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일 목요일

가족에 관해.

1.
내 결정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다른 가능성을 고려하며 만류하는 것은 어머니의 몫. 결정한 것을 현실화하는 것은 나의 몫. 우리는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순응할 이유는 없지. 나에게 반대한다고 화를 낼 이유도 없지. 굳이 나의 입장을 납득시킬 이유도 없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다만 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ㅡ 이것은 나름의 화해, 엄마도 이것이 화해라고 생각할진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의 이해나 지지는 굉장히 강력한 것이라서 그것이 없으니 아프네. 아무리 속상해도 내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에게 나의 선택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권한은 없겠지. 그런 건 정당하지 않아. 엄마가 나에게 강요한 것을 내가 거부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유로.

엄마의 내면적 가치가 나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나면 몸서리치게 무섭다. 유전자의 절반을 물려주고 유년기의 양육을 전담했으며 성장기 대부분을 지켜보았던 사람인데 나와는 참 많이 다르구나 싶어서. 이해했으니까 이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미워하지 않고 억울하지도 않고. 아쉬움은 있지만.
2.
내 동생이 엄마의 아들이라서 나는 엄마와 영영 헤어지는 방법은 상상도 못하겠네. 상상하는 것만으로 내장이 뜯기는 기분이 들어 버렸어. 아; 제망매가 생각난다. 이런 처절한 기분을 그렇게 우아하게 말하다니 옛 사람들은 내장에 철갑을 둘렀나.

3.
어쨌든 남이 쓴 책을 버리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버리게 된 사연이 구구절절하지만 그 개연성과 무관하게 책을 버렸다는 사실만으로 고통을 느낀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책에 대한 집착은 아쩔 수가 없다.

4.
새벽에 스트레스성 폭식을 감행하고 말았다. 하필이면 손에 들어온 음식이 소세지빵이었다. 우걱우걱 씹어먹고 난 후에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너무 역겨워서 결국 모두 토해버리고 말았다. 폭식 후 구토라니 몸은 너덜거리고 마음은 괴로웠다.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 걸까? 만약 나에게 다시 반복되고 만다면 스스로를 미워하게 될 것 같다.


5.
고통이 다만 지나가고 마는 것이라는 믿음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 스스로 해결하지 않은 문제는 결국 되돌아 와서 뒤통수를 때린다. 잽싸게 고개를 숙여봐도 피할 수 없다.

6.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너무 많은 열정을 쏟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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