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9일 목요일

욕망의 주권.

욕망의 주권. 잠이 오지 않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런 말을 만들었다. 요즘 너무 우울하고 자존감이 낮아져서 참 외로웠다. 날씨 탓인가 나이 탓인가 모르겠다. 아마 내 탓이겠지. 타자의 욕망에 종속되지 않고 외부의 욕망을 반영하지 않고 자아의 내면에 있는 욕망을 안정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오늘 점심 때 친구와 소주를 마시다 말고 주르르 울었다. 술에 조금 취했고 밤잠을 못자서 신경이 예민하긴 했지만 여튼 울컥해버린 이유는 일종의 배신감 때문이기도 했다. 친구가 내 욕망의 문제를 진단하고 평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우리 관계에서 꽤 자주 이런 일이 반복되었던 기억이 났다. 이번 기회에 터뜨려버리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그러면 꼰대년이라고 놀려줄 테다.

다른 사람이 나의 욕망...에 개입하거나 통제하려는 시도를 할 때 방치해 두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타자가 나의 내면을 지배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라도 있었던가, 그건 아니고. 두려웠다.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버릴 것 같아서, 나를 바라봐주지 않을 것 같아서, 버려질까봐, 그러니까 부디 당신의 욕망대로 이용해 주세요.

얼마 전의 꿈이 떠올랐다. 손상된 도자기 아가씨. 얼굴이 구겨진 아가씨. 내가 그렇게 스스로를 방치하고 있었네 깨달았다. 못된 놈이 도자기 아가씨의 얼굴을 파손하지 못하도록 어떤 대비책을 세워 두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내가 느끼는 고통과 슬픔을 억누르고 아무 말 없이 새로운 도자기 아가씨로 교환을 해 줄 게 아니라 화를 내고 싸웠어야 했다. 내 꿈 속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나는 그 못된 놈을 죽일 수도 있었다. (꿈에서라도 강해졌으면 좋겠다.)

욕망의 주권을 되찾아야겠다 하는 건설적인 생각을 하다 보니 불면으로 인한 뇌내망상이라기엔 아무래도 너무나 타당한 말인 거라. 어딘가 출처가 있을 것 같아 불 켜고 일어나서 책을 뒤져보았더니 금방 찾았다. 라캉이 욕망이론에서 이미 다 정리해놓은 이야기. 설마 내가 완전 적확한 개념어를 찾아낸 걸까 싶어 잠시 두근두근했네. ㅋㅋ

좀 더 생각해보니 미묘한 차이가 감지되긴 한다. 욕망의 주체라고 하면 실체적 인간이 연상되는데 욕망의 주권이라 말하면 정치적인 느낌이라 나의 욕망이 타자와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하는 것 같다. 지금 내 마음이 좀 그렇다. 소모하지 말고 강해져야지. 분노가 끓어올라 화르르 불사르는 경험이야 많았지만 이렇게 무겁고 진득한 점도로 분노가 차곡차곡 차올라가는 느낌은 처음이다. 차가운 분노는 처음이에요. 감정의 온도가 낮아지니 견뎌내기 수월한 것 같다. 이런 변화는 날이 추워서 그런가 나이 먹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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