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9일 금요일

암보험

얼마전에 새마을금고에 갔다가 보험가입 권유를 들었다. 암보험인데 백혈병 진단을 받으면 일억원을 넘게 준다고 했다. 백혈병이 제일 비싸고 그 아래로 무슨 암 육천만원 다른 암 삼천만원 이런 식으로 쭉 병명이 적혀있는 표를 보여주었다.
권유를 거절하기 위해 나는 암에 걸리지 않겠다고 답하니 직원이 웃더라. 진짜 진지하게 다시 대답했다. 백혈병에 걸렸는데 일억이 생긴다고 행복할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자 직원은 더 이상 보험가입을 권하지 않았다.
열여섯살 때 같이 내가 백혈병에 걸린다면, 하는 상상에 빠졌다. 어디든 산으로 올라가서 살 수 있는 만큼 살아야지. 남편 손 잡고 가면 그이도 바랐던 귀농 또는 귀촌이 매우 빠르게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몇 달이나 몇 년이나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덜 고통스러울 방법을 찾고 가능한 빨리 떠나기 위해 음식을 줄이는 편이 좋겠다.
이런 상상을 하며 열여섯살 때 같이 비극적인 죽음이 슬퍼서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런 삶과 마무리도 나름대로 괜찮을 것 같다. 혼자 해도 나쁘진 않은데 남편이 같이 있어주면 든든하고 뭔가 이런저런 잔재미도 있겠지.
살면서 꼭 이뤄야 하는 일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암보험에 가입하고 매달 보험료를 내고 암에 걸리면 보상금을 받고 수술이나 치료도 받을 것이다. 어쩌면 완치가 될 것이고 고통스럽게 얼마간의 시간을 살 수도 있고 이러거나 저러거나 결국은 죽을 것이다. 그런데 뭐 그리 치열하게 암을 걱정해야 하나 모르겠다.
삶에서 꼭 이루어야만 하는 일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 성공이나 명예일까. 누군가에게는 유전자의 전파가 그런 일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그런 것이 꼭 필요하다고 믿지 않아야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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