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에서 같은 방을 쓴 아주머니 세 분이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객실의 전기불은 이미 꺼졌는데도 맥주와 과자봉지를 놓고 모여앉은 아줌마들은 잠들 생각을 않았다. 나는 꽤 피곤해서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아직 아홉 시가 되지 않았기에 선상의 카페에 가서 생맥주 오백 한 잔을 시켜놓고 책을 읽었다.
책을 덮고 나니 열 시가 지나 있었다. 이제는 술자리가 파하거나 다른 자리로 옮겨갔기를 기대하며 객실로 돌아왔다. 아줌마들의 수다는 한층 과열되어 있었다. 최근의 은행금리와 주식투자가 화제에 올라서 대화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귀마개를 끼고 자리에 누웠지만 높은 톤의 목소리는 여전히 생생하게 들렸다.
좀 조용히 해주세요, 시간이 늦었습니다, 저는 피곤해서 자려고 해요, 밖의 카페나 휴게공간에서 남은 이야기를 하세요, 어떤 문장으로 말을 건네면 좋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에 한 아줌마가 전화를 받았다. 다급하게 여기저기 통화를 마치고 일행에게 들려준 사연은 이랬다.
딸애가 학원에 가야 할 시간인데 셔틀버스에 타지 않아서 선생님이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아줌마가 학원의 연락을 받고 집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딸애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까무룩 잠이 들어서 학원 버스를 놓쳤고 전화벨이 울리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아줌마는 한탄하듯 말했다. 내가 집에 없으니까 애가 학원도 못 가네. 다른 아줌마들이 그네를 위로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저이들은 자식에 묶여서 맘대로 훌쩍 떠날 수도 없구나. 주부 셋이 큰 맘 먹고 여행 짐을 꾸려 제주도로 가는 길이 얼마나 설레고 기쁠까. 자식이 없는 나로서는 겪여보지 않은 일이지만 비슷한 해방감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줌마들은 맥주 한 캔 씩을 앞에 놓고 두 시간이 넘도록 비우지 않고 있었다. 과자를 먹기 위한 목축임 음료로 맥주를 활용하는 모양. 그 모습을 보니 평소에 술을 즐기던 분들도 아닌 듯 싶었다. 어쩌면 남들 보는 앞에서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어둑어둑한 객실에 숨듯이 모여 앉아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객실 내 에티켓을 들먹이며 이들의 소박한 술자리를 방해하게 된다면 나중에 무척 후회하게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들의 이야기는 애들 학원과 특목고로 옮겨갔다. 입시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토로하다가 우리 애 성적 걱정을 호소하는 아이러니. 귀마개를 다시 장착하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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