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좋아했던 선생님이 최근 했던 이야기 몇 마디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합리적인 보수주의 또는 인생의 관성으로 인한 한계라고 납득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깨달음. 우성학적인 힘의 논리를 지지하고 있구나. 예전에 했던 이야기에서도 그런 암시가 숨어있는 대목이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는 약자에게 너그러운 편이 아니었다. 한때 나는 그런 태도가 공정함이라고 믿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그가 했던 몇 마디 말은 심지어 나를 때리는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몇 번이고 재구성했다.
관계의 종결이 아쉬운 것은 아니다. 만나서 불편한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니까.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것보다는 더 이상 존경을 표현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새벽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허약해졌기 때문에 힘의 논리를 지지하는 것은 아닐까? 노년기에 접어든 그의 신체는 약해지고 있고 그의 건강이 이전보다 좋아질 가능성은 없다. 퇴직한 후로 사회적인 최소한의 권력도 잃었다. 이제 그를 찾아가는 제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본래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었다. 그는 고립되었다. 틀림 없이 그는 자신이 가졌던 건강과 권력, 몸과 마음이 모두 강했던 시기의 일을 계속해서 회상하고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상실을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늙고 늙은 남자의 속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까, 하지만 이런 가설을 세워보고 나니 혐오 대신 연민이 찾아와서 내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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