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0일 수요일

종교와 순수와 탐미.

비가 거세게 내리는 날 지하철을 타고 가다 엔도 슈샤쿠의 <깊은 강>이 떠올랐다.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지하철에 있었다. 책을 덮어놓을 수가 없는 대목이 연이어져 몇 개의 역을 지나치고 말았고 결국 통곡하듯 울었다. 그 날의 기분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작가 이름과 책 제목은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하고 있을 법한 선배언니가 생각났다. 전화를 걸어 이러이러한 내용의 책을 기억하고 있는지를 묻자 언니는 책 제목과 작가 이름을 알려주고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면 그때 같지 않을 걸." 우리가 학생이었던 시절에도 언니가 이 책에 대해 비슷한 표현을 썼던 기억이 났다. 다시 보면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평이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작품은 실망스러운 쪽에 속할 것이다. 형식이든 내용이든 새로울만한... 것을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깊은 강이 주었던 울림은 신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을 다룬 흔한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작품의 주인공은 진지한 가톨릭 신자였고 범신론자였으며 깊은 강 처럼 흐르는 사랑 외에 어떤 물살에도 순응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엔도 슈샤쿠의 책에 담겨있난 신과 사랑은 미시마 유키오와 다니자키 준이치로 같은 일본의 탐미주의 작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종교색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색깔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밀도는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의 예에서 보듯 가장 자기중심적인 작가들의 유미적 태도에서 비롯한 종교적 열망이란 임시방편의 도피처와 같아 믿음직하지 않다. 분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골드문트의 이야기에도 비슷한 메시지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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