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첨제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분이 말했다. 가위바위보로 국회의원을 선출하자고. 그러자 다른 분이 농담을 던졌다. 가위바위보 가르치는 학원이 생기겠네요.
정당정치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인기 있는 유명인을 영입하는 조직의 기획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서 비롯할 것이다. 그런 것을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거시정치에 대한 기대와 환멸은 모두 우리 내면에 각인된 국가주의가 만들어낸 것 같다. 구조적인 문제에 천착하기 전에 관계망을 갖추는 편이 낫겠다. 우애와 연대로 나아갈 길을 찾아내야지. 그래봐야 한 걸음이지만 모두가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아마도 진보일테지.
이진경 선생님의 노마디즘을 꽤 여러 번 들춰 보았는데 이제야 좀 이해가 되는 듯. 현명한 해설자의 독백을 읽는 것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편이 낫구나. 초원의 여기저기에서 이 도시에서 벗어나라고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목소리들은 성벽의 붕괴를 예언하거나 도시민을 위협하거나 가두어진 삶을 저주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 내면의 뜨거움을 널리 알리고 있을 뿐이었다. 음악과 예술은 언제나 이런 목소리를 통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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