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채식주의자, 창비, 2007.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세 편의 이야기가 각기 다른 화자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영혜의 남편은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된 아내의 변화를 관찰하고, 영혜의 형부는 그의 아내로부터 영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영혜를 갈망하며, 영혜의 언니 인혜는 완전히 미쳐버린 여동생의 마지막을 지킨다.
영혜가 왜 고기를 먹지 않는지, 어째서 악몽을 꾸는지, 그녀의 몽고반점은 왜 사라지지 않았는지, 온몸에 꽃을 그린 사람을 만지며 젖어버린 이유는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가 나무가 되려 하는 이유는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언니. ......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영혜는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서서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물구나무선 채 햇빛을 쬐며 사타구나 사이에서 꽃을 피운다. 그렇게 그녀는 동물에서 벗어나려 한다. 나무가 된다.
채식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는 사실을 꽤 오래 잊고 있었다. 만약 내 아버지가 나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게 하려고 나를 때렸다면 나 역시 삶에 대한 희망을 버렸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나에게 그런 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자해하는 대신 상대를 공격할 것이다. 하지만 영혜는, 그 순하고 부드러운 여자는, 소통을 체념하고 이해받기를 포기하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버렸다.
"기껏 해칠 수 있는 건 네 몸이지.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그거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
인간의 삶이란 이토록 슬프고 외로운 것이었다. 동물을 죽여 그 시체를 먹고, 다른 사람을 억지로 먹이고 보살피는 것, 또는 꿈을 꾸느라 잠들지 못하고, 나무가 되기 위해, 인간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반복하는 것.
여자는 비인간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녀가 자살했다거나 자기 삶을 돌보지 않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가치 없는 소모가 인생의 전부라면 그것을 종결할 권한마저 빼앗아가는 일은 가장 무자비한 폭력이다. 영혜는 브래지어로 옭죄지 않은 자기의 젖가슴을 좋아했다. 젖가슴으로는 아무 것도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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