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익집단과 이념집단의 경계에서.
"목적의식에 부합하게
당원만 늘이려 하고
교인만 늘이려 하고
조합원만 늘이려 하는
그런 마음 가짐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 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그렇게 만났으면 좋겠어.
사람 대 사람으로
그렇게 품어야 하겠지." - 권단
"가족주의는 야만의 최고봉입니다." - 황덕명
2. 엄마
카카오톡 메시지가 엄청 많이 들어와 있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모두 엄마가 보내신 것. 낮에 카톡으로 사진 전송하는 방법을 알려 드렸더니 엄마 친구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을 보내오셨다. 울 엄마와 친구들의 스타일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비슷해서 우리 엄마를 한 눈에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3. 6월 29일 경기당원총회를 마치고.
작은 역할을 맡아서 일을 해나가면서 아쉬운 부분도 많이 있지만 어쩐지 경험치가 쌓여가는 느낌이다. 훌륭하게 잘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있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샤워하다 말고 얼굴을 붉힐 정도는 아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겠지 하는 믿음이 생겨서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다. 좋다. 삶의 안정감은 이렇게 쌓아가는 것일까?
4. 술먹고 토해낸 말들.
여전히 사랑이 필요하다. 오직 사랑만이 굳건하게 존재할 것이다. 우리가 달리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메말랐구나. 일하기 싫고 사람도 싫다. 나에게 솟아나는 사랑이 없다. 연민도 동정도 없다. 그러니 공정해져야 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너의 젊음이 노래하는데. 내가 환호할 이유는 없는데.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에렛의 단문을 읽듯이 나의 삶이 차분하게 읽힌다. 나쁘지 않다. 산길을 걷는 것처럼 느리게 걷는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돌뿌리 같이 그 골짜기에 두고 간다.
실존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살고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여지는 것들은 그들의 환상에서 기능할뿐이다. 관찰자는 어디에나 있다. 나 역시 세계의 삶의 고행에서 많은 환상을 품고 있다. 사실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마귀의 꼬리와 거미줄의 엉킴이다. 굶어 죽은 개의 눈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나의 글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필요로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버린다. 나는 아무래도 좋다. 오늘 쓰지 않으면 오늘 나는 죽어간다. 그외의 생활은 그저 논쟁과 산책과 어느 생명을 죽이는 일 또는 섭생과 관계할 뿐이다.
육체는 충만하고 감각은 부서진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고 싶을 정도. 가끔 그 높은 천정을 바라본다. 하늘은 높고 습하다. 부끄러운 계절이다. 장마로구나. 쓸모 없는 것들. 나. 또는 욕망. 부질없구나.
내 안에 문학이 있다면 이것이겠지. 내가 아는 삶 또는 내가 알고 있다고 믿고 천착하는 삶. 모두 거짓이다. 그러나 그런 거짓말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
문체도 사건도 인물도 문제가 아니다. 가장 괴로운 부분은 그 속의 나 그 이야기에 묻어있는 나 자신. 그것이 가장 부끄럽고 불편하다.
부끄러움이 전부라면 그렇게 써야지.
배치하는 것의 문제. 어떻게 둘 것인가?
노출하지 말아줘. 그 이야기의 아가씨들이 나라고 생각하지 말아줘. 나는 한번도 그렇게 사랑받았던 적이 없고 그렇게 사로잡힌 적이 없다고.
치사한 변명이야. 사로잡히기 싫으니까 하는 얘기.
아가씨들의 사랑은 언제나 거기 있다. 뭘 모르는 듯이 왜 이러니.
누구도 구할 수 없다. 그것은 예수의 작업. 나는 그저 기록할 뿐이다.
위태로워. 달콤한 강아지와 씁쓸한 기억들이 함께하는 잠자리. 예쁜 개가 위로해주니 버티는 밤. 이렇게 달콤한 강아지가 나에게 안겨주다니! 고마울수밖에.
사랑의 기억. 당신. 그립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 그랬지. 받아들여지지 않을거야. 할 수 없어.
어차피 이번 생은 망한 걸까 리셋하고 싶다. 저장해둔 시점에서 불러오기라도.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