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늙은 개 세티는 눈이 멀어 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백내장이 진행되면서 초롱초롱했던 까만 눈이 탁한 회색으로 변하고 있다. 개가 보는 세상은 가장자리부터 뿌옇게 흐려질 것이라고 했다.
시츄종의 개들이 흔히 그렇듯 나의 개도 귀에 염증을 달고 살았다. 올 여름에는 날씨 탓인지 더 심해졌다. 지금은 사람에 부르는 소리도 문소리도 거의 듣지 못한다. 시력에 이어 청력을 잃어가는 느낌이 어떨까 상상하기 어렵다.
세티가 그만큼 더 살 수 있다면 내 수명에서 십 년 정도 떼주어도 좋아. 언젠가 동생과 개의 수명에 대해 이야기하다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혀서 이렇게 말했다. 동생도 고개를 끄덕이며 제 수명도 나눠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거래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게다가 시력도 청력도 잃은 채 오래오래 살아가는 일이 축복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제는 세티의 식습관에도 크게 제한을 두지 않는다. 사람이 먹는 음식도 나누어 주기도 하고 특히 녀석이 좋아하는 과일을 자주 먹인다. 미각이 살아있고 치아가 남아있으며 식욕이 있을 때에 맛있는 음식을 맛보게 해주고 싶다. 노인네한테 먹는 낙이라도 있어야지.
우리 세티 옹, 이제 초등학교 앞에 가면 그곳에 있는 어린이들보다 절대나이가 많아져 버린 늙은 개, 부디 미각을 잃지 말고 건강하게 버텨주렴.
+케이크에 딸려온 폭죽을 터뜨렸는데 개는 깜짝 놀라지 않았다. 화약 냄새가 나자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몸을 웅크렸다. 마트에 갔다가 개를 위해 양고기 육포를 사왔다. 비린내가 나는 말린 살코기를 찢어서 바닥에 내려 놓았으나 개는 제 눈 앞에 펼쳐진 것을 보지 못했다. 이런 오라질 개, 육포를 사와도 왜 먹지를 못하니... ㅠ 8.27.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