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8일 목요일

당원의 간증.


녹색당 당원이 된 일은 다시 생각해 보아도 잘 했지 싶다. 취재 차 서울녹색당 창당준비위회의에 갔다가 당원이 되었더랬다. 사공이 많아 금방이라고 산으로 갈 것 같았던 배가 자연스럽게 물길로 흘러가는 모양이 신기하기도 했고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앉아있다 보니 한 마디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녹색당 내부에서 한 없이 평등한 의사결정과정에 놀라고 이 정당 같지 않은 정당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러나 궁금하여 내부에서 관찰하고자 잠시 당원 신분을 가지려던 것이 어쩌다 보니 계속되었다.

그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아주 많이 달라졌다. 불교에서 말하는 아상이랄까, 자기 중심 또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흔들리자 이후로는 다른 생명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놀라운 체험이었다. 그런 시선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일까, 당원들과의 관계에서도 어느 집단보다 더 강력한 유대와 존중감을 느낀다. 쓰다 보니 무슨 신앙 간증 같지만, 어떤 집단에 소속될 것인지 어떤 사람들과 교류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정말로 중요하다. 내 생에 첫 정당은 녹색당, 마지막 정당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2013년 11월 22일 금요일

목수의 예술.

그는 나무로 가구를 만든다. 나무를 다루는 그의 손길은 부드럽다. 재단한 나무를 옮길 때면 어린아이를 안듯이 조심스레 끌어 안는다. 나무판을 톱으로 잘라 모양을 만들 때, 사포질을 해서 표면을 다듬을 때, 심지어 날카로운 끌로 찍어낼 때 조차도 그의 손은 다정하게 나무를 쓰다듬는다. 그는 가구를 주문하는 손님을 대할 때 보다 나무를 대할 때 더 친절하다.

가구 손잡이를 파거나 곡선의 무늬를 넣거나 홈을 파기 위해서 트리머를 사용할 때 그는 몸을 낮추고 나뭇결과 강철날이 만나는 부분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흔들림 없이 민첩하게 팔을 뻗어 나무를 긁어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굵은 나뭇밥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강철날의 움직임이 멈춘 다. 마침내 그가 원하는 모습이 나왔는지 확인하려 톱밥을 불어내는 그의 입술에는 웃음이 담겨 있다.

나무조각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구멍을 파고 도웰핀이나 비스킷을 집어넣은 뒤 결합부위가 꼭 맞물리게 하려고 클램프로 사이를 죄어 놓을 때 그의 눈이 빛난다. 고무망치를 들고 톡톡 가볍게 두드리며 정확한 교차점을 찾아낸다. 그가 잘라서 다듬어 놓은 나무들은 순종적이다. 그의 손가락이 움켜쥐는 대로 그가 처음 그려놓은 도면과 같은 모양을 찾아 나간다.

나무에 기름을 먹이기 위해 그의 열 손가락이 구석구석 표면을 쓰다듬는 모습은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성스럽게 기름을 먹이고 잠시 기다린 뒤 얼룩이 남지 않도록 겉을 닦아 내는데 이때 기름이 마르며 피어나는 냄새는 기묘한 흥분을 일으킨다. 가장 고운 사포를 쥐고 마무리 작업을 할 때 그는 사포를 들지 않은 왼손으로 끝없이 나무표면을 어루만진다.

숲에 목수가 나타나면 나무들이 떨고 목수가 먹줄을 튕기면 나무가 고개를 숙인다고 했던가. 나무를 지배하는 목수, 그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는 아주 천천히 일하고 꼼꼼하게 살핀다. 작업실에서 그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용을 감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음악은 전기톱과 대패와 사포가 움직이는 모터 소리, 세상에서 가장 거친 예술이다. 그런 공연이 매일 그의 공방에서 펼쳐진다.


2013년 11월 19일 화요일

녹색당의 지역 정책 제안.

지난주 토요일의 정책제안 모임에서 이런 의견들이 나왔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기억나는 것들만 추려서 적어본다.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정책으로 잘 정리되어 내년 지방선거 때 당당하게 알릴 수 있게 되기를...

도심의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이동식 주택을 설치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

영유아 대상 어린이집에 안전한 급식을 제공할 수 있도록 급식안전조례를 제정하자.

보육은 젊은 여자(엄마)와 늙은 여자(할머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공동체의 문제, 지역에 시간제 돌봄센터를 확충하고, 국공립 보육시설을 편의점 수 만큼 늘려야!

노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자체 노동인권위원회를 설립해서 기업의 비리를 고발한 내부고발자를 우선적으로 채용하자.

평등이력서, 나이나 외모 성별 등이 채용조건이 될 수 없도록 하는 평등이력서 제도 확립.

문턱 없는 가게,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시설을 정비할 때 지자체의 지원을.

동물에 대한 취향이나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생명권 개념에서 접근해야함.

길고양이 문제는 캣맘과 민원인의 갈등조정이 아니라 지역환경 개선정책으로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

메모들.

1.
우리가 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거, 그게 보수야.
ㅡ 서른여섯살이 되어 처음으로 시위에 참가하게 된 어느 오빠의 정의.

2.
국가보훈처가 대추리, 부안, 강정 등 정부의 폭압에 저항한 지역을 종북세력으로 보여주는 내용의 영상물을 제작해 교육자료로 활용해왔다는 내용, 시사인 기사이다.
이 기사에 달린 '퍼니셔'님의 댓글이 인상적이라 메모.
 "난 내 양심의 지령을 받았다"
북에서의 지령은 너님들의 뇌내망상, 우리의 지령은 양심에서 나온 것이란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31111090315802

3.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할 때.

4.
다른 사람이 쓴 원고를 검토해달라고 하면 최선을 다해야겠다. 돈 안 되는 일이라고 대충하면 부끄러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구나.

5.
도자기를 내주는 식당이 좋다. 플라스틱 그릇을 쓰지 않고 정갈한 도자가에 담아주면 뭐든 괜히 더 맛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식당에서 서빙하는 입장이라면 무겁고 다루기 힘든 도자기를 종일 들고 나르는 일이 손목에 팔다리에 무리가 되겠지.
일을 무리하지 말고 조금만 하면 좋겠다. 그러나 그러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그 인건비만큼 식대가 비싸질 테지.
밥을 조금만 먹는 편이 좋겠다. 이상한 결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없네.

6.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숭고함에 도취되면 결국 레이디 가카가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야하는 일을 하느라, 정작 하고 싶은 일은 못하고 죽는다. 여기서 함정은 사실 해야하는 일 따윈 없다는 것이다.

월요일 새벽의 충동.

저녁 내내 자료를 수집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오늘 찾아본 자료와는 상관 없는 원고는 뼈대만 잡아 놓았다. 내일 다시 관련 자료 모아야겠지만 대충 방향이 보이니까 수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듯. 그리고 친구에게 전해줄 문서도 있구나 잊지 말자. 화요일에는 오랜만에 가타리 읽기 모임에 나가보고 싶다. 수요일은 곤이 전시 시작하는 날, 기왕이면 오프닝 파티에 가보고 싶은데 일정이 어떻게 되려나 모르겠다. 목요일까진 빌려놓은 소설 네 권 모두 읽고 반납해야지. 금요일은 출판사에 들러서 새 작품 마감을 늦춰 놓는 데 성공하면 틀림 없이 술을 마시게 되겠구나. 토요일엔 대한문에 나가야겠다. 그렇게 일주일 지나가네... 일주일의 계획을 떠올리다가 문득 내 남자가 그리워졌다. 이런저런 일 모두 미뤄놓고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났다.

+ 그 전 주의 일.

주말에 남자친구를 부모님께 소개시키기로 했다. 날짜만 잡고 시간 장소는 미정. 아빠도 남자친구도 내가 선택하라고 하는데 엄마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답답하다. 한정식집 같은 데서 밥을 먹어야 하나 아님 카페에서 간단하게 차 한 잔 마시는 편이 나을까? 분당에서 내가 아는 데라곤 술집밖에...ㅠㅠ 첫 만남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대체 결혼은 어찌 하나?

어제 부모님과 남자친구 소개를 마쳤다. 동생과 나는 깍두기;

한정식과 일식집을 놓고 고민하다 결국엔 동네의 호젓한 카페를 선택했다. 분당 율동공원 히든벨리, 내가 고딩일 때부터 자리잡고 있었던 아늑한 카페. 남자친구가 먼저 도착해서 자리잡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2층 제일 구석자리를 잡아서 거의 독실 같았다.

남자친구가 정장 입은 모습이 어색했다. 정장을 입든 트레이닝복을 입든 아예 홀딱 벗든 어색했을 자리이긴 다르지 않지만.

모두가 긴장한 채 대화, 두서없는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호구조사는 무사히 통과, 남자친구가 당당하게 대답해주어서 든든했다. 엄마아빠가 걱정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도 잘 알겠고 암만 걱정해도 당장 해결되지 않을 문제들이라 갑갑하기도 하고 그랬다.

부모님은 먼저 일어나고 나와 동생과... 남친과 셋이서 근처 이탈리아 음식점에 밥을 먹으러 갔다. 남친은 임원 면접 끝나고 실무자 면접이냐며 웃었다. 동생은 남자친구를 좋게 본 것 같았다. 음식을 기다리며 동생이 말했다. 누가 보면 소개팅 시켜주고 눈치 없이 밥까지 먹으려고 따라온 주선자인 줄 알겠다. 내가 말했다. 좀 열린 사람이 보면 저 여자는 왜 따라왔냐 하겠는데. 그럴 정도로 남동생과 남자친구가 잘 어울려서 기뻤다.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와 동생과 셋이서 남자친구 이야기. 엄마는 남자친구의 경제적인 불안정을 계속 걱정했다. 동생이 쉴드를 쳐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돈 이야기는 그만 하고 딴 이야기 좀 해봐요. 엄마가 답했다. 다른 건 흠 잡을 데가 없는걸. 아, 일단은 성공인가!

조물주의 뜻.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
창조를 마치고 그것을 감상하는 조물주가 우리 피조물들을 좋아했단 대목을 보고 착찹해졌다. 제 의지와 상관 없이 태어난 생명인데 창조한 이로부터 인정을 받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

- 새벽에 성경을 들춰보다 이런 상념이 들었다.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이런 댓글이...

장00 그러게.. 생각해보니 만약 보시기에 좋지 아니하셨다면 어떻게 됐을까?

윤00 우리b모두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지만 부모님께서 처.음.엔. 좋으셨겠지

장00 그래서 물청소 한 번 하신듯. 지금은 핵청소가 될까봐 겁남..ㄷㄷ

윤00 이정도 컸으면 방청소는 알아서 해야지??




개인사 기록.



동생이 개인적인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일생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먼저 대충의 연도와 분기를 나누어서 기록해두고 자세한 내용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경영학과 출신이므로 작업을 엑셀파일에서 하고 있다. 도표로 정리된 일대기를 놓고 세부적인 기록을 추가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내 일기도 뒤적거렸다. 같이 여행을 갔던 정확한 일시와 그때의 항공편이나 여행일정 등의 세부기록이 나왔고, 2002년 동생 생일에 티셔츠와 현금 5만원을 선물했다는 기록도 나왔다. ㅎㅎ 우리가 키웠던 토끼 사과에 대한 기록도 나왔다. 어느 생일에 함께 아웃백에 갔다든가 하는 내용도 있고 사과파이를 구웠다든가 하는 소소한 내용도 있고 와우를 처음 시작한 날이 언제인가도 밝혀졌다. 이렇게 개인적인 일대기를 정리해보는 작업, 재미있어 보인다. 나도 조금씩 정리를 해볼까... 마구 쌓아둔 일기장과 스케줄러를 살펴보니 엄두가 나질 않지만 시작해보면 확실히 즐거울 것 같다. 그러나 내 일기에는 남자가 너무 많아서 문제. 비가 와서 오빠가 집까지 데려다 줬다, 근데 이 오빠 누구니, 그와 함께 커피빈에서 수다, 여기서 그는 누구일까, 도무지 모르겠네.

2013년 11월 4일 월요일

강아지 꿈.

꿈에서 품에 강아지를 안고 걸었다. 강아지는 시츄였고 꼭 세티 정도의 무게가 나갔지만 이 강아지가 세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끔 강아지의 얼굴을 보면 아주 편한 표정으로 턱을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이 강아지가 세티로 변하면 좋겠다는 헛된 기대를 하며 걸었다. 그러나 지치도록 걸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팔이 저려서 몇 번이나 잠든 강아지의 몸을 추스르며 하염 없이 걸었다. 슬픈 꿈. 몸도 마음도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