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9일 수요일

죽은 아이에 대한 기억.

팬더는 흰색에 검은 무늬야 아니면 검은 색에 흰 무늬야? 언젠가 내가 팬더 사진을 보여주자 그애가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단호하게 답했다. 흰 바탕에 검은 무늬야. 왜? 갓 태어난 아기 팬더는 흰 쥐 같은데 자라면서 검은 얼룩이 생기거든.

그애는 대답 없이 술을 마셨다. 아무 말 않다가 갑자기 화를 내며 말했다. 그애가 쓴 책을 사장이 도둑질 해갔다고 했다. 그 책의 기획에 사장이 기여한 바가 있긴 하지만 자료를 수집하고 원고를 작성하는 일은 그애가 도맡아 했다고 했다. 온라인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 사장은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적이 있었다. 사장은 출판사 측에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이름을 원한다며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내겠다고 했다. 선인세의 일부가 그애의 통장에 입금되었다. 그것은 출판사에서 들어온 돈이 아니라 급여인 것 같이 사장의 통장에서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면 공동저자로 표기라도 해달라고 부탁해 보지. 그러자 그애는 성을 냈다. 어차피 그만뒀어. 어쨌든 자기가 쓴 책이니까 읽어볼게. 라고 했더니 그애는 이렇게 말했다. 사서 보지 말고 빌려서 봐. 내가 사장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을 구입한다면 그애는 나에게도 분노할 것 같았다. 씨근대면서도 그애는 책 제목을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도록 할게. 라고 대답하고 나서 나는 아직도 그 책을 읽지 않았다.

어젯밤 그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장 전화를 걸었다. 낯선 남자가 받았다. 그애의 친구라고 했다. 그애가 죽었다고 했다. 언제, 어디서, 왜, 캐묻다가 말았다. 아주 고약한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애를 아는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선배는 바로 이틀 전에도 그애와 통화를 했었다며 내가 전한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선배가 일단 전화를 끊자고 했다. 한참 뒤 전화가 왔다. 여기저기 연락을 해 본 모양이었다. 선배는 한 풀 꺾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나는 그에게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고 있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살펴보니 그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고생했던 것 같다. 약물을 남용했던 것 같다. 습관적으로 약을 집어 먹다가 과용했던 것 같다. 그애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확실히 모르겠다.

얼룩말은 흰 색에 거문 무늬다.

그애가 세상을 떠나기 몇 시간 전에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이 멘션을 곱씹다가 언젠가 팬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마지막으로 얼룩말은 흰 색에 검은 무늬인지 아니면 검은 색에 흰 무늬인지 고민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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