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희랍어 시간, 문학과지성사
"눈물이 흘렀던 길에 지도를 그려뒀더라면.
말이 흘러나왔던 길에 바늘 자국을, 핏자국이라도 새겨뒀더라면.
하지만 너무 끔찍한 길이었어.
혀와 목구멍보다 깊은 곳에서 그녀는 중얼거린다."
이야기는 다른 감각을 잃은 사람들의 관점으로 넘어간다. 청력을 잃은 여자 목수에게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희랍어 강사가 편지를 적어 보낸다. 눈이 멀어 가는 남자는 남의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을 보고 소리를 읽어내는 여자와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여자는 열일곱 소년이었던 남자의 첫 사랑이었고 그는 자기의 눈이 완전히 멀어 버린 뒤 여자와 소통할 방법이 없을까 두려워한다. 여자는 남자를 거부했고 남자의 사과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들은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어둠을 향해 걸어가는 남자는 침묵 속에 살아가는 여자에게 자신의 어릴 적 어리석음과 상실의 고통을 담담하게 털어 놓는다. 여자의 회신 여부는 알 수 없다.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 그들은 상실한 감각 때문에 아프다. 또는 아프기 때문에 감각기관을 잃었다.
말을 잃은 여자가 잃은 것은 발성의 기능이 아니라 소통의 의지였다. 그녀가 세상에서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마지막 끈인 아이는 이혼하고 양육권을 가져가버린 남편에 의해 미국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여자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단 한 마디도 항의하지 못하고 다시 침묵으로 가라 앉았다. 침묵 속에는 오랜 증오와 고통이 가득차 있었다.
"아무것도 아물지 않았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여자는 이제 아무도 쓰지 않는 언어인 희랍어로 글을 쓴다. 땅에 누워 있는 여자, 죽어버린 또는 죽음을 기다리는 여자에 대한 시. 희랍어를 가르치는 남자는 여자의 희랍어 시에 자연스레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여자는 자기의 마지막 목소리인 희랍어 문자를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여자는 도망쳤다. 남자는 여자를 따라가 사과했다. 남자는 여자가 침묵 속에 살았던 그의 첫 사랑 같이 소리를 듣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남자의 사과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침묵하는 여자와 시야가 어두워지는 남자는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밀어내지도 않았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희랍어 시간에 강사와 학생으로 만났고 일정한 거리를 두며 서로의 존재를 인식했다. 그들은 조금씩 변했다. 언어화되지 않은 미묘한 변화를 통해 조금씩 닮아갔다.
"이 세계는 덧없고 아름답지요, 라고 그가 말한다.
하지만 이 덧없고 아름다운 세계가 아니라, 영원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원했던 거지요, 플라톤은."
아름다움을 시각으로 식별해내지 못하는 남자는 현실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절대적 이상-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을 설명한다. 그의 첫 사랑 귀머거리 목수 여자가 믿고 있는 선량한 신은 언제나 우리 인간들을 보며 슬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만일 소멸의 이데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깨끗하고 선하고 숭고한 소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른 일곱 살에 죽은 그의 친구 요하임 그룬델은 죽음과 소멸에는 이데아가 없다고 단언했다. 영원한 것이 없는 이 세상에서 그는 다시 생기거나 사라지지 않는 이데아와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욕망했다.
완전한 침묵 속에서도 여자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남자는 진리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침묵 속에서 어둠 속에서 서로를 찾아냈다. 보르헤스의 말 대로 세계는 환이고 삶은 꿈일지도 모른다. 아른한 세상에서 외로운 영혼이 서로를 찾았다. 그것은 죽은 언어를 배우는 일만큼 덧없지만 문법같이 정교하게 진행되었으며 소통에 대한 갈망은 언제나 그렇듯이 절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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