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9일 금요일

무작정 여행기 13. 무정한 사귐.

쿤밍 시내에 있는 취호



10월 28일 리핑

전날 밤 게스트하우스에 리핑이란 중국인 친구가 들어왔다. 내가 묵었던 투투게스트하우스는 한국인이 사장이고 아무래도 한국인 손님이 대부분인 곳이었다. 중국인이나 외국인이 묵었다 가는 일도 드물게 있긴 하지만 따로 홍보를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리핑이 이 숙소를 찾아온 것은 한국인 이ㅇㅇ 선생의 소개 덕분이었다. 이선생은 쿤밍에서 이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다가 북부의 산간지역으로 떠난 분인데 그곳에서 리핑 등의 일행을 만나 함께 트레킹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쿤밍에 돌아와서 남은 일정은 같은 숙소에서 머물기로 했단다.

이선생은 시원시원한 눈매와 밝은 웃음이 좋은 느낌을 주는 동갑내기 남자분이었다. 중국어를 전혀 못 하데도 리핑을 포함해 중국인 여덟 명과 동행이 되어 운남의 북부 샹그리라와 매리설산을 지나 사천성 야딩까지 돌아보는 긴 코스를 함께 했다. 이선생과 리핑은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장난을 치면서 친해졌다고 했다. 한 번은 산장의 숙소에서 아침으로 죽과 몐바오(面包, 밀가루 찐빵)가 나왔다고 한다. 리핑이 남은 빵을 싸가려는데 자기 주머니가 비어있지 않아서 이선생의 주머니에 넣어달라고 했단다. 그러자 이선생은 먹던 죽그릇을 들어서 리핑의 주머니에 부어 넣으려고 했다고. 손짓발짓을 섞어 이런 일화를 들려주면서 두 사람은 개구쟁이 같이 웃었다.

길을 걸을 때 언어는 정말로 아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중국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리핑에 관해 구체적인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사는 곳, 가족관계, 나이, 여행경로, 취미, 직업 같은 것들. 하지만 리핑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한다고 해도 이선생 같이 친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함께 험한 산을 올랐던 경험을 공유하는 관계는 정말로 특별할 테니.

리핑과 이선생은 남은 일정이 며칠 되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오래 계셨던 김ㅇㅇ선생과 함께 쿤밍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선생과 김선생은 젊은 남자들이고, 리핑은 아리따운 광동 아가씨, 나는 어쨌든 여자사람, 어설프나마 더블 데이트 같은 분위기로 구색이 맞았다. 우리는 일단 쿤밍 시내의 취호에 갔다.


버드나무와 연잎이 우거진 공간
취호공원(翠湖公園, 취후공위엔)에는 호수를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광장에는 위락시설도 있었다. 비취호수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호수였다. 호수에는 수련이 풍성하게 무리지어 자라고 있었고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흐드러져 있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공원인지라 시민들이 모여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공간이기도 했다. 한적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아름다운 호수와 나무를 보며 산책하는 동안 사람 구경까지 할 수 있었다.

얼후와 비파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들

취호 산책로에 들어서는데 승복을 입은 남자가 다가오더니 갑자기 내 손에 목걸이를 쥐어주었다. 옥색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불상 모양 팬던트에 빨간 끈이 달려 있었다. 이렇게 조악한 팬던트를 목에 걸고 다닐 정도로 키치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은 13억 중국 인구를 통틀어도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승복 입은 남자가 진짜 종교인일 가능성은 아주 낮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려인 것 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부모의 평안을 기원해주는 일은 기뻤다. 그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내 가족들의 일생평안을 말하며 미소지었다. 그에게 소액의 돈을 내밀자 그는 다시 한 번 내 부모를 위해 축원했다. 이렇게 싼 값으로 부모와 형제의 평안을 구해도 좋은 것일까 미안해질 정도였다.

취호는 중국의 여느 공원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드는 장소였다. 마이클잭슨의 춤을 중국풍으로 재해석해 계승하고 있는 아주머니 트리오, 얼후와 비파와 대금과 소고와 짤랑짤랑 탬버린으로 이루어진 악단의 합주, 그에 맞춰 부채춤을 추던 여장한 할아버지와 노래하는 아주머니, 단둘이 마주보고서 진지하게 얼후와 비파를 연주하는 아저씨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관객들을 만났다. 음악적 성취나 기교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진심으로 음악과 무용을 즐기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종교인과 예술가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일을 해내면서 세상을 가치 있고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니까. 그렇다면 유사 종교인과 음악과 무용을 즐기는 아마추어 예술인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존중감을 표현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순간의 여흥이나 위안일지라도 덕분에 나는 조금 더 행복해졌다.





취호공원에는 간식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상점도 늘어서 있었다. 리핑은 탕후르를 보고 신이 나서 골라 잡았고 나는 노점에서 파는 야자를 샀다. 먹을 거 사들었으니 본격 관광객 모드로 두리번 두리번 시민들의 공연을 구경하며 넓은 호수를 따라 걸었다. 한참 걷다 지쳐서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새우요리집에 들어갔다. 매운 새우볶음 요리를 먹고 술도 조금 마셨다. 취호 근처에는 운남대학이 있었다. 밤이 깊어도 대학가에는 사람이 많았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니 한적했다. 일행과 함께 대학가의 밤을 즐기며 걸었다.

운남대학 인근 음식점에서 우리를 살찌운 매운 새우 볶음 요리

일행이 생겼다고 해서 갑자기 길을 잘 찾게 되는 것은 아니다.
길을 묻는 리핑과 지쳐서 길가에 걸터 앉은 이선생님.
(초상권에 대한 허락을 미리 구하지 못해서 잘생긴 얼굴을 가립니다.)


10월 29일 생일 케이크

다음 날도 이선생과 김선생, 리핑과 동행했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조선족이 경영하는 동북식 꼬치집에 갔다. 숯불을 앞에 두고 직접 꼬치를 구워 먹는 식인데, 우리나라에 있는 중국식 꼬치구이집은 대개 동북 스타일이라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리핑은 중국 남부의 광저우에서 왔기 때문에 직화구이 문화가 특이했던 모양이었다. 신이 나서 연신 사진을 찍으며 먹었다.

시내 관광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오화구로 돌아오자 김선생과 이선생이 남자들끼리 들를 데가 있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와 리핑은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씻고 나오기로 했다. 다시 일행들을 만났을 때 김선생의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언젠가 이번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며 삼십세 생일을 맞는 일에 대한 부담감을 설명했던 적이 있었다. 무작정 떠나온 이유, 스스로를 좀 멀리서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 혼자 섬서성 박물관을 돌아다닌 뒤 교자를 먹으며 생일을 자축했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김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마음에 두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내일이면 리핑은 광저우로, 이선생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기도 했다.

김선생님이 선물해준 생일 케이크

이국땅에서 여행 중인데 일주일이 지난 뒤의 생일 케이크는 감동적이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한 오붓한 파티는 진심으로 즐거웠고 김선생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리핑, 이 매력 넘치는 광동 아가씨가 생일을 축하한다며 뽀뽀를 해주었다. 만난지 고작 사흘 만에 아름다운 외국인 아가씨의 입맞춤을 얻어낸 나란 여자, 레즈비언이 아닌 것이 한스럽다.

달이 차올라 보름달이 되었다. 옅게 깔린 구름 사이로 둥근 달이 고개를 내밀었다 저 너머로 사라지곤 했다. 이백의 시가 생각났다. 마침 아이폰에 저장해 두었기에 꺼내서 조용히 읽어보았다.

月下獨酌 월하독작, 달빛 아래서 혼자 술을 마셨소
-李白

花間一壺酒 화간일호주, 꽃들 사이에서 한 병의 술을
獨酌無相親 독작무상친. 벗도 없이 홀로 마시네
擧杯邀明月 거배요명월, 잔 들어 밝은 달을 청하고
對影成三人 대영성삼인. 그림자까지 맞이하니 셋이 되었네
月旣不解飮 월기부해음, 달은 술을 아예 마시지 못하니
影徒隨我身 영도수아신. 그림자만 부질없이 나를 따라 다니네
暫伴月將影 잠반월장영, 잠시 달을 친구하고 그림자 거느리고
行樂須及春 항낙수급춘. 즐거움을 누리는 이 일 봄에야 가능하리
我歌月徘徊 아가월배회, 내가 노래하면 달도 따라다니고
我舞影零亂 아무영령난.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춤을 춘다
醒時同交歡 성시동교환, 깨어서는 함께 서로 즐기다가
醉后各分散 취후각분산. 취한 뒤에는 각자 흩어진다
永結無情游 영결무정유, 무정한 사귐을 영원히 맺어
相期邈雲漢 상기막운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자

달 아래서 혼자 술을 마시던 시인이 달과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는 세 명이 모였다며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 웃음이 나오는 풍경이다. 나에게는 세 명의 친구가 생겼다. 우리가 헤어진 뒤 다시 만나려면 이백 같이 은하수를 예약해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무정한 사귐이야 말로 여행길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이리라.


구름이 낮게 깔린 쿤밍의 하늘


10월 30일 이별의 날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보니 리핑과 이선생은 이미 게스트하우스를 떠났다. 아침 비행기와 기차편이라서 출근시간 전에 서둘러 나간다고 했었다. 리핑이 떠난 빈 침대를 보니 어쩐지 쓸쓸해졌다. 리핑은 음악을 사랑하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서 항상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 놓거나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녔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조금 거슬렸는데 막상 사라지니 아쉬웠다.

우리와 같은 방을 썼던 아주머니도 오후에 짐을 싸들고 한국으로 떠난다고 했다. 아침에 함께 나가서 얼쓰(쌀국수)를 먹었는데 밥 먹고 오는 길에 과일가게에 들러서 과일도 사주셨다. 지나가다 보이길래 하미과가 맛있다고 했을 뿐인데, 감사합니다! 연세가 울 엄마 뻘이라 이름을 부르기도 그랬고 별로 친해지지 못했는데.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겨서 일정을 당겨 들어가시는 거라 당신도 많이 아쉬웠을 것 같다.

나도 쿤밍을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편안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운남의 기후와 환경에도 충분히 적응한 것 같고, 일행도 생겼으니 다시 길을 걸을 차례. 가이드북을 펼처놓고 여행루트를 살펴보고 내가 만나게 될 소수민족들에 대해서도 찾아 보았다.

운남성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 중 인구가 제일 많은 민족은 이족(彝族)으로 446만명에 달한다. 이족은 호랑이를 숭배하는 민족인데, 천신이 세상을 만들 때 호랑이를 잡아서 큰 뼈로 하늘을 받치고 호랑이의 눈으로 해와 달을 만들었으며 호랑이의 수염으로 햇빛을 만들고 호랑이의 이빨로 별을 만들었다는 신화가 전해진다.

호랑이에 얽힌 신화를 읽다가 잠들었기 때문인지 꿈에서 호랑이와 함께 춤을 추었다. 둥둥 울리는 북소리에 맞춰서 양 발로 번갈아서 두 번씩 바닥을 구르고 어깨와 팔을 같은 방향으로 흔들흔들 움직이는 춤이었다. 호랑이도 앞발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호랑이의 꼬리가 물결치듯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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