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밍의 흔한 냇물.jpg |
쓰촨성 청두 팬더기지 관광을 마치고 기차역으로 돌아왔다. 짐 보관소에서 배낭을 찾아들고 역 안으로 들어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해서 노숙자와 여행자가 모두 큰 짐을 들고 역사 지붕 아래 모여 있어 실내는 복잡했다. 앉을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루안워 대기실이 따로 있었다. 푹신한 소파가 주르르 늘어선 대기실, 공용 대합실의 벤치에 비하면 훨씬 조용하고 안락했다.
중국 철도의 침대칸은 루안워(軟臥)와 잉워(硬臥), 좌석칸은 루안쭤(軟座)와 잉쭤(硬座)가 있다. 루안워는 소프트베드의 2층 침대로 4인이 1실을 쓰며 방 처럼 문을 닫아 공간을 분리할 수 있다. 잉워는 하드베드로 침대가 3층 까지 있으며 복도식으로 개방되어 있는 구조다. 소프트베드라 해도 침대가 구름처럼 푹신해 기차의 진동이 피해가는 건 아니다. 다만 같은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수가 적다 보니 여유롭고 화장실이나 세면실 등도 깨끗하게 관리된다. 요금은 루안워가 잉워보다 1.5배 정도 비싸다.
나는 아가씨니까 루안워를 탑니다, 라고 말하면 뻥이거나 재미 없는 농담. 이제까진 잉워를 타고 다녔는데, 청두-쿤밍 구간은 잉워 표가 없어서 침대칸 말고 좌석을 살까 하다가 20시간 정도를 앉아 갈 자신이 없어서 좀 더 비싼 표를 구입한 것이었다. 조금 비싼 표를 구입하니 여러모로 편리했다. 조용한 전용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반대편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기차 플랫폼으로 연결되더라. 일반 대기실에서는 계단을 올라갔다 다시 내려가도록 동선이 짜여져 있다.
객차 내부, 2층 침대에서 아래를 내려본 모습 |
심심해서 철로 거리 계산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맞은편에 어린 딸을 데리고 여행하는 부부가 앉아 있었다. 팬더모자를 구입한 걸 보면 틀림없이 다른 지역에서 청두로 여행을 온 가족일 것이다. 너댓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는 귀여웠다. 아이라서 기본적으로 내장하고 있는 귀여움도 있지만 말투나 행동에서도 애교가 넘쳤다.
부모의 나이는 삼십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그 또래의 한족이라면 아마 형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동딸과 외아들이 결혼해 낳은 외동아이는 '소황제'라 불린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겠냐만, 부모와 조부모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나 귀한 아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는 특별한 아이들이 있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남아선호사상이 저변에 깔려있는 보수적인 집안의 첫째딸로 태어나 부모의 애정이나 관심을 남동생과 나눠가지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적이 많았지만, 소황제로 자라나는 것보단 동생과 함께 지낼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문득 삼 년 전에 동생과 함께 했던 기차여행이 기억났다. 그때도 꽤나 장거리 여행이었지만 동생과 함께 이야기도 많이 했고 심심할 때는 카드게임 같은 걸 하면서 즐거웠는데...
어느 소황제의 뒷모습 |
대기실에 비치된 잡지가 있길래 몇 장 넘겨 봤다. 글은 다 못읽으니 내용은 그냥 넘어가지만 사진이랑 편집디자인 어쩔;; 그중 제일 황당한 부분은 기차에서 찍은 웨딩사진 컨셉의 화보였다. 미인이라는 헤드라인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이미지가 삽입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나의 미적 취향이 문제인 것 같진 않다. 어쩜 아가씨 사진을 이렇게 찍어놓는 만행을 저지를 수가 있느냐고 화를 내고 싶을 정도였다. 적어도 카메라 동호회 청년들이 자기 여자친구 사진을 찍어주는 정도의 퀄리티는 나와야 할 거 아닌가. 투덜투덜 잡지를 넘기다가 중국에서 편집디자인 회사를 차린다면 대박치겠구나 하는 망상에 빠져 들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망상은 어째서인지 앞머리를 짧게 자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기왕 앞머리를 자르기로 결심했다면 직접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주머니칼을 들고 기차 화장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른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어디서 쇠사슬 소리가 울렸다. 철컹철컹.
묶인 사람과 슬픈 사람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를 실제로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철그덕 철그덕 울리는 쇳소리가 영화의 효과음 같이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손목에 수갑을 차고 발목에는 족갑을 찬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팔을 잡힌 채 느릿느릿 끌려 들어왔다. 그들과 일행인듯한 남자 둘이 큰 가방을 들고 따라왔다. 쇠사슬에 묶인 남자가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들고 온 남자들은 포승된 남자 왼쪽에 버티고 섰다. 오른쪽에는 대장인 것 같이 보이는 남자가 서서 종이뭉치를 보여주며 무엇인가 채근하듯 물었다. 묶인 남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쇠사슬에 묶인 남자도, 그를 호송하는 세 명의 남자도 무척 지친 표정이었다.
범인을 체포해서 다른 고장으로 이송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범죄자라고 해도 얼굴은 물론이고 수갑도 가려주지 않은 채로 저렇게 쇠사슬 소리를 내면서 모두가 볼 수 있게 기차로 압송하다니...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조금 더 높은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이런 상황이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정의와 누군가의 좌절이 교차하는 장면, 여기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건 고작해야 범죄자 또는 피의자의 명예인데, 그의 명예를 정말 존중했다면 그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호기심에 흘끔흘끔 보았던 그의 얼굴은 완전히 체념한 듯 보였다. 나는 왜 승리한 공권력, 정의로운 법의 집행자들에게 감정을 이입하지 못하고 피의자에게 동정심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오래된 주제, 카프카의 소설에서도 이런 주제가 나왔던 기억이 났다. 유형지에서, 등에 문신을 새기며 죽음을 맞게 하는 가혹한 형벌을 집행하는 유형지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처벌을 받게 된 범죄자에게 마지막 만찬으로 과자를 먹인 지방 통치자의 딸들이 있고 어떤 여행자가 그 지역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야기의 결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죄인이 죽었던가 집행자가 죽었던가, 유혈이 낭자한 참혹한 묘사만 어렴풋이 기억났다.
범인과 세 남자는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열차를 타러 갔다. 철그럭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심란한 마음으로 기차를 타러 가는 길, 어떤 아가씨가 엉엉 울면서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네는 몸을 가누지도 못해 다른 아가씨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딛고 숨이 넘어갈 듯 몰아쉬고 다시 한 걸음 딛고 격하게 울음을 토해냈다. 저이는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리 슬피 우나... 안타까왔다. 나는 자유롭고 기쁘고 편안한데, 묶인 사람과 슬픈 사람에게 미안할 정도로 행복해서, 마치 다른 사람 몫의 즐거움을 갈취하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10월 23일, 어떤 거짓말
나는 중국에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 거짓말을 했었다. 여행 중에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신변에 관해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남자의 성적 호기심이 불편할 때는 결혼을 했다는 식의 거짓말을 하기도 했고, 여행의 목적지에 가서 남편을 만날 거라고 했던 적도 있다. 이번에는 쿤밍에 남동생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거짓말은, 내가 혼자가 아니며 나의 도착을 기다리고 나를 돌보아 줄 형제가 있는 듯 가장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쿤밍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지인이 그곳을 여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쿤밍에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아 그렇게 시작을 했다.
나는 쿤밍으로 가고 있어요. 내 남동생이 쿤밍에 있거든요. 그애는 학생이에요. 무슨 공부를 하냐면 중국어를 배워요. 학교는 어디냐면 쿤밍대학이에요. 쿤밍대학에는 외국인 학생이 많이 와서 공부하고 있다고 해요. 동생은 쿤밍의 날씨가 아주 좋다고 했어요...
이런 거짓말을 하도 많이 반복했더니 쿤밍에 도착하면 정말로 동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4명이 한 칸에 앉게 되어 있는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어느 노부부와 학교 선생님이라는 언니였다. 이 언니는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또랑또랑 톤이 높고 발음이 분명한데다 학생들을 상대하듯이 내가 모르는 부분은 다른 말로 바꿔 설명해주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하기가 쉬웠다. 언니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쿤밍에 가는 이유, 그곳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동생에 대해서.
하지만 전국각지를 오가며 쌀을 사고 파는 일을 한다는 할아버지와는 대화가 무척 어려웠다. 할아버지는 기본적으로 말이 빠른데 발음은 뭉글뭉글, 게다가 성격이 무척 급한 편이라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선생님 언니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주었다. 할아버지는 자기도 보통화를 하는데 왜 못알아 듣느냐고 역정을 냈다. 아침에 빵과 과일을 주셔서 고마왔으나 역정낼 때는 무섭고 싫었다.
할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여 버럭 할 때마다 할머니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꼭 다문 입술을 더 얇게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주목걸이와 옥팔찌에 금반지를 주렁주렁 걸친 부유한 할머니, 거의 아무 말도 없이 다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러던 할머니가 나에게 딱 한 마디 했던 게 기억난다. 아들이 멀리 있어 엄마가 걱정이 많겠다는 이야기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느리게 말했다. 순간 할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그건 거짓말이에요,라고 실토하고 싶어졌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사람들
오전에 인도네시아 사람들 몇이 기차에 탔다. (나는 이들에게도 쿤밍에 남동생을 만나러 간다고 말했다.) 이들 일행의 자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고 해서 자리를 바꿔주었다. 새로 옮겨간 방에는 상하이에서 일하는 서른 두살 먹은 딸을 만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에게 왜 결혼을 안 하냐고 한참 잔소리를 했다. 어쩐지 우리 엄마도 내 또래 비혼여자를 만나면 이런 얘기를 할 것 같다. 살짝 자리를 피해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있는 방 근처로 갔다. 중국어보단 영어가 좀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싶지 않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넷, 멜리사, 린다, 유리,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다른 아저씨(이름을 모름), 이들은 회사 동료로 중국에서 철로 관련 기기를 수입하는 일을 하는데 출장을 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 방에서도 결혼 화제는 계속되었다. 유리라는 이름의 콧수염 아저씨가 자기랑 같이 자카르타에 가자는 농담을 반복했고 그때마다 린다는 유리가 결혼한 남자라고 알려줬으며 멜리사는 유리가 언제나 여자들에게 그러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유리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다른 아저씨를 가리키며 이 사람을 따라가라고 했고, 아저씨는 약지에 끼고 있는 커다란 노란 보석이 박힌 금반지를 감추는 시늉을 했다.
연애와 결혼은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언제나 나오는 주제인 것 같다. (결혼한 뒤에는 가족이고.) 나로서는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라 퍽 곤란했다. 아름다운 윈난성의 풍경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누구도 곤란해지지 않을 텐데. 정말로, 쓰촨에서 윈난으로 넘어오는 차창 밖으로, 높고 푸른 하늘과 따갑도록 맑은 햇살 아래 펼쳐진 계단식 논, 녹음이 무성한 완만한 산, 수량이 풍부한 넓은 강, 검붉은 흙, 기와를 얹은 전통식 가옥을 멀리서 보는 풍경은 근사했다. 기후가 따듯하기 때문인지 가을인데도 모내기를 하고 있는 무논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주제는 먹을 것. 유리에게 물어 보았다.
"인도네시아에서도 벼농사를 짓니?"
"그래. 인도네시아에서도 벼농사를 짓고 주식으로 쌀을 먹어."
"나시고랭이 인도네시아 볶음밥 맞지?"
"맞아! 너도 나시고랭을 먹어 봤니?"
"그럼. 한국에도 인도네시아 식당이 있어. 특이한 향신료가 맛있더라."
"그렇다면 오늘 점심으로 나시고랭을 먹자!"
과연 중국의 기차 안에서 인도네시아 볶음밥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믿어지지 않았지만 유리가 호언장담을 하길래 나시고랭 즉석밥이나 나시고랭 향신료 양념 같은 걸 싸온 줄 알았다.
점심초대를 받고 식당칸에 가서 보니 상황이 이랬다. 이들 인도네시아인 바이어와 거래하는 중국회사의 직원은 미스터 빙, 빙씨는 현지 공장 견학과 이후의 여행에서 영-중 통역과 인솔을 맡고 있었다. 빙씨와 유리가 이전에 인도네시아에서 나시고랭을 먹듯이 중국에선 차오판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다. 둘 다 밥을 기름에 볶은 요리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유리는 중국사람도 나시고랭을 먹는다고 이해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달리는 기차 식당칸에서 '스페셜 게스트 미스 리'(저예요;;)를 위해 나시고랭을 주문해달라고 우기는데 빙선생 입장에선 답답한 노릇이다. 멜리사가 인도네시아말로 상황을 정리해주기 전까지 유리는 계속 나시고랭을 찾았다.
나시고랭은 없었지만 중국에 도착한 뒤로 가장 유쾌하게 점심을 먹었다. 혼자 다니면 아무래도 단품으로 대충 먹고 허기만 면하면 넘어가고 마는데, 요리를 여러 개 시켜놓아 거한 상을 받았다. 기차에서 파는 음식이 대단할 건 없지만 다른 사람들과 유쾌하게 웃고 떠들며 먹으니 무척 즐거웠다.
멜리사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 문화와 지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서울의 지명을 꽤 많이 알고 있었는데 외국인이 '남대문'과 '이태원' 같은 단어를 정확하게 발음하다니 신기했다. 이야기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으로 시작해(십 년 된 드라마 덕을 아직도 본다;) 발리에서 생간 일로 흘러갔다. 그들이 살고 있는 자카르타는 발리와 꽤 멀리 떨어진 섬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사람이지만 발리라는 지역은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는데 외국 드라마를 통해 보니 더 이국적으로 느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쿤밍 도착
어느새 기차가 쿤밍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잠시 남동생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멍하니 서 있다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해가 눈부셔 잠시 고개를 들어 본 쿤밍의 하늘은 놀라웠다. 걸리는 것 없이 높고 푸른 가을 하늘에 당장이라도 빨래를 하고 싶어지는 찬란한 햇살이 가득했다. 도심 한복판인데도 공기가 청명하게 느껴졌다.
2층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야 하니까 윗층으로 올라가 맨 앞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근데 얼마 안 갔는데도 해가 들이 쬐어 땀이 줄줄; 사람들이 중간 이후부터 앉아있던 이유가 있었구나. 이 도시도 지하철 공사 중이라 한낮인데도 시내를 빠져나오는 데까지 교통체증이 좀 있었다.
쿤밍에서는 미리 숙소를 정해두고 있었다. 낯선 도시에 막 도착했을 때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꽤나 안정감을 주는 일이었다. 지인이 머물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가기로 했다. 쿤밍 기차역에서 시 북부에 있는 투투게스트하우스 까지는 버스로 약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쿤밍 숙소 정보
곤명 투투게스트하우스
운남성 곤명시 오화구 강동소강성 AD좌 3단원 1402
云南省昆明市五华区江东小康城 AD座 3单元 1402
중국내전화: 139-0887-6987
인터넷전화: 070-4233-3386 / 070-8251-6987
http://cafe.daum.net/tootooguest
(검색하면 다 나옴)
투투게스트하우스은 한국인 주인장이 있는 곳, 먼저 윈난을 여행 중이었던 지인이 장기투숙을 하면서 소개해준 숙소였다. 복층형 아파트를 개조해서 만든 숙소라 그야말로 가정적인 분위기인데, 중국 기준이 아니라 한국 기준으로 깨끗해서 문 열고 들어가자 마자 깜짝 놀랐다. 내가 워낙 열악한 시설을 거쳐오기도 했지만; 참 깨끗하고 편안했다. 기본적인 설비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차가 좋았다. 주인장이 차에 미쳐 중국을 돌아다니는 분이라서 운남 산골에 차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고 했다. 아침저녁으로 훌륭한 푸얼차(보이차)를 홀짝홀짝 얻어먹을 수 있는 분위기.
나는 도미토리에서 지내기로 했다. 2층침대인데 싱글침대가 짐이랑 책이랑 다 펼쳐놓아도 충분히 잘 수 있을 정도로 넓어서 좋았다. 이렇게 물건을 헤쳐놓고 나면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까닭은 집에서 방안을 어지럽히고 살기 때문이겠지. 게다가 오랜만에 한국말을 마구 할 수 있게 되니까 행복했다.
투투게스트하우스의 사장님은 의외로 재미 있는 사람이엇다. 중국에서 공부를 오래하고 여행도 많이 다닌 분이라 그런지, 말수가 많지 않지만 가끔 한 마디 씩 툭툭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뒤로 넘어갈 때가 많았다. 정보로서의 가치는 말할 필요도 없고 농담도 재미나고 무엇보다 음모론이 흥미진진했다.
(쿤밍에 오기 직전에 사천성 청두에 들러 팬더기지 갔던 이야기를 했더니...)
"팬더를 보려면 쓰촨 와룡팬더기지로 가세요."
"거기는 어딘데요?"
"성도 북쪽에 있는데 규모도 크고 팬더도 많아요."
(좋은 정보, 메모를 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툭 던진다.
"근데 아무래도 팬더는 중국에서 제작하는 것 같아."
"네?"
"어떻게 짐승이 그렇게 하얗고 까맣고 그럴까?"
"흰곰에 스프레이 칠한 거예요? ㅋㅋㅋ"
"안 그럼 그렇게 생길 수가 없지. 뭔놈의 보호색이 그렇게 생겼나? 팬더가 갓 태어났을 때는 흰 쥐 같이 생겼는데, 그게 자라면서 눈부터 검어진단 말이에요."
"생후 일주일 지나면 초벌칠 살살 시작하는 건가요?"
"그렇지. 비오면 지워질 수도 있으니까 동물원에서 보여주지도 않고. 비오는 날에 팬더 보신 적 있어요?"
엄청 진지하게 막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낸다.
10월 24일 애정에 관하여
당신에게 바라는 건 오직 삶 뿐이야. 살아 있어 줘. 내 곁에 있지 않아도 괜찮아. 새벽에 한국에 있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잠에서 깼다. 이어폰을 끼고 그때 그 노래를 다시 들으며 그를 생각했다. 그의 제안은 수락하기 어려웠고 그의 진심은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나 내 안의 애정만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멀리 있기에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기뻤다. 애정은 가까이 있을 떄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다. 그립고 그립지만, 눈 앞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곧바로 만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립기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애정에서는 애틋한 그리움이 칠할이니까.
게스트하우스에서 같은 방을 쓰는 강ㅇㅇ 언니와 저녁을 먹으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떠나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맥주를 마셨고 호기로워졌으며 조금은 우울해졌다. 높고 맑은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리는 밤길을 걸으며 언니가 말했다.
"모든 사랑은 배반을 꿈꿔요. 어리석음이 인간의 순리이기 때문이지. 어리석음에 묻혀 있었던 순간이 행복한 거야. 그렇게 믿어야 해. 그렇게 믿어야 좋아. 그 어리석음은 나의 순수의 결정체니까. 순수는 열망이고 뜨거움이지. 그런 뜨거움을 누가 또 가질 수 있을까? 축복이지."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 곳에서 만난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베란다를 열고 창 밖을 보면서 언니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사람이 높은 곳에 오르면 아래만 봐. 더 높은 곳을 보면 별이 보이는데. 저 별들의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사람이 이름을 붙이기 전부터 저기서 있었던 하나 하나의 행성들인데. 그걸 묶어서 별자리를 만들다니 이상한 일이지?"
강ㅇㅇ언니가 자기가 했던 이야기를 스스로 기록한다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텐데. 언니의 침대 머리맡에는 라오서의 루어투어시앙즈(낙타상자)가 있었다.
이제, 미인을 보여주세요. |
중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망상은 어째서인지 앞머리를 짧게 자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기왕 앞머리를 자르기로 결심했다면 직접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주머니칼을 들고 기차 화장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른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어디서 쇠사슬 소리가 울렸다. 철컹철컹.
묶인 사람과 슬픈 사람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를 실제로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철그덕 철그덕 울리는 쇳소리가 영화의 효과음 같이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손목에 수갑을 차고 발목에는 족갑을 찬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팔을 잡힌 채 느릿느릿 끌려 들어왔다. 그들과 일행인듯한 남자 둘이 큰 가방을 들고 따라왔다. 쇠사슬에 묶인 남자가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들고 온 남자들은 포승된 남자 왼쪽에 버티고 섰다. 오른쪽에는 대장인 것 같이 보이는 남자가 서서 종이뭉치를 보여주며 무엇인가 채근하듯 물었다. 묶인 남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쇠사슬에 묶인 남자도, 그를 호송하는 세 명의 남자도 무척 지친 표정이었다.
범인을 체포해서 다른 고장으로 이송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범죄자라고 해도 얼굴은 물론이고 수갑도 가려주지 않은 채로 저렇게 쇠사슬 소리를 내면서 모두가 볼 수 있게 기차로 압송하다니...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조금 더 높은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이런 상황이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정의와 누군가의 좌절이 교차하는 장면, 여기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건 고작해야 범죄자 또는 피의자의 명예인데, 그의 명예를 정말 존중했다면 그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호기심에 흘끔흘끔 보았던 그의 얼굴은 완전히 체념한 듯 보였다. 나는 왜 승리한 공권력, 정의로운 법의 집행자들에게 감정을 이입하지 못하고 피의자에게 동정심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오래된 주제, 카프카의 소설에서도 이런 주제가 나왔던 기억이 났다. 유형지에서, 등에 문신을 새기며 죽음을 맞게 하는 가혹한 형벌을 집행하는 유형지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처벌을 받게 된 범죄자에게 마지막 만찬으로 과자를 먹인 지방 통치자의 딸들이 있고 어떤 여행자가 그 지역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야기의 결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죄인이 죽었던가 집행자가 죽었던가, 유혈이 낭자한 참혹한 묘사만 어렴풋이 기억났다.
범인과 세 남자는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열차를 타러 갔다. 철그럭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심란한 마음으로 기차를 타러 가는 길, 어떤 아가씨가 엉엉 울면서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네는 몸을 가누지도 못해 다른 아가씨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딛고 숨이 넘어갈 듯 몰아쉬고 다시 한 걸음 딛고 격하게 울음을 토해냈다. 저이는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리 슬피 우나... 안타까왔다. 나는 자유롭고 기쁘고 편안한데, 묶인 사람과 슬픈 사람에게 미안할 정도로 행복해서, 마치 다른 사람 몫의 즐거움을 갈취하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10월 23일, 어떤 거짓말
나는 중국에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 거짓말을 했었다. 여행 중에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신변에 관해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남자의 성적 호기심이 불편할 때는 결혼을 했다는 식의 거짓말을 하기도 했고, 여행의 목적지에 가서 남편을 만날 거라고 했던 적도 있다. 이번에는 쿤밍에 남동생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거짓말은, 내가 혼자가 아니며 나의 도착을 기다리고 나를 돌보아 줄 형제가 있는 듯 가장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쿤밍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지인이 그곳을 여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쿤밍에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 같아 그렇게 시작을 했다.
나는 쿤밍으로 가고 있어요. 내 남동생이 쿤밍에 있거든요. 그애는 학생이에요. 무슨 공부를 하냐면 중국어를 배워요. 학교는 어디냐면 쿤밍대학이에요. 쿤밍대학에는 외국인 학생이 많이 와서 공부하고 있다고 해요. 동생은 쿤밍의 날씨가 아주 좋다고 했어요...
이런 거짓말을 하도 많이 반복했더니 쿤밍에 도착하면 정말로 동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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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동생이 이런 분은 아니지만... 사진 출처는 미디어 몽구 |
4명이 한 칸에 앉게 되어 있는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어느 노부부와 학교 선생님이라는 언니였다. 이 언니는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또랑또랑 톤이 높고 발음이 분명한데다 학생들을 상대하듯이 내가 모르는 부분은 다른 말로 바꿔 설명해주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하기가 쉬웠다. 언니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쿤밍에 가는 이유, 그곳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동생에 대해서.
하지만 전국각지를 오가며 쌀을 사고 파는 일을 한다는 할아버지와는 대화가 무척 어려웠다. 할아버지는 기본적으로 말이 빠른데 발음은 뭉글뭉글, 게다가 성격이 무척 급한 편이라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선생님 언니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주었다. 할아버지는 자기도 보통화를 하는데 왜 못알아 듣느냐고 역정을 냈다. 아침에 빵과 과일을 주셔서 고마왔으나 역정낼 때는 무섭고 싫었다.
할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여 버럭 할 때마다 할머니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꼭 다문 입술을 더 얇게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주목걸이와 옥팔찌에 금반지를 주렁주렁 걸친 부유한 할머니, 거의 아무 말도 없이 다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러던 할머니가 나에게 딱 한 마디 했던 게 기억난다. 아들이 멀리 있어 엄마가 걱정이 많겠다는 이야기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느리게 말했다. 순간 할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그건 거짓말이에요,라고 실토하고 싶어졌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사람들
오전에 인도네시아 사람들 몇이 기차에 탔다. (나는 이들에게도 쿤밍에 남동생을 만나러 간다고 말했다.) 이들 일행의 자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고 해서 자리를 바꿔주었다. 새로 옮겨간 방에는 상하이에서 일하는 서른 두살 먹은 딸을 만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에게 왜 결혼을 안 하냐고 한참 잔소리를 했다. 어쩐지 우리 엄마도 내 또래 비혼여자를 만나면 이런 얘기를 할 것 같다. 살짝 자리를 피해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있는 방 근처로 갔다. 중국어보단 영어가 좀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싶지 않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넷, 멜리사, 린다, 유리,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다른 아저씨(이름을 모름), 이들은 회사 동료로 중국에서 철로 관련 기기를 수입하는 일을 하는데 출장을 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 방에서도 결혼 화제는 계속되었다. 유리라는 이름의 콧수염 아저씨가 자기랑 같이 자카르타에 가자는 농담을 반복했고 그때마다 린다는 유리가 결혼한 남자라고 알려줬으며 멜리사는 유리가 언제나 여자들에게 그러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유리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다른 아저씨를 가리키며 이 사람을 따라가라고 했고, 아저씨는 약지에 끼고 있는 커다란 노란 보석이 박힌 금반지를 감추는 시늉을 했다.
연애와 결혼은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언제나 나오는 주제인 것 같다. (결혼한 뒤에는 가족이고.) 나로서는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라 퍽 곤란했다. 아름다운 윈난성의 풍경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누구도 곤란해지지 않을 텐데. 정말로, 쓰촨에서 윈난으로 넘어오는 차창 밖으로, 높고 푸른 하늘과 따갑도록 맑은 햇살 아래 펼쳐진 계단식 논, 녹음이 무성한 완만한 산, 수량이 풍부한 넓은 강, 검붉은 흙, 기와를 얹은 전통식 가옥을 멀리서 보는 풍경은 근사했다. 기후가 따듯하기 때문인지 가을인데도 모내기를 하고 있는 무논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주제는 먹을 것. 유리에게 물어 보았다.
"인도네시아에서도 벼농사를 짓니?"
"그래. 인도네시아에서도 벼농사를 짓고 주식으로 쌀을 먹어."
"나시고랭이 인도네시아 볶음밥 맞지?"
"맞아! 너도 나시고랭을 먹어 봤니?"
"그럼. 한국에도 인도네시아 식당이 있어. 특이한 향신료가 맛있더라."
"그렇다면 오늘 점심으로 나시고랭을 먹자!"
나시고랭은 이렇게 생긴 인도네시아 볶음밥 사진 출처는 위키피디아 |
과연 중국의 기차 안에서 인도네시아 볶음밥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믿어지지 않았지만 유리가 호언장담을 하길래 나시고랭 즉석밥이나 나시고랭 향신료 양념 같은 걸 싸온 줄 알았다.
점심초대를 받고 식당칸에 가서 보니 상황이 이랬다. 이들 인도네시아인 바이어와 거래하는 중국회사의 직원은 미스터 빙, 빙씨는 현지 공장 견학과 이후의 여행에서 영-중 통역과 인솔을 맡고 있었다. 빙씨와 유리가 이전에 인도네시아에서 나시고랭을 먹듯이 중국에선 차오판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다. 둘 다 밥을 기름에 볶은 요리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유리는 중국사람도 나시고랭을 먹는다고 이해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달리는 기차 식당칸에서 '스페셜 게스트 미스 리'(저예요;;)를 위해 나시고랭을 주문해달라고 우기는데 빙선생 입장에선 답답한 노릇이다. 멜리사가 인도네시아말로 상황을 정리해주기 전까지 유리는 계속 나시고랭을 찾았다.
나시고랭은 없었지만 중국에 도착한 뒤로 가장 유쾌하게 점심을 먹었다. 혼자 다니면 아무래도 단품으로 대충 먹고 허기만 면하면 넘어가고 마는데, 요리를 여러 개 시켜놓아 거한 상을 받았다. 기차에서 파는 음식이 대단할 건 없지만 다른 사람들과 유쾌하게 웃고 떠들며 먹으니 무척 즐거웠다.
멜리사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 문화와 지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서울의 지명을 꽤 많이 알고 있었는데 외국인이 '남대문'과 '이태원' 같은 단어를 정확하게 발음하다니 신기했다. 이야기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으로 시작해(십 년 된 드라마 덕을 아직도 본다;) 발리에서 생간 일로 흘러갔다. 그들이 살고 있는 자카르타는 발리와 꽤 멀리 떨어진 섬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사람이지만 발리라는 지역은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는데 외국 드라마를 통해 보니 더 이국적으로 느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쿤밍 도착
어느새 기차가 쿤밍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잠시 남동생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멍하니 서 있다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해가 눈부셔 잠시 고개를 들어 본 쿤밍의 하늘은 놀라웠다. 걸리는 것 없이 높고 푸른 가을 하늘에 당장이라도 빨래를 하고 싶어지는 찬란한 햇살이 가득했다. 도심 한복판인데도 공기가 청명하게 느껴졌다.
쿤밍역 앞 광장 도시를 상징하는 물소 동상이 있다. |
대도시이지만 중극이므로 무단횡단은 일상. |
대낮의 교통체증 역시 중국인의 일상 하지만 저 새파란 하늘을 보라지!!! |
2층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야 하니까 윗층으로 올라가 맨 앞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근데 얼마 안 갔는데도 해가 들이 쬐어 땀이 줄줄; 사람들이 중간 이후부터 앉아있던 이유가 있었구나. 이 도시도 지하철 공사 중이라 한낮인데도 시내를 빠져나오는 데까지 교통체증이 좀 있었다.
곤명 투투게스트하우스
운남성 곤명시 오화구 강동소강성 AD좌 3단원 1402
云南省昆明市五华区江东小康城 AD座 3单元 1402
중국내전화: 139-0887-6987
인터넷전화: 070-4233-3386 / 070-8251-6987
http://cafe.daum.net/tootooguest
(검색하면 다 나옴)
투투게스트하우스은 한국인 주인장이 있는 곳, 먼저 윈난을 여행 중이었던 지인이 장기투숙을 하면서 소개해준 숙소였다. 복층형 아파트를 개조해서 만든 숙소라 그야말로 가정적인 분위기인데, 중국 기준이 아니라 한국 기준으로 깨끗해서 문 열고 들어가자 마자 깜짝 놀랐다. 내가 워낙 열악한 시설을 거쳐오기도 했지만; 참 깨끗하고 편안했다. 기본적인 설비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차가 좋았다. 주인장이 차에 미쳐 중국을 돌아다니는 분이라서 운남 산골에 차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고 했다. 아침저녁으로 훌륭한 푸얼차(보이차)를 홀짝홀짝 얻어먹을 수 있는 분위기.
나는 도미토리에서 지내기로 했다. 2층침대인데 싱글침대가 짐이랑 책이랑 다 펼쳐놓아도 충분히 잘 수 있을 정도로 넓어서 좋았다. 이렇게 물건을 헤쳐놓고 나면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까닭은 집에서 방안을 어지럽히고 살기 때문이겠지. 게다가 오랜만에 한국말을 마구 할 수 있게 되니까 행복했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오화구 지역 서울로 치면 분당이나 일산 신도시 같은 분위기였다. |
복층형 아파트의 높은 유리창 |
소파에 누워서 좌뒹굴 우뒹굴 |
자수와 사진 등 벽에 걸린 장식은 사모님의 취향이라고 한다 |
2층에서 내려다본 거실 |
한국 책이 많다! |
내가 썼던 도미토리 방의 침대 |
투투게스트하우스의 사장님은 의외로 재미 있는 사람이엇다. 중국에서 공부를 오래하고 여행도 많이 다닌 분이라 그런지, 말수가 많지 않지만 가끔 한 마디 씩 툭툭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뒤로 넘어갈 때가 많았다. 정보로서의 가치는 말할 필요도 없고 농담도 재미나고 무엇보다 음모론이 흥미진진했다.
(쿤밍에 오기 직전에 사천성 청두에 들러 팬더기지 갔던 이야기를 했더니...)
"팬더를 보려면 쓰촨 와룡팬더기지로 가세요."
"거기는 어딘데요?"
"성도 북쪽에 있는데 규모도 크고 팬더도 많아요."
(좋은 정보, 메모를 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툭 던진다.
"근데 아무래도 팬더는 중국에서 제작하는 것 같아."
"네?"
"어떻게 짐승이 그렇게 하얗고 까맣고 그럴까?"
"흰곰에 스프레이 칠한 거예요? ㅋㅋㅋ"
"안 그럼 그렇게 생길 수가 없지. 뭔놈의 보호색이 그렇게 생겼나? 팬더가 갓 태어났을 때는 흰 쥐 같이 생겼는데, 그게 자라면서 눈부터 검어진단 말이에요."
"생후 일주일 지나면 초벌칠 살살 시작하는 건가요?"
"그렇지. 비오면 지워질 수도 있으니까 동물원에서 보여주지도 않고. 비오는 날에 팬더 보신 적 있어요?"
엄청 진지하게 막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낸다.
팬더 제작 공정 2개월 차 |
10월 24일 애정에 관하여
당신에게 바라는 건 오직 삶 뿐이야. 살아 있어 줘. 내 곁에 있지 않아도 괜찮아. 새벽에 한국에 있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잠에서 깼다. 이어폰을 끼고 그때 그 노래를 다시 들으며 그를 생각했다. 그의 제안은 수락하기 어려웠고 그의 진심은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나 내 안의 애정만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멀리 있기에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기뻤다. 애정은 가까이 있을 떄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다. 그립고 그립지만, 눈 앞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곧바로 만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립기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애정에서는 애틋한 그리움이 칠할이니까.
게스트하우스에서 같은 방을 쓰는 강ㅇㅇ 언니와 저녁을 먹으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떠나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맥주를 마셨고 호기로워졌으며 조금은 우울해졌다. 높고 맑은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리는 밤길을 걸으며 언니가 말했다.
"모든 사랑은 배반을 꿈꿔요. 어리석음이 인간의 순리이기 때문이지. 어리석음에 묻혀 있었던 순간이 행복한 거야. 그렇게 믿어야 해. 그렇게 믿어야 좋아. 그 어리석음은 나의 순수의 결정체니까. 순수는 열망이고 뜨거움이지. 그런 뜨거움을 누가 또 가질 수 있을까? 축복이지."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 곳에서 만난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베란다를 열고 창 밖을 보면서 언니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사람이 높은 곳에 오르면 아래만 봐. 더 높은 곳을 보면 별이 보이는데. 저 별들의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사람이 이름을 붙이기 전부터 저기서 있었던 하나 하나의 행성들인데. 그걸 묶어서 별자리를 만들다니 이상한 일이지?"
강ㅇㅇ언니가 자기가 했던 이야기를 스스로 기록한다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텐데. 언니의 침대 머리맡에는 라오서의 루어투어시앙즈(낙타상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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