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3일 수요일

밀린일기- 8월 초

8월 1일
여자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었다. 어쩐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를 위로해 주려고 다가갔다. 여자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내 손을 붙잡더니 놓지를 않았다. 무서워서 손을 빼려 했지만 여자는 힘이 셌다. 이러지 말라고 놓아 달라고 간청했다. 여자는 무서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손 잡으러 온 거 아니었어? 라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새벽의 꿈.


8월 1일
며칠 전 귀농한 동네오빠랑 통화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일을 고통을 깨닫는 기회로 삼아보렴. 끝없이 밀려오는 고통은 없잖니. 몸 속에서 태풍이 일고 멈춘 뒤의 느낌을 알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단다.

오빠야는 심실세동이란 병이 생겨서 가끔 죽음 문 앞에 서는 기분이 든다고 하는데…

필요하지 않아도 괜찮아 - 시사IN, 시사인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39


8월 3일
작년에 성남녹색당에서 뭔가 해보자고 결심한 뒤 한참을 막막해 했던 기억이 난다. 음... 지역활동이라니 대체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건가 모르겠더라.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책을 찾아 읽고 난 뒤에, 씨바 이런 일을 내가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하고 버럭 책을 집어 던졌다.(훌륭한 책을 쓰고 괜히 욕을 먹은 하승수 위원장님께 죄송합니다;;)

시간이 좀 지나고서, 성남녹색당 총회하고, 지역모임도 모양이 갖추어져 가니, 지역활동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는 알 것 같다. 지역활동이란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만나면 시작되는 것이었다! ㅋㅋ 앞으로 뭘 어찌해야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전만큼 막막하지는 않다. 계속 어슬렁거리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나쁜 길로 가게 될 것 같진 않다.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날씨 좋을 때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는데.


8월 3일
작년에 성남녹색당에서 뭔가 해보자고 결심한 뒤 한참을 막막해 했던 기억이 난다. 음... 지역활동이라니 대체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건가 모르겠더라.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책을 찾아 읽고 난 뒤에, 씨바 이런 일을 내가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하고 버럭 책을 집어 던졌다.(훌륭한 책을 쓰고 괜히 욕을 먹은 하승수 위원장님께 죄송합니다;;)

시간이 좀 지나고서, 성남녹색당 총회하고, 지역모임도 모양이 갖추어져 가니, 지역활동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는 알 것 같다. 지역활동이란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만나면 시작되는 것이었다! ㅋㅋ 앞으로 뭘 어찌해야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전만큼 막막하지는 않다. 계속 어슬렁거리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나쁜 길로 가게 될 것 같진 않다.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날씨 좋을 때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는데.



8월 3일
현미밥에 가지무침 호박볶음 그리고 연어구이 츄릅츄릅


8월 4일
재난자본주의.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실들.
"세월호 이후 박근혜 정부 '재난 자본주의' 극명해져"


8월 5일
오늘 만난 우리 동네 녹색당원의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부채의식이 많다는 것. 오늘 번개모임에서 왜 녹색당원이 되셨는지 여쭈어보니 이런 대답이…

밀양과 청도의 할머니들에게, 이 세상을 살아갈 미래세대에게, 도시에 식량을 공급하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농부들에게, 가슴 아프게 세상을 떠난 우리 시대의 활동가에게, 미안하고 미안해서 녹색당원이 되었습니다.

부채의식 때문에 녹색당원이 되었는데, 이제 어떤 행동을 해나갈지 고민입니다. 우리를 움직이는 마음은 미안함에서 시작되었고, 이제 책임감이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함께 있으니 죄의식은 사그라 들고 희망이 생깁니다.

지하철 분당선 역을 따라 쭉 녹색으로 물들여 보자는 제안, 일단 지하철 프로젝트라고 불러 볼까요. 지하철 역세권에 녹색당 정책이 담긴 피켓을 들고 나가 정당연설회를 해보는 겁니다. 시민들 앞에서 우리의 주장을 알리고 난 뒤에 다음 지하철로 스르르 움직여서 다음 역에서 또, 그리고 다음 역에서 또, 분당선 지하철을 녹화하는 멋진 프로젝트가 술자리 농담으로 끝나면 안 될 것 같아 졸린 눈으로 급하게 씁니다.


8월 5일
갈비에 금이 가고서 복부에 압력이 가해지면 무척 괴로웠다. 복대를 차고 발걸음이 울리지 않게 살살 돌아다니고 있지만 몸을 언제나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잠을 자다가 무심코 뒤척였는데 갈비가 결려서 허걱 하기도 했고 한 번은 잠결에 내 손이 툭 내 옆구리를 가격하는 일도 있었다.

일상적인 생리현상이 퍽 괴롭다. 기침, 하품, 트림 같은 단순한 일에 복부의 근육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깨닫는 나날이다. 하하하 소리내서 웃다가 저절로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 별 거 아닌 행동인데 배에 힘이 들어가는 때가 많더라. 좀 신기히기도 했다.

제일 괴로운 순간은 응가할 때, 괄약근은 수의근이지만 그곳에 힘을 줄 엄두가 나질 않는다. 자율신경계에 의지해서는 배변을 할 수가 없으니 변기에 앉아 중력의 놀라운 능력이 직장에 임하시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무념무상 힘 들이지 않고 배변에 성공하고 있어서 앞으로 평생 변비 따위에는 시달리지 않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여러모로 불편하지만 나름 괜찮은 경험이란 생각이 든다. 내장을 다치지 않고서도 내장을 살살 쓰는 방법을 배우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술 마시면 안 된다고 의사가 막 엄포를 놓았는데 맥주 한 잔 정도는 괜찮은 듯. 진짜 내장이 다쳤으면 한 모금도 못 마셨을 거 아냐. 아휴 천만 다행이다. 여름인데 맥주는 마셔야지.

일주일만에 사무실로 복귀해서 내가 없어도 이 세상은 무사히 돌아가고 있다는 데 안도감을 느꼈다. 전에는 이런 느낌이 서운하고 섭섭하고 그래서 괜히 무리해서 일했던 적도 있었지만 나이 먹으니까 일 욕심도 줄어드나 보다. 욕심내지 않아도 이번 생에서 내가 할 일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8월 5일
동갑내기 동창생과 통화를 하다가 얼마 전에 드디어 마지막 학자금 융자를 상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속으로 나는 대학원에 안 가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일단 축하를 했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내가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이 있다면 말야, 그건 경제적인 안정에 대한 불신이야.


8월 5일
친구에게 괜찮아, 걱정하지 마, 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8월 6일
내가 대학교 신입생 때 들아갔던 동아리에서 성추행과 금품갈취를 당했던 적이 있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한참 나이가 많은 선배가 내 손을 붙잡고 주물럭거리다 내 반지를 빼가지고 간 일이었다. 재수생인 동기 오빠가 눈치를 채고 억지로 자리를 바꾸어 주어서 그 이상의 성폭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한참이 지난 뒤 반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엄마가 입학기념으로 선물해준 백금 반지였고 이후로 내가 가져본 적 없는 고가의 장신구였다. 다른 사람을 통해 그 선배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반지를 돌려달라고 하자 그는 자기 회사 근처로 오라고 했다. 나는 그와 독대할 용기가 없었다.

몇 주를 더 끙끙 앓다가 마침내 동네 파출소에 갔다. 어쩐지 죄 지은 기분으로 경찰 앞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머뭇머뭇 이야기를 하다 보니 눈물이 나서 울기도 했다. 우리 아빠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은 아저씨가 나와서 나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스무살요, 했더니 몇 년 생이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만으로 열아홉살이 되기 전이었다. 그러니까 그 선배는 미성년자를 성추행했던 것이었다. 나이 많은 경찰이 나에게 더 묻지 않고 그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건수사 중이라고 운을 떼었다. 나는 수사의뢰서 비슷한 것도 쓴 적이 없었지만. 어쨌든 그 나이 많은 경찰은 무서운 용어를 섞어가며 심각하게 말했다. 그 결과 바로 내 통장에 오십만원이 송금되었다. 나이 많은 경찰은 내가 은행에 가서 입금사실을 확인하고 돌아오자 자상하게 웃으며, 어머니가 걱정하시지 않게 똑같은 반지를 사라고 조언했다. 나는 감사합니다, 하고 나왔다. 다음 날에 토마토주스 한 상자를 사들고 감사인사를 가기도 했다. 경찰의 조언대로 똑같은 반지를 사지는 못했다. 엄마가 어디서 그 반지를 샀는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비슷한 것을 샀는데 엄마가 무심하게 넘어갔던 것 같다.

그렇게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한참 뒤 동아리 모임에서 그 선배와 다시 마주쳤을 때 그는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구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뭐, 이 씨발년아. 그제서야 이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리를 떠나 울면서 후배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그애와 아무리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이 일이 해결될 리 없었다. 한동안 나는 내가 화대를 받았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내 몸을 제멋대로 만진 남자에게 오십만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그 동아리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약 오륙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나는 강력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운동권386=개새끼. 격동의 80년대에 학생운동을 했단 이야기를 하는 사내를 만나면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이 기분은 이후로도 꽤 오래 지속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그보다 더 역겨운 운동권 개새끼를 여럿 만났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저보다 나이 어린 여자를 학대하는 것이 전두환을 타도하는 것과 비슷하게 정의로운 일이라고 믿는 머저리도 있었다. 그는 자기가 겪은 폭력을 나에게 가르쳤다. 나는 그의 알콜중독이 민주화 운동의 훈장인 줄 알았다. 다시 생각해도 불쌍한 남자, 하지만 내가 그에게 어떤 책임도 느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았다.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이메일 주소를 바꾸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고정관념을 강화했다. 운동권386=개새끼.

몇 몇 개새끼의 체험이 나에게는 무척 강렬한 것이라 한동안 선입관을 깨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세대의 남자를 만나면 괜히 두려운 기분이 든다. 이제는 사십대를 지나 오십대가 된 386세대도 있다. 그들은 충분히 늙었고 이제 완력이나 기세로 맞붙는대도 내가 넋놓고 당하지는 않을 테지만 여전히 그 나이대의 남자를 만나면 경계하게 된다. 이런 공포는 언제쯤 사라질까 모르겠다.

몇 년 전부터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예외가 조금씩 생겼다. 처음은 안명균 위원장님. 언젠가 그분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이야기를 해주었던 적이 있는데 신기하게 무섭지가 않았다. 그가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성적인 암시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겪은 폭력이 나를 향하지 않을 것이란 안도감이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나의 동지라는 믿음이 강하게 생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막연한 이미지가 아니라 구체적인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편안하게 공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 후로 만난 운동권 세대의 남자와 관계맺기가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 내 나이가 나쁜 기억에서 벗어나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어지간하면 용서하고 싶다.


8월 8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여야 야합안 말고 유가족안)을 촉구하는 성남시민공동행동!

어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남시민 원탁회의 촛불문화제에 참여했습니다. 유가족 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더욱 뜻깊은 자리였어요.
성남녹색당에서는 세월호와 고리1호기를 연관하여 규제완화와 안전불감 문제를 다룬 피켓을 전시했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돈보다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지 묻는 메시지 보드를 놓아두었지요. 이 질문에 7살짜리 어린이의 대답 "연애 ^^"
어린이들이 녹색당 핀버튼에 열광했다고 하고 성남시민 한 분이 당원가입도 해주셨다고 합니다. 약간 무리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행사에 참여한 보람이 있는 듯 싶어요.
행사 진행 함께해주신 동영식, 오정림 운영위원님 더운 날에 고생 많으셨어요. 용인 서용하 당원님과 최은식 정책위원장님, 이희정 사무처장님 와주셔서 감사해요~!
환경운동연합 김상열 집행위원님, 햇빛발전협동조합 이석주 이사장님, 김성호 선생님과 녹색평론 독자모임 벗님들, 그리고 심재상 선생님~ 모든 면으로 살펴주시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제 저녁 행사에서 사회자 역을 맡았다. 녹색당이나 친한 사람들과 같이 있는 작은 모임 진행하는 정도는 몰라도, 야외 광장에서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상황이 좀 두렵기도했다. 그래도 두려운 일을 피하면 안 될 것 같아 용기내어 해보았는데 결과는... 음...; 나름의 성과라고 하면 150명 정도의 군중은 이제 두렵지 않을 것 같다는. ㅎㅎ


8월 9일
먹고 싸는 문제에선 절대 굴하지 않는 체질인데 어제 저녀부터 폭풍설사가 밀려올 때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갈비가 욱씬대는 기분이 온몸으로 퍼져서 뻣뻣하게 결리고 몸살감기 걸린 때 같이 식은땀도 나고 뭥미 왜 이럼? 아침에 눈 떠보니 땀범벅에 열도 나는 듯한 기분이라 거실로 기어나가 두꺼운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웠다 깨보니 생리가 펑; 요즘은 생리하기 전에 몸이 격한 시위를 하는 것 같다. 에휴에휴



8월 10일
오전에는 탄원서를 보내느라 전화기를 붙잡고 복합기와 씨름을 했다. 복합기에 뒷다리를 한 번 채였지만 결과적으론 한판승. 그래도 한판 붙고 나니 기진맥진했다. 카페인 쭉쭉 빨면서 서울로 이동해 멋진 전시를 보고난 뒤 화장실에 처박혀 폭풍같은 설사를 겪었다. 대장이 항문을 빠져나갈 듯이 격렬하게 움직이는 느낌이 뱃속에 다른 생명체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임신하면 이런 기분일까?) 갈비에 금이 간 뒤로 배에 압력이 느껴지면 무척 괴로워서 괄약근을 개방하는 방식의 배변법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뱃속에서 풍랑이 일어나니 변기에 앉아 버티고 있기가 힘들었다. 설상가상 생리가 터져서 호르몬은 미쳐날뛰고 자궁은 토악질하는 와중에 광화문에 갔더니 눈물 쭉 기운 쭉 잔뜩 우울해져 버렸다. 집에 들어와서 씻고 생리대 빨아 놓고 방바닥에 드러눕고서 삭신이 쑤신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온 몸의 근육이 아프고 손가락 발가락 마디가 부어오르고 팔다리는 저리고 허리는 돌밭에 누워있는 것 같이 배기는데 이런 느낌이 동시에 찾아올 수도 있구나.
ㅡ 한 줄 요약. 인체의 신비.




8월 10일
광화문으로 가는 길에 비가 너무 쏟아져서 조계사 처마 아래 앉아 있는데, 허공이 온통 젖어 버리니 높이 매달린 물고기등이 신이 난 것 같다. 물 만난 물고기등.


8월 10일
핵의 아이, 2025.
2015년 7월 26일, 노후원전 고리1호기가 폭발했습니다. 같은 날 남한에서 173명의 신생아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비극적인 참사를 어떻게 '기억'할까요?
예리한 문제제기, 풍부한 내러티브, 섬세한 표현력의 삼박자가 어우러진 사회적 예술가집단 아트사우르스의 전시












8월 11일
민중미술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새삼 슬프다.)
http://www.hankookilbo.com/v/bf267bbf12eb4e06a385922e061f22f6



8월 12일
행복해지는 데는 어떤 자격도 필요하지 않아. 미안한 마음을 느낀다면 미안하다 사과하고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 돼.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너무 종교적인 것 같아 하지 못했다.

내 또래, 가임기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동갑내기 친구가 아이를 잃었다. 다른 친구는 아이를 얻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쓰고 있다.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둘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게 다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행복과 세트로 찾아올 리 없는데,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고려하면 그런 행복은 너무나도 허약한 기반 위에 있는데… 그러나 아이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는 차마 못하겠다.



8월 12일
무불사. 규모가 큰 사찰이다. 일주문 기둥은 장정 두 사람이 마주보고 팔을 뻗어야 간신히 손이 닿을 굵기였다. 너른 마당에는 거대한 석탑이 있었다. 법고와 목어 같은 악기도 크고 장엄한 소리가 났다.

그러나 넓은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의 모습을 닮은 어떤 형상도 없었다. 연꽃 문양이 새겨진 좌대만 덩그러니 있었다. 단상에 공양물로 올린 음식도 변변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신심 깊은 보살들의 정성 덕에 마루며 탁자며 모든 물건에서 반질반질 윤이 났다. 신도들은 빈 좌대를 향해 절을 하고 기도를 올렸다.

ㅡ 일요일 새벽에 꾸었던 꿈. 아마 조계사 처마 밑에 앉아 비를 피했던 기억이 남아서 생긴 이미지인 듯 싶다. 꿈에서 본 절에 무불사,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사찰에 불상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언젠가 써봐야지.



8월 12일
야음, 반딧불이를 만나러 야트막한 산을 올랐다. 동네 어린이와 함께, 와글와글 밤의 고요를 깨뜨리며... 그 밤이 기억났다. 그리고 문득 반딧불이 수컷은 암컷을 만나기 위해 빛을 낸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8월 12일
어떤 일을 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열정에 감동할 때가 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상대와 내가 공유하는 부분이 없을지라도. (보통 그리 넓게 보지 않는 사람이 하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자기의 열정에 취해 다른 사람의 동참을 권유하는 수준이 이상의 행동을 하는 건 무례하고 부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정적인 사람 중에 자신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분노하거나 심하게는 저주하는 말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수님 믿고 천국 가라고 권할 수는 있지만, 믿지 않으면 지옥불에 떨어지리라고 예언한다면 온당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서명하기를 거부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제 자식이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지,라고 다 들리는 혼잣말을 던지는 사람을 보고 당황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제 집 앞에 송전탑이 들어서야,라든가 핵발전소가 폭발해야,라든가 하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지 말아야지. 아무리 절박한 기분이라도 그러지는 말아야지.


8월 13일
나도 모르게 피곤피곤 열매를 먹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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