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할 때는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 동영상을 찾아 반복해서 본다. 지면의 저항이 없는 빙판 위에서 그녀는 자유롭다. 표면으로 미끄러져 내달리다 어느새 활주하며 빙글 날아올라 반짝거리는 그녀의 몸짓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전율이 일어난다. 그 거침 없는 움직임을 통해 전달되는 감정선은 어찌나 섬세한지 경이로울 정도이다.
그런데 가끔 중계방송을 보다 화가 날 때가 있다. 낭랑한 해설자의 목소리 때문이다. 그들이 트리플러츠니 더블악셀이니 기술의 이름을 들고 끼어들면, 한껏 고조된 감정선이 푹 꺾이는 느낌이 든다. 김연아가 보이지 않는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순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찬란한 활주와 이륙을 목격하는 순간, 그것이 점프의 한 종류라는 사실이라는 알려주는 목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해설자가 의상이나 음악에 얽힌 뒷이야기를 이러쿵저러쿵 덧붙이는 것은 대개는 사족이라 떼어내는 편이 낫다. 게다가 연기에 대해서 주절주절 늘어놓는 말은 애초에 전제가 잘못되어 있다. 일테면 김연아가 점프를 하려다 바닥에 쓰러진 상황은, 기술의 실패를 운운하며 점수를 걱정할 일이 아니라, 우리 인생이 언제나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정교한 알레고리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관객이 보내는 응원의 함성도 무척 거슬린다. 빙상장에서도 악장 사이의 박수를 금기시 하는 서양음악의 관람전통을 따랐으면 좋겠다. 관객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빙판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는 분별력을 가지기를 바란다. 다행스럽게도 관객의 비명이나 환호성 같은 것이 김연아의 표현력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감동을 참을 수 없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는 일은 삼가 자제해야 하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 자세라 하겠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나의 불만은 모두 피겨스케이팅이 공연예술이 아니라 스포츠의 카테고리에 속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김연아 덕분에 좋아하는 겨울 스포츠가 생겼으니 나로서는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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