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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시 남부에 있는 이름 모를 작은 하천 |
해와 바람의 도시, 쿤밍
쿤밍은 춘성(봄의 도시)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고도가 높지만 사시사철 기후가 온난하고 녹음이 우거져있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햇살이 진하고 바람이 경쾌했다. 쿤밍의 기후를 예찬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쿤밍에서 오래 지낸 지ㅇㅇ 선생님에게 "쿤밍은 해와 바람의 도시로군요." 라고 말했더니 이런 대답을 들었다.
"해와 바람의 도시? 제가 9월에 해를 한 5일 봤나... 그것도 구름 속에 있는 해였어요. 원래는 8월이 우기인데 올해는 9월이 그랬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장마처럼 비가 많이 오는 것도 아니고 스콜성은 아니에요. 그래도 하루는 맞으면 아플 정도로 손가락만한 비가 떨어지더라고. 밤에 비가 많이 오고 낮에는 자주 안 왔는데 맑으려고 하면 막 수증기가 올라와요. 그런데 비가 와도 습하지는 않아요. 워낙 건조한 지역이니까. 그리고 겨울에는 바짝 바짝 말라요. 4월, 5월이 제일 덥고 6월부터 우기가 시작되죠."
그렇다고 합니다. 다른 계절에는 날씨가 썩 좋지 않을 때도 있는 모양, 내가 머물렀던 10월~11월 사이의 날씨는 유달리 좋았던 모양이었다. 햇살도 바람도 풍요로웠다.
윈난의 쌀국수
윈난은 온난한 고원의 기후 덕분에 내륙지방 중에도 가장 산물이 풍부한 지역. 일년내내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은 운남 18괴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의 지역 별 농수산물 유통현황 같은 것을 뒤져본 적은 없지만 여행자로서 비용을 지출하며 체감한 바로 해산물 외에는 식재료가 굉장히 저렴했다.
쿤밍 일대는 쌀을 재배하는 지역이고 쌀 음식이 발달했다. 남방이라 연간 삼모작이 가능한 지역이 많은데, 실제로 이곳으로 오는 기차에서 물을 대고 모내기를 해놓은 논을 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밥이 주식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외에도 쌀국수나 떡, 과자 등 다양한 쌀 가공 식품 종류도 많이 먹는다.
쿤밍의 쌀국수, 미센 |
쿤밍에는 과교미선(过桥米线)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 얽힌 일화가 있다.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남편을 위해 아내가 매일 다리를 건너 음식을 가져다 주었는데 가는 길에 음식이 식어버려서 영 맛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먼 거리를 이동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쌀국수를 개발했다고 한다. 면을 삶은 뒤 고명을 얹어 두었다가 먹기 직전에 진한 고깃국물을 부어주는 것이다. 조리 형태만 놓고 보면 잔치국수나 휴게소 우동 같은 일종의 간편식에 불과하지만 다채로운 재료와 고명이 추가되면서 이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음식이 되었다.
쿤밍에서 내가 매일 아침 가던 식당에서는 닭육수에 면을 말아주었다. 고명으로는 삶은 닭고기 조각을 손으로 잘게 찢어둔 것 또는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매운 양념을 해둔 것(지딩 鸡丁) 두 가지 토핑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다. 그 외에 염장한 채소(옌차이 盐菜) 같은 발효식품을 얹기도 하고, 부추나 쪽파, 샹차이 등의 향채를 잘게 썰어 두었다가 곁들이기도 한다. 풍미를 더하기 위해 기름에 재운 고추를 얹어 매콤하게 먹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운남성을 대표하는 미셴은 커다란 그릇에 쌀국수를 넣고 육류 한 종류와 염장채소, 향채소를 곁들여 육수에 말아먹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미센은 육수와 면, 고명의 종류에 따라서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미센의 육수로 닭고기가 아니라 소고기를 쓰는 집도 있다.
위에 얹는 토핑의 종류도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다. 쿤밍의 오화구에 있는 어느 섬서성 음식점에서 미센을 주문했더니 버섯과 청경채에 채썬 다시마와 얇은 두부 등을 토핑한 미셴이 뚝배기 같이 뜨겁게 달군 돌그릇에 담겨 나왔다.
미센 한 뚝배기 하실래요. |
쿤밍시 중심에서 동쪽에 있는 신추안통도화미셴(新迎传统豆花米线)은 특화된 미셴 요리집으로 유명했다. 도화미셴은 탕 국물이이 없고 순두부와 섞어 먹는데, 다진 돼지고기 볶음과 기름에 절인 말린 고추, 부추 쫑쫑 썰어둔 것에 매운 양념을 곁들여 먹는다. 양념이 꽤나 매콤한데 중독성이 강한 매운맛이었다. 입 안이 너무 매울 때는 야자로 만든 젤리를 한 스푼 먹어서 달랜다.
순두부를 얹어 주는 쌀국수라니! |
슥슥 비벼서 먹는다. |
신추안통 도화미셴 집의 메뉴판 한화로 1000원도 되지 않는 음식가격이 참 착하다. 그러나 현지에서 오래 계신 분의 견해에 따르면 중국의 경제성장과 인플레를 보여주는 가격이라고... |
매운 양념에 지친 입안을 달래주는 야자 젤리 |
하루 세 끼 밥 먹는 한반도인으로 아무래도 쌀국수라 밀국수보다 소화가 잘 되고 입에 닿는 맛도 좋았다. 쿤밍에 도착하고서 미셴을 거의 매 끼니 먹었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부터는 얼쓰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다. 미셴(米线)과 함께 쿤밍을 대표하는 다른 쌀국수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얼쓰(饵丝)라 하였다~ 얼쑤!
반면 얼쓰는 마치 떡을 만들 듯이 일단 쌀가루로 밥을 짓고 그것을 치고 찌고 두드리는 등의 가공을 거친 것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말이 달라서 정확히 어떤 공정인진 모르겠다.) 물에 데친 얼쓰는 보통의 면과 달리 젓가락에서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물기를 머금은 떡 같이 진득하니 젓가락에 감기는 느낌으로 잡히고, 면발을 입에 넣으면 쫄깃하니 씹는 맛이 좋다. 나는 얼쓰의 독특한 질감이 마음에 들어서 아침마다 먹었다.
국물이 없는 볶음 쌀국수도 있다. 차오미셴(炒米线)이라 부르는 운남의 볶음 쌀국수는 팟타이 같은 동남아 풍 볶음 쌀국수와 겉보기 부터 많이 다르다. 중국에서 흔히 먹는 볶음면 차오미엔(炒面)과 거의 유사하게 조리하는 데 다만 면이 밀국수가 아니라 쌀국수로 대체되는 것 뿐. 간장과 식초 굴소스 등으로 조미해 검은 빛이 나서 언뜻 보기엔 우리나라의 짜장면 같은 비주얼. 다진 돼지고기를 토핑으로 함께 볶아주는 집도 있었는데 이렇게 해먹으면 정말 짜장면 느낌이다.
볶음 쌀국수 카오미셴 |
쌀국수는 면, 고명, 육수의 종류와 여부, 조리법 등에 따라서 맛이 천차만별이다. 쿤밍과 인근의 동네들을 다니면서 나름 다양한 종류를 먹어보려 했다. 하지만 사진을 다시 보니 내가 먹어본 미셴은 몇 종류 안 되는 듯. 하긴 중국 요리를 모두 다 먹어본 사람은 중국에도 없다고 하니까.
쿤밍에서의 먹부림
쿤밍에 도착해서 처음 먹었던 음식은 꼬치구이였다고 기억한다. 여러 가지 고기와 채소를 숯불에 구워주는 평범한 꼬치구이 집에 갔다. 중국 내륙을 가로지른 여행 끝에 마침내 지인을 만났다는 기쁨에 술도 한 잔 마실 겸 해서 갔었다. 그곳에서 지인이 시켜준 요리 중 아주 특이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통 가지구이였다. 가지는 중국에서 흔하게 먹는 채소이고, 꼬치구이 집에서도 썰어놓은 가지를 꿰어 불에 구워주는 것은 몇 번 먹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가지 하나를 통째로 구워서 내주는 요리는 처음이라 무척 신기했다.
통 가지구이 요리 |
터프한 스타일의 가지구이 거칠게 찢어진 가지의 질감이 나쁜 남자 같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 나쁜 가지 나에게만은 촉촉하겠지. |
일단 통통한 가지를 통째로 숯불에 얹어 구운 뒤 속이 눅진눅진하게 익어들어 가면 배를 가른다. 축축하게 잘 익은 가지의 속살에 갈아놓은 고기와 다진 파, 고추, 부추 같은 양념 등속을 섞어 가지 껍질 속에 다시 채워 넣어서 나오는 요리이다. 제대로 된 메뉴판에서 본 적이 없고 꼬치집의 냉장고에 가지가 있으면 그 중에 잘 생긴 가지를 골라서 주문하는 식이라 이 요리의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다.
중국어로 가지는 치에즈(茄子)라고 한다. 그런데 가지의 생긴 모양 때문에 이 단어가 남자의 성기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단다. 가지와 자지가 헷갈릴까봐 채소 가지를 부를 때는 자주색 가지라는 뜻으로 즈치에즈(紫茄子)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치에즈라고 한다. 사실 내가 중국어를 배우고 나서 단 한 번도 가지라는 말을 자지를 지칭하기 위해 써보았던 적이 없었고 누구도 나에게 그런 비유를 사용했던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는 잊혀지지가 않기 때문에 여행기를 쓰면서도 굳이 적어본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자 성기를 식물화하여 설명할 때 기껏해야 고추 정도의 채소에 비유하는데 비해, 중국 남성의 것은 가지에 비유되다니 과연 대륙이라 사이즈가 다른 것인가 하는 점은 아직도 궁금하다.
매운 새우 볶음 |
그리고 기억에 남는 음식이 매운 새우 볶음, 역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쿤밍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수에 갔다가 우연히 들어간 새우요리 전문점에서 먹었다. 다른 지역에서 오긴 했지만 중국인인 친구가 적극 추천한 걸로 봐서 쿤밍 지역의 유명한 요리일지도 모르겠다. 근처에 비슷한 요리를 취급하는 집이 몇 군데 더 있기도 했다.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해서 조금 괴로웠지만 같이 갔던 다른 한국인들 모두 아주 맛있게 먹었다.
콩나물과 다른 채소를 곁들여 맵게 볶은 해산물 요리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아구찜이나 해물찜과 비슷한 식재료 구성이다. 그러나 운남의 매운 맛은 우리나라의 매운 맛과는 차이가 있다. 한반도의 매운 맛은 고추의 매운 맛을 단맛과 감칠맛으로 보강해서 혓바닥에 쩍쩍 달라붙게 만들지만, 대륙의 매운 맛은 고추에 후추와 화초, 산초 등을 더해서 매움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다고나 할까.
다음의 여행기에서 다시 쓰게 되겠지만, 쿤밍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지인과 다른 일행이 생겼다. 아무래도 혼자 다닐 때는 세 끼 밥을 다 챙겨 먹기도 귀찮고 정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러 가도 단품 하나를 시켜 놓고 대충 먹는 게 전부였지만 동행이 생기고 나니까 맛있는 집을 찾아 다니고 음식도 이것 저것 시켜서 나누어 먹어볼 수 있었다. 그래서 산시성 시안에서는 꼭 먹어보라는 추천을 받았지만 결국 먹어보지 못하고 떠나왔던 량피나 유파미엔 같은 것을 쿤밍에 와서 먹었다.
허리띠만한 두께라는 삐앙삐앙 면; 복잡한 한자가 인상적이다. |
산시성 음식점에서 먹은 량피(凉皮) 폭이 넓은 면을 데쳐서 채소와 함께 버무린 뒤 매콤하게 무쳐 낸다. |
이것은 밀가루로 만든 량피. 밀면도 있고 쌀면도 있는 듯. |
개와 중국인 모두 출입할 수 있는 식당입니다. |
심지어 중국의 남서쪽에서 동북부의 음식을 찾아먹기도 했다. 동북식의 양꼬치 구이, 한 입 크기의 양고기를 양념에 재워두었다가 내어주고, 직화구이로 테이블마다 숯불을 놓아두며, 가로대가 있어 여러 개의 꼬치를 지글지글 구었다가 두고 먹을 수 있는 식이다.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는 꼬치구이 집은 대개 동북식인 걸로 알고 있다. 나는 동북지역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어서 익숙했는데 직화구이를 좋아하는 걸 보면 중국의 조선족은 확실히 한민족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숯불구이 유전자라도 있는 걸까? |
옥수수면으로 만든 국수도 별미. |
과육이 무시무시한 열대과일 그레이프푸르트 같이 생겼다. |
야자 깎아 주는 청년 야자즙은 마시고 과육은 오물오물 씹어먹는다. |
운남성의 특징으로 벌레가 많다는 점을 꼽기도 한다.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이다 보니 사람만 살기 좋은 것이 아니라 벌레도 살기 좋은 모양이다. 운남에서는 메뚜기를 음식으로 먹는다거나, 모기가 하도 커서 세 마리만 잡으면 한 그릇이 나온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있다. 다소 과장된 이야기일 테지만 아마 벼농사의 천적인 메뚜기떼가 날아와 농사를 망치면 대신 메뚜기를 잡아 연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기는 아직 식품으로 나온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말벌을 보았다.
시장에서 벌집을 쌓아 놓았길래 당연히 벌꿀을 파는 줄 알고 가보았더니 벌집에서 손가락 한 마디는 될 법 한 애벌레를 꺼내고 있었다. 벌집에 살던 말벌과 벌의 에벌레를 어떻게 요리해 먹는지 상상도 하기 어려웠지만 상인은 부지런히 애벌레와 성충 말벌을 나누어서 일회용기에 담고 있었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자 옆에서 구경하던 아저씨가 말벌이 담긴 페트병을 들어보여 주었다. 말벌 성충을 술에 재웠다가 먹기도 한다고.
벌 캐는 부부 |
벌집 모양이 신기했다. 야생의 벌집은 이렇게 생겼나보다. |
애벌레와 성충, 식용이라고 합니다. |
어딘가에 좋다는 말벌주. 이런 걸 먹지 않으려면 건강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과연 미려춘성 쿤밍 답게 잎이 푸른 채소가 시장에 잔뜩 있었다. 다양한 곡식과 산물을 구경하며 즐거워했다. 처음에는 자생적인 재래시장이었을 테지만 정부 주도로 시장을 개발하게 되면 일대를 정비해서 상가건물을 짓고 광장 쪽에는 지붕을 씌워서 비를 막은 뒤 가판대를 세워 소상인에게 임대해 준다. 중국의 시장이 운영되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의 소상인이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여기 많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중국의 공산당 정부를 칭찬하다 보면 빨갱이란 호칭을 받게 되겠지만.
근대화된;; 재래시장의 활기찬 분위기 |
곡식 자루를 열어 놓고 되로 퍼서 판다. |
인간에게 포획된 자라. |
미끌미끌 미꾸라지;; |
머리만 남아 있는 생선 |
죽음을 기다리는 닭 무리 |
작은 오리 우리 |
이것은 수제 소시지; |
바이주 황주 펀주 술이 있어요! |
술독 뚜껑이 열리면 달콤한 향기가 폴폴 감돈다. |
월병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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