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6일 목요일

문학과 현실.

커트 보네거트라는 미국 작가가 있다. 2차세계대전 때 참전했는데 독일군한테 포로로 잡혀서 드레스덴의 수용소에 갖혀 있었다고 한다. 드레스덴 폭격, 하늘에서 소이탄이 대량으로 쏟아졌고 오랜 역사를 가진 이 도시는 통째로 불타버렸다. 사망자 수는 공식적으로 3만명 이상, 하지만 이 도시로 피난을 온 피난민의 수는 집계가 어려워서 여기저기 말이 다르다. 승리한 전쟁의 대학살에 대한 기록은 너무나 많으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미군과 영국군이 폭격을 가했던 살육의 밤에 미군포로로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보네거트는 <제 5 도살장>을 썼다.

이 작품을 보면 미래나 희망이라는 말은 환상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네거트 스타일의 블랙유머가 마음에 든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이런 유머에 정말로 취약하다. 읽을 때도 섬뜩한 기분이고 나중에 다시 생각해볼 때에는 내장이 썰리는 것 같은 격통이 밀려온다. "그렇게 가는 거지" 이런 문장은 가슴으로 쑥 들어와 무릎을 꿇고 울게 만든다. 그동안 인류를 덮친 수많은 자연재해와 인간이 만들어낸 전쟁과 학살의 광기를 피해 이제까지 내가 살아남은 이유는 무언가를 잘 해냈거나 특별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다만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과연 행운일까?) 그러나 어떤 이유로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다면 나도 이 문장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가는 거지.

그렇게 가버리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저 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학으로 도피하지는 말자.

트위터에서 황규관‏@gyugwan 선생님이 쓰신 글을 보았다.

"문학의 뒤에 숨지 말자. 문학은 현실에 대한 방패가 아니라 현실이 구성하는 세계가 아니었던가."

이 말씀에 대해 이런 설명을 더하셨다.

"작가가 현실과 대면할 때는 맨몸으로 하라는 의미였습니다. 문학적 해석과 표현은 그 직접적 대면 이후에 가능한 무엇이니까요."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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