꿈 일기.

꿈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꿈은 신이 우리에게 보내는 엽서라는 말을 들었다. 과연 신의 뜻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꿈의 발신인은 아마도 나 자신의 무의식일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꿈을 돌이켜 보는 것으로 건강이나 성장과정, 심리상태 따위를 추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를 다루고 돌보고 풀어가는 방법을 찾는 데 어떤 실마리가 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매일 밤 꿈을 기억하고 눈을 뜨자 마자 꿈을 기록해 두겠다고, 지난주 금요일 밤부터 시작했다. 금요일에는 아주 길고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았다. 토요일 새벽에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 머리맡에 마련해둔 꿈 일기장에 연필로 기억나는 내용을 적었다. 토요일 아침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노트에는 삐뚤대는 글씨로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알리바바

이 단어만으로는 도대체 무슨 꿈을 꾸었던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사십 명의 도둑들과 혈투를 벌였던가 아니면 알리바이라고 쓰려다 손이 미끄러진 것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첫 날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다음부턴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하기로 다짐했다. 그 다음 날, 토요일 밤에 꾼 꿈은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완벽한 문장으로 기록했다.

브래지어를 착용했는데 가슴 앞이 비어 있네.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브래지어 컵이 비는 상황은 무의식과 별 상관 없는 현실의 재현일 뿐인 것 같다. 이런 꿈이 유방확대수술을 받으라는 신의 계시인 것 같지는 않고 브래지어를 자궁과 연결지어 해석하는 정신분석학이 유용할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빈약한 가슴 사이즈에 대해서 꿈 속에서도 개탄하고 있는 자신이 안쓰러웠다.

일요일의 꿈은 이랬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아 연결음만 듣다 말았다. 부재중전화를 확인한 아빠가 나에게 회신했으나 이번엔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서로 전화가 엇갈려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런 꿈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가족 내 소통의 부재라든가 아버지에 대한 집착이라든가 이런 상황을 암시하는 꿈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꿈도 역시 현실의 연장선에 있었다. 토요일에 아빠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빠가 등산중이라 나중에 얘기하자 하고 넘어간 뒤에 다음날 전화가 온 것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께 다시 전화하려다 깜빡했고 그렇게 실제로 전화가 엇갈린 상황이었다. 

월요일 저녁에 꿈에서도 잊지 않았던 일을 해결하기 위해 아빠에게 마침내 전화를 걸었다. 근데 요리강습을 듣고 계신다며 전화를 끊으신다. 동네 여성회관에서 매주 월요일에 6주 동안 진행되는 <나도 쉐프!> 강좌를 신청하여 애호박 된장찌개와 부추 오이 무침을 손수 만들어 보았다는 소식을 다음날 카톡으로 들었다.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가 요리를 배우겠다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신다는 점, 진심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아빠 우리 통화는 언제 하나요... 오늘도 서로의 전화기에 부재중 전화 기록만을 남겨놓았다. 여튼,

월요일 밤에 꾼 꿈도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나는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었다. 어쩌다 큰 회의실 같은 곳에 들어갔는데 테이블에 여러 사람들이 둘러 앉아 있었고 모두들 나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 빌려준 건지 그냥 준 건지 확실히 모르겠다. 꽤나 진지한 태도로 돈을 받아서 지갑에 넣었다. 그 돈은 중국 돈이었다.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었는데 중국어로 말했다. 아침까지 꿈에서 본 숫자가 세 개 기억났다. 2, 3, 23, 이런 숫자가 로또번호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고작 3개 뿐이니 쓸모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는 꿈이라니 이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아무래도 모르겠다.

화요일 밤에는 여러 개의 꿈을 꿨다.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중에 하나는 생새우를 손질해서 튀김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마도 전날 칵테일 새우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서 새우튀김을 염원했던 것이 꿈으로 나타난 것 같다. 그리고 아이패드가 배송되는 꿈을 꾸었다. 지난주에 주문했는데 배송이 늦어지고 있었다. 꿈이 현실이 된 것인가 수요일에는 아이패드를 받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쯤 배송이 되겠구나 하는 짐작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 이런 꿈이 예지몽이라고 보기는 한심한 수준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지만 꿈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꿈에서는 무슨 일을 해도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모험을 하더라도 안전하다. 꿈 속에서 얻는 즐거움은 담배 연기 같이 뭉클대며 곧 사라지고 말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오늘 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궁금하다. 

2013년 10월 16일 수요일

무작정 여행기 14. 운남 야생동물원.

 
10월 31일 - 팬더 꿈

대학동기 중 가장 친한 친구인 L과 R이 지난 밤의 꿈에 나왔다.  우리 셋은 요트를 타고 어느 섬으로 갔다. 그 섬은 팬더만 살고 있는 사파리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팬더가 사람을 보고 놀라지 않도록 섬에 도착해서는 팬더 같이 보이는 옷을 입고 다녀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우리는 팬더 모양으로 생긴 솜이 든 털옷을 입었다. L은 너무 말라서 팬더처럼 토실토실하게 보이게 하려고 옷에 솜을 아주 많이 넣어야 했다.

우리는 흩어져서 팬더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섬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진짜 팬더 대신 우리 같이 팬더 옷을 입은 사람들 밖에 만날 수가 없었다. 한참을 헤매다가 드디어 팬더를 찾았다. 하지만 팬더인 줄 알았던 녀석은 바로 L이었다. 그애의 털옷에 들어 있는 솜이 너무 무거워서 아주 느리게 걷고 있었다. 그래서 어기적 어기적 움직이는 모습이 진짜 팬더 같았다. 우리는 L이 진짜 팬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도 한참을 꼭 껴안고 있었다. 따듯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동물원에 가고 싶었다. 쿤밍도 대도시니까 동물원이 있겠지. 지도를 보니 쿤밍에는 동물원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취호 근처 시내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시 중심에서 북동쪽에 있는 야생동물원, 야생동물원에는 팬더가 있다고 했다. (쓰촨성 청두의 팬더기지에서 하루를 보내고도 팬덕후는 또 간다.)


운남야생동물원
云南野生动物园 / 윈난예승동우위엔/ Yunnan Wild Animals Park
홈페이지(중국어) http://www.ynzoo.cn
주소 昆明市盘龙区云南野生动物园
개장시간 9:00~17:30
이용요금 일반 65위엔/학생 50위엔(+보험료 2위엔) / 공원 내 셔틀버스 이용 35위엔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가서 150번 버스를 탔다. 이 버스는 우리나라 마을버스보다 작은 크기의 미니버스였다. 시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나갈수록 더 늙고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버스에 탔다. 좁은 버스 안에 금방 사람이 가득 찼다. 앞자리에 앉은 아가씨가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걸 보고 나도 젊은 엄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조금 망설인 이유는 거절당할까 두려워서였다.

내가 다녀본 중국의 대도시에서는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문화를 본 기억이 없었다. 얼마 전 시안 도심을 가로지르는 시내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려다 메이스(没事)란 답을 듣고 소심해졌던 기억이 났다. 직역하자면 '일 없다'는 뜻인데 중국어로는 '괜찮아요' 정도의 말이다. 그 뉘앙스가 우리가 느끼는 것과 많이 다르고 꽤나 흔하게 쓰는 말이라고 알고 있지만, 어쩐지 그 말을 들으면 의욕이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어쨌든 쿤밍은 그렇게 대도시가 아니었고(인구 천만명이 넘지 않는다.) 더구나 이 버스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를 데리고 버스에 탄 젊은 엄마는 생글생글 웃으며 고맙다고 말하고는 바리바리 짐보따리를 발치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엄마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갔다. 어린 아이가 귀여워 눈을 마주치며 손장난을 치다가 아이 엄마와 이런 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가 보니 어느새 버스가 종점에 도착했다.

딴짓 하다 정류장 놓치기는 중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자주 하는 일이라 당황하지는 않았다. 다만 중국에선 교통카드 환승할인이 안 된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모두가 우르르 버스에서 내리니까 일단 따라 내렸다.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아까의 아이 엄마가 나에게 동물원 가려는 것이 아니었는지 물었다. 끄덕끄덕. 아이 엄마가 아까 내린 버스를 다시 타란다. 나보다 더 다급하게 동동 발을 구르며 버스를 세우려 손짓을 했다. 버스는 종점에서 쉬지 않고 바로 회차했다. 그리 넓지 않은 공터가 하나 있을 뿐인 소읍의 정류장이었다.



원래 내렸어야 했던 버스정류장은 팡저우농지아위엔(方舟农家园) 
정류장이라고 알려주는 표지판은 없지만...
 

버스정류장에서 야생동물원으로 가는 길

걷기 좋은 산책로가 있다.
 
금색 간판이 반짝거리는 운남 야생동물원 입구
 

운남성 야생동물원은 산을 끼고 조성되어 있었다. 정류장에서 내려 비탈로 한참을 올라가고 또 계단을 많이 올라가야 했다. 언덕길이지만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어서 걷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동물원 입구에 도착해서 입장권을 사는데 판매원이 학생인지를 물어왔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학생이냔 소리를 들으면 기쁘지 아니할 수가 없지 않은가. 할인된 학생 입장권을 구입하고 싶다는 욕심보다 먼저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일단 고개를 끄덕이자 학생증 확인도 하지 않고 학생표를 주었다. 감격했다.

중국에서 학생할인에 대해. 대체로 국제학생증을 소지하고 있으면 무난하게 통과가 된다. 하지만 한국학생증이나 외국어로 적힌 신분증을 들고 학생이라고 우겨보면 통하는 때도 있다. 오 년 전에 친구와 함께 베이징으로 여행을 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중국어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학생증을 내밀었다. 동행한 친구는 대학원생이었는데 깜빡하고 학생증을 챙겨오지 않았다. 아무 거나 얼굴 사진이 들어간 신분증을 찾아보라고 하자 친구가 꺼낸 것은 코스트코 회원증이었다. 어떤 관광지에서는 그걸로도 학생할인을 적용받을 수 있었다. 코스트코 대학에 재학하고 있다는 주장이 통할 수도 있으니 학생증이 없을 때 다른 신분증을 내밀어보는 것도 시도해볼만하다.


동물원 지도

안내판 등이 중문 영문으로 병기되어 있다.
중국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외국인 배려 관광지.
 
 
동물원 안으로 들어가니 불곰과 말레이곰이 있는 곰사가 보였다. 동물 우리가 낮은 위치에 있고 담벼락을 따라 구덩이가 있으며 관람자는 높은 곳에서 동물을 내려다보는, 옛날 식의 동물원 조성이었다. 야생동물원이라고 해서 사파리 같은 느낌을 기대했는데 나를 올려다보는 야생동물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좀 당황했다.





사람을 올려다 보며 먹이를 내놓으라고 울부짖는 곰 님.



옆으로는 타조, 원숭이, 너구리, 희귀조류, 파충류 등 작은 동물이 있는 전시관이 늘어서 있었다. 여기저기에 동물 먹이를 판매하는 매대가 있었다. 가격은 한 봉지에 5~10위엔 정도였다. 채식동물 전시관 잎 매대에는 당근이나 배추 따위, 조류 근처에서은 옥수수 같은 곡물을 팔았다. 동물들을 굶기는 걸까 의심하게 될 만큼, 녀석들은 철망 밖으로 애처롭게 손을 뻗고 주둥이를 내밀었다.


횃대에 묶여 있는 열대의 새들.

원숭이 모자.

또치가 요기 있네.

공작새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의자.

기념촬영 중.

우아한 백공작.

철망에 매달린 너구리들.
사람들이 너구리에게 먹이를 준다.

애써 내민 손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커다란 부리가 아름다운 열대의 새들.
 
소동물원을 지나면 전기차 타는 곳이 나온다. 전기차 탑승료는 35위엔. 공원의 산책로가 무려 16킬로미터라는 표지판이 보여서 겁을 먹고 나도 티켓을 끊었다. 근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 '1.6公里'라고 적힌 사이에 점 하나를 못 보았던 것 같다. 주변의 모든 중국인들이 전기차 표를 사길래 얼결에 따라했지만 체력이 따라준다면 걸어다녀도 괜찮을 것 같다.


전기차는 이렇게 생겼음. 탑승자가 꽉 차기를 기다렸다 출발한다.
 
전기차는 시속 20~30킬로 정도로 운행을 하다가 동물들이 모여있는 포인트에서 속도를 조금 줄이곤 했다. 동물들이 모이는 포인트는 먹이를 주는 구유가 놓여있는 곳이었다. 숲 속에 조성된 길을 따라서 말, 야크, 염소, 사슴, 타조(또는 비슷한 느낌의 대형 조류) 등 초식동물을 만나볼 수 있었다.

보통 숲 속에 멀리 들어간 안쪽에서 지내고 있던 것 같은데, 먹이를 길가에서 주어서 관람객 가까이 오도록 유도하는 모양이었다. 그 중에 어떤 녀석들은 차 가까이 다가와 사람에게 관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더라도 산비탈에 있는 산책로를 힘겹게 오르는 수고를 덜었고, 차 안에서 숲 속을 뛰어 다니는 동물을 보는 것이 나름 사파리 느낌 나고 좋았다.








눈이 예쁜 초식동물들.


우걱우걱 맛있게 먹어요.


밥 먹을 때 사진 찍으면 막 노려봄.

혼자 있으니 보호색이 눈에 띄는 얼룩말.

도도한 타조.

동물원에서 기르는 꽃사슴. 가슴띠를 채우고 산책을 다닌다.

백조가 사는 호수.

녹조류가 아름답게 번식하는 풍경-_-;

먹이를 내놓아라.

무서운 애들은 유리장 안에 있음.

산책하기 좋은 호수에

생뚱맞게 놀이기구도 있다.

새의 발자국.

다시 전기타에 올라타서 달리다 보면

동물이 모여사는 풍경이 펼쳐진다.

길가에서 밥을 먹는 애들도 있고

도로로 난입하는 애들도 있다.

동물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으면 잠시 쉬었다 갑니다.

전기차 코스는 세 번 나누어 운행하고, 정차해서 동물을 관람한 뒤 다시 타는 정류장이 지정되어 있었다. 백조의 호수, 팬더관, 사자호랑이관 앞에서 멈추었고 코스를 돌아본 뒤에 다음에 오는 전기차를 기다렸다가 타고 이동하는 식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움직여도 차를 꽉 채운 뒤에 이동하므로 기다려 준다. 전기차 정류장 근처에는 자잘한 간식거리를 파는 매점이 있었고 흡연장소도 있었다. 중국에서 이렇게 흡연장소 지정된 걸 보면 놀랍다. 흡연장소가 아닌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발견하기가 어렵지는 않지만.

중국에서 흡연장소 발견. 재떨이는 대륙의 사이즈.
 



그리고 대망의 판다관.



 
사천성에서 원 없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꿈에서도 보고 또 봐도 기뻤다. 이곳 동물원에서는 팬더 두 마리가 원두막 같은 곳에 올라가 있었다. 한 마리는 자고 한 마리는 먹었다. 자거나 혹은 먹거나 팬더 라이프.

팬더 우리 안쪽 원두막 가까이에 사진촬영대가 있었다. 10위엔을 내고 들어가니 팬더가 눈 앞에, 팔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 있었다. 거의 한시간 가까이 그 비좁은 곳에서 팬더를 관찰했다.








 

먹는 판다.

자는 판다.

판다 똥 발견.



 

처음에 먹던 녀석은 격한 숨을 몰아 쉬다가 푹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 그러자 사육사가 첨이 자던 다른 녀석을 깨우려 사과와 과일 등을 던져주었다. 팬더의 주식은 대나무이지만 아무래도 달달한 과일이 더 맛있는 모양이다.

잠에서 번쩍 깨어나 사과를 오그작오그작 먹더니만, 사육사가 던져주다 실수해서 원두막 아래로 떨어진 당근을 주으러 아래까지 기어 내려가기도 했다. 씰룩씰룩 긔여워!



 













물 마시러 씰룩씰룩 걸어간다.

먹다가 자다가

다시 먹는다.


판다 같이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팬더관 옆에는 사자와 호랑이 우리. 여기도 관람객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시였다. 약 3미터 높이의 다리 같은 구조물을 거닐며 아래를 내려보면 맹수들이 늘어져 자거나 심심해서 어슬런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어두운 통로를 지나가면서 바로 옆에 늘어져 있는 호랑이를 볼 수도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무방비 상태의 맹수를 바라볼 수 있다니 인간이 맹수를 다루는 방법에 새삼 놀랐다.





호랑이는 몸단장 중입니다.




 

발모가지 주의.
 
철제 골조 위에 나무로 마루를 댄 관람객 다리가 심히 불안했다. 목재가 손상되어서 벌어지거나 깨어져 나간 부분이 있었다. 여기서 발 빠져 떨어지면 호랑이밥 되는 거임. 상상하니 한 걸음 한 걸음 스릴이 넘쳤다.

고양이과의 육식동물은 천적이 드물어 야생에서도 많은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 도시에 사는 길고양이들도 먹이를 구하는 시간 외에는 어딘가 짱박혀서 자는 생활을 한다고 알고 있다. 내가 집에서 고양이를 키워본 경험에 근거하면 집고양이들은 하루에 12시간 정도 자고, 1시간 정도 먹고 싸고 움직이고, 3시간 동안 몸단장을 하며, 8시간은 졸거나 눈을 감고 빈둥거리며 보낸다. 그러니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사자나 호랑이가 관람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야성적인 모습을 드러낼 리가 없다.

그래서 운남성 야생동물원에서는 호랑이 낚시를 한다.사자도 낚시한다. 아스트랄한 말인데 진짜 그런다. 긴 대나무 막대에 줄을 매어 낚싯대를 만들고 끝에 닭고기를 매달아서 팔았다. 한번에 5위엔이었던가 10위엔이었던가 자세히 보지 않아 기억나지 않는다.

대나무 낚시대에 닭고기를 매달아서

휙 걸쳐놓고 기다린다.
멀리 있던 호랑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슬렁 어슬렁 다가온다.
사자가 사는 곳 다리 위에서도 웅성웅성

입질이 시작된다.

 

호랑이 낚시 매대 옆에는 닭장이 있었는데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니 닭들이 그 비좁은 닭장에서도 입구에서 먼 구석으로 도망을 쳤다. 사자 호랑이는 육식동물이고 이곳에서 냉장시설을 갖추는 것보다는 직접 닭을 도축하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먹이를 공급하는 방법일 것이다.
사람이 다가가자 닭장은 패닉.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시스템이지만 호랑이 낚시를 하는 사람이 직접 닭을 고르는 광경은 어쩐지 무서웠다. 잡식성 동물로 닭고기를 맛있게 먹는 입장에서 모두의 먹잇감 닭에게 연민을 느끼는 게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닭은 사자 호랑이에게 먹힌다. 사자와 호랑이는 닭을 잡는 사람의 낚시에 휘둘린다. 어쩌면 제일 무서운 맹수은 사람인지도. 먹이사슬의 상위에 존재하기를 바랐던 적은 없지만, 어쨌든 살해당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런 식으로 맹수를 통제하는 맹수가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슬픈 일.
 
사자가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문이 열리지 않자

철문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끽끽.

그러다 체념하고 옆 문으로 가본다.

하얀 호랑이도 산다.

백호야 백호야 불러보았더니

갑자기 발라당 드러누워 배를 보여준다. 헉.
 

사자 호랑이 관람코스를 돌아 나오니 전기차의 마지막 정류장. 여기까지 걸어온 뒤에 편도로 가는 표도 있었다.(20위엔)


 
 
마지막 길은 저녁시간이라 밥을 먹으러 길가로 나온 초식동물들이 많았다.


타조들은 겁이 없는 모양이다. 길가로 막 다닌다.

한줄로 늘어서서 밥 먹는 아이들.

여기서는 먹고

여기서는 싸고

더 적나라한 장면은 공개하지 말아야지.

먹이를 주면 가까이 다가오기도 한다.

동물이 근처로 와주면 전기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환호성을 지른다.


전기차 종점은 출입구에 가까운 곳이었다. 원형 경기장 같은 것이 있었다. 서커스를 한다고 해서 관중석에 앉아 기다리자 동물쇼가 시작되었다.

글래디에이터 느낌의 원형 경기장

주위에서 먹을 것을 팔고 있어서 맥주 한 잔 하면서 서커스 관람.
 
사자가 공에 올라타 굴리고, 호랑이가 배를 내밀고 구르기를 하고, 목줄 맨 흑곰이 누워서 다리로 탁자와 봉을 돌리며, 원숭이가 줄을 타는 쇼를 보았다. 야생동물원이라면 굳이 이런 짓 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사람들이 좋아할 텐데. 어쩐지 부끄럽고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사자 호랑이 곰보다 포악한 맹수가 우리.

이런저런 쇼를 소화해내는 맹수들

먹고 살기 힘들지. 씨바.
 
 
마지막 산책로는 공작새가 있는 언덕. 공작새가 닭 만큼 많았다. 이렇게 많은 수의 공작을 한꺼번에 보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귀한 녀석들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공작도 닭처럼 목으로 웨이브를 주며 걷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벼슬도 그렇고 발도 그렇고 깃털 색 말고는 닭이랑 비슷하다. 이런 닭 같은 애들을 태족들은 신성시했다고 한다. 태족은 닭을 먹을까 궁금해졌다.

공작새 언덕에 사는 녀석들.

귀한 공작이 끝도 없이 많으니까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았다.

공작이 오가는 사이로 산책할 수 있는 분위기.

공작새 무리는 작은 소집단으로 구성된 것 같았다.
이 녀석은 주변의 무리를 이끄는 대장 포스.


나오는 길에 목이 말라 매점에 들렀다. 그런데 아이스크림 냉장고 속에 녹용이 있었다. 핏자국이 남아 있는 사슴 뿔이 트레이에 놓여있는 모습을 보자 목마름이 사라져 버렸다. 나도 이명이 심해져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녹용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사슴이 이렇게 피흘리며 뿔을 잃었겠지.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명을 달고 있다. 녹용 같은 거 먹어봐도 소용 없다고 써놓고 싶었다.ㅠ

 

내리막길 내려오면 다시 소동물원을 거쳐서 나오게 된다. 입구와 출구는 한 군데이고 길도 한 길이라 헤맬 일은 없을 듯. 사진으로 다시 돌아봐도 참 넓다. 서울대공원 정도로 생각하면 고난의 길이 예상되겠다. 운남성 야생동물원 면적은 3000헥타르에 달한다고 한다.
 
쌍봉낙타도 있었다.

낙타는 왜인지 표정이 슬프다.

먹이를 받아 먹고 있는데도 눈이 슬퍼 보이네.

물가에 모여 단장하고 있는 원숭이들.

정문 밖이 바로 주차장이었다. 차가 엄청나게 많았다. 아마 지금의 중국은 빚 내서 차 사라고 권하는 분위기이겠지 싶다. 빵차(무허가 택시) 운전사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타박타박 꼬불꼬불한 길을 걸어 내려왔다.  

팡저우농지아위엔(方舟农家园)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맞은편은 폐업한 건지 애초에 개업을 안 한 건지 모를 병원 건물, 황량했다. 아무래도 자주 다니는 버스는 아닌 모양, 이십 분 넘게 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나마 시 외곽 신도시와 그 바깥의 변두리를 연결하기 위해 이곳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이것 한 대 뿐이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를 향해 오던 강아지.

살랑살랑 꼬리를 치며 다가오더니 눈을 마주치고 한참을 있었다.

동네 똥개가 야생동물원에 갖혀 있는 애들보다는 자유로운 듯.

봉고차 만한 작은 버스가 도착했다. 운전석조차 비좁았고 차는 덜컹거렸다. 길가의 풍경은 녹음이 우거졌음에도 황량해 보였다. 붉은 벽돌로 지은 낡은 단층집이 대부분이다. 지붕은 기와나 슬레이트로 덮혀있다. 적벽돌 벽에는 문구 같은 것을 페인트로 칠했다가 다른 페인트를 덧발라 지운 흔적이 남아 있다. 낡고 쇠락한 마을이었다. 거의 허물어져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은 집도 많았다.

한 정거장을 지나, 여전히 시 외곽, 변두리, 길가에 대형 화물차들이 잔뜩 서 있었다. 이곳에서 무언가 건설자재 같은 것을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차가 멈추자 몇 명의 노동자들이 올라탔다. 회색의 낡은 작업복을 입고 왼쪽 가슴의 주머니에는 홍처 담뱃갑이 들어있었다. 노동자의 담배 홍처, 내가 그의 담뱃갑을 유심히 살펴보자 그는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내가 탔던 버스는 이런 형태.

엉엉 울던 어린애. 사탕을 주니까 사탕을 물고 울었다.

비좁은 차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는 버스 운전사에게 거의 기대듯이 몸을 기울이며 가고 있었다. 그의 의자 등받이에 왼팔을 대고 오른팔로는 기둥을 붙잡고 섰다. 나의 섣부른 움직임이 어쩌면 그의 운전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운전사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당연한 일인 양 내가 몸을 기울여도 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버스 운전사는 어두운 회록색의 제복을 입고 낡은 목장갑을 오른손에만 끼고 있다. 기어를 움직이는 그의 오른손은 분주했다. 단정하게 짧게 깎은 그의 머리카락에는 비듬이 맺혀 있었다. 그의 나이는 아마도 이십대 중반이나 후반 정도, 서른은 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표정은 지친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단정하고 꼿꼿했다.

차는 어느덧 도심에 접어들어 신도시의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차창 너머로 보이고 차내의 사람들이 절반 이상 차에서 내렸다. 곧 있으면 내가 속해있던 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렇게 하루의 여행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