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꿈은 신이 우리에게 보내는 엽서라는 말을 들었다. 과연 신의 뜻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꿈의 발신인은 아마도 나 자신의 무의식일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꿈을 돌이켜 보는 것으로 건강이나 성장과정, 심리상태 따위를 추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를 다루고 돌보고 풀어가는 방법을 찾는 데 어떤 실마리가 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매일 밤 꿈을 기억하고 눈을 뜨자 마자 꿈을 기록해 두겠다고, 지난주 금요일 밤부터 시작했다. 금요일에는 아주 길고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았다. 토요일 새벽에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 머리맡에 마련해둔 꿈 일기장에 연필로 기억나는 내용을 적었다. 토요일 아침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노트에는 삐뚤대는 글씨로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알리바바
이 단어만으로는 도대체 무슨 꿈을 꾸었던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사십 명의 도둑들과 혈투를 벌였던가 아니면 알리바이라고 쓰려다 손이 미끄러진 것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첫 날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다음부턴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하기로 다짐했다. 그 다음 날, 토요일 밤에 꾼 꿈은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완벽한 문장으로 기록했다.
브래지어를 착용했는데 가슴 앞이 비어 있네.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브래지어 컵이 비는 상황은 무의식과 별 상관 없는 현실의 재현일 뿐인 것 같다. 이런 꿈이 유방확대수술을 받으라는 신의 계시인 것 같지는 않고 브래지어를 자궁과 연결지어 해석하는 정신분석학이 유용할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빈약한 가슴 사이즈에 대해서 꿈 속에서도 개탄하고 있는 자신이 안쓰러웠다.
일요일의 꿈은 이랬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아 연결음만 듣다 말았다. 부재중전화를 확인한 아빠가 나에게 회신했으나 이번엔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서로 전화가 엇갈려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런 꿈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가족 내 소통의 부재라든가 아버지에 대한 집착이라든가 이런 상황을 암시하는 꿈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꿈도 역시 현실의 연장선에 있었다. 토요일에 아빠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빠가 등산중이라 나중에 얘기하자 하고 넘어간 뒤에 다음날 전화가 온 것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께 다시 전화하려다 깜빡했고 그렇게 실제로 전화가 엇갈린 상황이었다.
월요일 저녁에 꿈에서도 잊지 않았던 일을 해결하기 위해 아빠에게 마침내 전화를 걸었다. 근데 요리강습을 듣고 계신다며 전화를 끊으신다. 동네 여성회관에서 매주 월요일에 6주 동안 진행되는 <나도 쉐프!> 강좌를 신청하여 애호박 된장찌개와 부추 오이 무침을 손수 만들어 보았다는 소식을 다음날 카톡으로 들었다.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가 요리를 배우겠다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신다는 점, 진심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아빠 우리 통화는 언제 하나요... 오늘도 서로의 전화기에 부재중 전화 기록만을 남겨놓았다. 여튼,
월요일 밤에 꾼 꿈도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나는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었다. 어쩌다 큰 회의실 같은 곳에 들어갔는데 테이블에 여러 사람들이 둘러 앉아 있었고 모두들 나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 빌려준 건지 그냥 준 건지 확실히 모르겠다. 꽤나 진지한 태도로 돈을 받아서 지갑에 넣었다. 그 돈은 중국 돈이었다.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었는데 중국어로 말했다. 아침까지 꿈에서 본 숫자가 세 개 기억났다. 2, 3, 23, 이런 숫자가 로또번호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고작 3개 뿐이니 쓸모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는 꿈이라니 이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아무래도 모르겠다.
화요일 밤에는 여러 개의 꿈을 꿨다.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중에 하나는 생새우를 손질해서 튀김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마도 전날 칵테일 새우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서 새우튀김을 염원했던 것이 꿈으로 나타난 것 같다. 그리고 아이패드가 배송되는 꿈을 꾸었다. 지난주에 주문했는데 배송이 늦어지고 있었다. 꿈이 현실이 된 것인가 수요일에는 아이패드를 받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쯤 배송이 되겠구나 하는 짐작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 이런 꿈이 예지몽이라고 보기는 한심한 수준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지만 꿈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꿈에서는 무슨 일을 해도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모험을 하더라도 안전하다. 꿈 속에서 얻는 즐거움은 담배 연기 같이 뭉클대며 곧 사라지고 말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오늘 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궁금하다.
꿈일기를 계속 써보려고 했으나 강정에서는 꿈을 꾸지 않았다. 아니, 분명 어떤 꿈을 꾸었겠지만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쉽게 다룰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의식으로 끌어오지 않는 것인가 싶다.
답글삭제다만 문규현 신부님이 자꾸 생각난다. 그분의 따듯한 미소를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