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3일 월요일

386세대에 대한 기억.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취업에 도움 안 되는 동아리 활동이란 것이 여전히 있었고 동아리 고학번 선배들이 종종 후배들에게 술을 사주러 학교에 왔었다.그중에는 술기운을 빌려 만만한 여자 후배를 성추행하거나 남자 후배 앞에서 쥐뿔만한 권위를 내세우며 군기를 잡았던 개차반 같은 놈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주 정상적인 어른들이었다.

경쟁적인 사회생활에 지쳐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후배들로부터 위로받기를 원했던 외로운 중년의 부장님, 법인카드를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공금을 가장 아름답게 유용할 방법을 찾아낸 과장님, 또는 조금 인상된 월급을 혼자 쓰기 미안해서인지 술자리를 통한 부의 재분배를 도모했던 대리님들. 직업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선배들은 너무 바빠서 연락하기 어려웠고 우리에게 술을 사주러 온 선배들은 꽤나 나이가 많았다. 다만 같은 동아리에 적을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선배들로부터 술을 많이도 얻어 마셨다.

선배들은 후배를 만나면 당신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특히 80년대 학번 선배들의 이야기가 스펙타클했다. 군부독재에 대한 분노와 도심에서 벌어진 전쟁 같은 시위에 대한 생생한 묘사, 스러져간 동지들에 대한 연민과 사회와 타협한 자신의 비굴함에 대한 고백, 대부분 이런 이야기였다. 각기 다른 선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의 구조와 전개, 상황묘사에 일치하는 점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군대에서의 경험담과 같이 집단의 체험이 누적된 뒤 개별 화자를 통해 극적인 요소가 부각되어 전해지는 일종의 민담 같았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 같이 들렸다.

옛 이야기가 전해주는 삶의 교훈은 언제나 우회적이다. 술을 따라주며 민주화투쟁의 경험을 전했던 선배들 중에 나에게 이러한 선택을 해야 한다거나 저러한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이는 없었으나 틀림 없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공짜 술이라니 세상에 그런 거 없다. 술자리를 통해서 아주 중요하고 분명한 가치들이 전해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술에 취해서 그것이 어떤 주의인지 굳이 따지지 않았다.

오늘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폭포 같이 우수수 떠올랐다. 화염병을 만들 때 적절한 연료의 용량이라든가 보도블럭을 손에 쥐기 좋은 크기로 깨는 방법 같이 실용적인 정보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을 지라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던 선배들의 표정은 분명히 기억났다. 재미 있는 옛 이야기를 들여주는 투로 말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 공포가 있었고 불안감과 죄의식도 있었다. 무용담 같이 과장된 이야기는 고통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 같다. 그런 투쟁 속에서 무척 아팠구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구나.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했던 거로구나. 이제 좀 알 것 같다.


+


교학사 교과서 철회과정이나 교육감 선거 같은 걸 보면 지금 40~50대 정도 된 학부모들 자식만은 올바르게 키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세대의 정치성향을 통계로 보면 영혼 없는 기회주의자가 훨씬 더 많지만, 그럼에도 자식에게는 왜곡되지 않은 이념에 근거한 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보인다. 부모가 되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바담풍 바람풍 하는 소리가 안타깝기도 한데, 한편으론 부모의 자기배반적 선택 덕분에 세상이 변해왔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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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0성 내 아이가 커서 나와 다른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는 거부감도 한몫 할 듯. 우리 부모들은 다 체험하고 있지만^^

김0철 왜 그런마음 있잖아요. 나는 똥물에서 살아도 자식은 맑을물에서 살게 하고싶은, 내 아들이 다니는 학교가 교학사 교과서 채택했다면, 발끈할 수 밖에 없을 듯. 그런 오염물을 아이가 접촉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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