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혁이란 이름의 소년을 만났다. 막 중학교에 입학한 나이였다. 키는 또래에 비해 컸지만 얼굴에는 보송보송 솜털이 남아 있어 어린애 티가 났다. 진혁을 보면 십대 초반에 누구나 겪었을 법한 혼동과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애의 가느다란 눈매에는 장난기가 가득했으나 수줍음이 많아서 다른 사람과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일상적인 대화에는 어우, 씨바, 존나, 같은 십대의 감탄사를 풍부하게 섞어 빠르게 말했지만, 긴 문장으로 이야기할 때는 말을 더듬었다. 그런 아이의 과외교습을 맡게 되었다. 나로서는 고수입의 과외 아르바이트 자리를 거절할 형편이 아니었다.
진혁이네 집에 처음 갔을 때 그애가 나에게 했던 이야기는 대부분 우리 누나가요, 라고 시작했다. 진혁이의 누나 지혜는 중학교 삼학년 여학생으로 확실히 돋보이는 아이였다. 지혜가 밝은 얼굴로 현관문을 열어주었을 때부터 강한 인상을 받았다. 내가 진혁이와 아이들 아버지와 함께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지혜는 부엌에서 차와 과일 같은 것을 내왔다.
집안 사정을 들어보니 아이들의 어머니는 진혁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 뒤로 장녀인 지혜는 제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여러 노력을 해왔던 것 같았다. 진혁이가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 본 시험 성적이 그리 좋지 않자 과외를 시켜달라고 아버지에게 청한 이도 지혜였다고 했다. 지혜는 중학교 삼 년 내내 반장을 했고 성적도 좋으며 자기 일은 스스로 잘 알아서 하기 때문에 신경을 쓸 일이 없다는 아버지의 딸 자랑이 이어졌다. 그에 비해 아들에 대한 평은 꽤나 냉정했다. 진혁이는 다른 애들에 비해 키만 빨리 컸지 속은 늦게 여무는 것 같다고 했다. 진혁이는 그런 말을 바로 옆에서 들으면서도 속없이 실실 웃기만 했다. 확실히 진혁이는 말랑말랑한 아이였다.
그 집을 드나들면서 지혜가 익숙하게 집안 살림을 돌보고 제 동생을 챙기는 모습을 보았다. 지혜는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있는 동생을 어르고 달래서 책상 앞에 앉혀 놓는 일도 맡아서 했다. 누나의 조력이 없었다면 나 같은 대학생 과외선생이 아니라 경험 많고 유능한 전문 강사라 해도 진혁이를 움직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학교 일 학년의 남자아이는 인류의 진화발달 단계에서 호모사피엔스 같은 고생인류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살아있는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진혁이가 또래에 비해 학업에서 뒤쳐지는 편이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성장기의 아이에게 현생인류 평균의 지적 이해도, 공감 능력, 책임감, 성취만족도 따위를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과외수업은 매 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여덟 시부터 열 시 까지였다. 진혁의 아버지는 보통 저녁 아홉시 반에서 열 시 사이에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그도 어색했는지 밖에서 입던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거실 소파에 앉아서 내가 수업을 마치고 아들의 방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면 현관문을 열고 따라 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는 늦은 시간인데 위험하지 않겠는가, 하며 차로 데려다 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나는 걸어서 십 분 거리인데요, 하며 사양했다. 사실 우리 집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이십 분 정도는 걸리는 거리였지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일이 한 달 정도 반복되고 나서야 그는 나의 귀가를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서로 익숙해지자 진혁이 아버지도 과외선생을 상관하지 않고 귀가하자 마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과 부엌을 돌아다니고 냉장고를 열어 무언가 꺼내 먹기도 했다. 진혁이 방에서 수업을 하다가 방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면 이제 나도 슬슬 수업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2.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이 끝나갈 무렵 집으로 전화가 왔다. 전화벨이 멈추고 잠시 후 지혜가 전화기를 들고 방으로 왔다. 전화를 넘겨받아 보니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오늘 저녁에 일이 많이 늦어질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아무 것도 부탁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귀가할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있겠다고 자청했다. 대학생 과외선생이란 가정교사와 베이비시터의 중간쯤에 있으니까, 어차피 밤은 늦었고 다음날 특별한 일도 없었으니 몇 시간 정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 진혁이는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고 지혜는 딱 한 시간만 게임을 하는 거라고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받아 놓았다. 진혁이는 게임을 하고 지혜와 나는 텔레비전을 켜 놓고 나란히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지혜는 아빠가 과로하는 것 같다고 걱정을 염려하는 말을 했다. 게임중독이란 말을 쓰면서 진혁이를 걱정하기도 했다. 지혜는 제 또래의 아이를 둔 중년여성 같이 말했다. 나도 덩달아 지혜를 다른 과외 학생의 어머니 같이 대하고 있었다. 소녀의 얼굴이 표정을 가릴 수 없는 민낯이라면 중년여성의 얼굴은 용도에 따라 골라 쓰는 탈바가지라 해도 좋을 것이다. 지혜는 능숙하게 가면을 썼다. 지혜는 사교적인 동작을 흉내 냈고 의례적인 어휘를 사용했는데 그런 태도가 어색하지 않았다. 지혜가 과외선생을 상대하며 엄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와중에 지혜보다 고작 두 살 어린 진혁이는 아무렇지 않게 냉장고에서 하드바를 꺼내 물고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지혜는 진혁이의 학교생활, 성적, 컴퓨터게임 같은 것에 대해 상담했다. 진혁이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고, 다른 친구를 고려하지 않으며 장난을 치고, 누나가 짜증을 낼 때까지 우스꽝스러운 말장난을 반복하고, 재미있는 일을 할 때는 공부 따위 잊어버리고 마는, 지극히 평범한 중학생 소년이었다. 지혜는 진혁의 습관과 태도를 문제 삼아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누군가가 진혁이의 사소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이 진혁이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살 터울의 누나가 그애와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은 좋지 않아 보였다. 나에게도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는데 우리 남매는 같이 컴퓨터게임을 했고 함께 또는 따로 사고를 치고 다니며 친구 같이 성장했기 때문에 지혜의 태도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나로서는 반대로 지혜의 조숙함이 걱정스러웠다.
진혁이 아버지는 자정을 넘긴 시간에 집에 들어왔다. 그는 지친 모습이었다. 집에 들어와서 아이들의 인사를 받고 넥타이를 풀어 소파에 걸쳐 놓고는 곧바로 나를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고 피곤하기도 해서 나 역시 그 날은 사양하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차에서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진혁의 아버지와 단 둘이 있으며 나는 그와 결혼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이 남자의 아내가 되어 지혜가 짊어지고 있는 짐을 덜어주고 진혁이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싶다는 상상, 내가 그 가족의 구원자가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진혁이 아버지의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분명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이 아니었고 아저씨가 보기에 나는 딸 같은 어린 계집애였을 것이다. 나는 지혜보다 단지 여섯 살 많을 뿐이었다. 그러나 스물한 살, 막 성년이 되었던 시기에 나는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연민에 가까운 감정을 애정으로 착각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지만 덧없는 상상이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생겨버렸다. 아둔하고 주의력이 부족한 진혁이와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취향이 까다로운 지혜, 아무리 생각해도 골치 아픈 아이들인데 내가 잘 해나갈 수 있을까 두려웠다. 진혁의 아버지가 나에게 청혼할 리가 없음에도 내 머릿속에 들어앉은 상상이 나를 두렵게 했다. 그리하여 이 시나리오는 그를 거절하고 배신하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주말동안 아이들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3.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진혁이네 외가는 차로 삼십 분 거리의 이웃 도시에 있었는데 진혁이와 지혜는 외조부모와 친밀했다. 특히 지혜는 외할머니를 무척 따랐다고 들었다. 아이들에게 외할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하는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이 지나고서 아이들을 만났다. 지혜는 단발머리에 흰 리본이 달린 머리핀을 꽂고 웃지 않는 얼굴로 현관문을 열었다. 진혁은 컴퓨터 앞에 앉은 채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다.
외할머니의 죽음은 아이들에게, 특히 지혜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죽음이 진혁이가 스타크래프트의 세계에 더욱 몰입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상공간에서 저글링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일이 죽음에 대한 성찰과 어떤 연관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진혁에게도 물론 충격적인 일이었을 테지만 당시에는 그런 상실이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겉보기에 진혁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혜는 사춘기의 소녀였고 어머니의 죽음에 이어 외할머니의 죽음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모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 여성 질환이 자기에게도 유전될 거란 불안감도 깔려있었던 것 같다. 나는 유방암이 유전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그 확률이 높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기회를 찾지 못했다.
한 번은 지혜가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저는 우리 엄마 같이 스물다섯 살에 결혼해서 스물여덟 살에 아이를 낳을 거예요.
다만 결혼과 육아에 대한 사춘기 소녀의 상상에서 나온 이야기였을까, 제 어머니 같이 요절하고 마는 운명을 받아들이려는 것일까, 그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엄마 같이 살겠다는 딸의 말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뭐라고 이야기해야 좋을지 모르는 채 급하게 대답할 말을 찾았다.
엄마 때는 그랬지만 요즘 스물다섯 살은 너무 빠른 나이야.
지혜는 중년여성 같이 가면을 쓴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은 그러다가 서른이 넘어서도 결혼하지 못할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할 때에 지혜의 얼굴은 너무나 밝고 명랑했다. 하지만 잠시 딴청을 피우거나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해서 지혜가 나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있을 때의 얼굴은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민낯을 감추려고 환하게 웃는 가면을 쓰는 일은 좀 더 나이를 먹고 난 뒤에 시작해도 될 텐데, 재빨리 가면을 갖춰 쓰는 일은 꽤나 힘이 들 텐데, 나는 지혜가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내가 괜히 이 아이 앞에 나타나 아이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리고 지혜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나는 서른이 넘어서도 결혼하지 못했다. 지혜가 스물다섯 살에 결혼을 했을까 문득 궁금하다.
4.
화요일과 목요일에만 했던 과외는 하루 더, 토요일까지 하기로 했다. 나로서는 수입이 늘어 나는 일이 반가웠지만, 수업시간이 늘어나도 진혁이의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진혁이 아버지는 기본적으로 아들에 대한 기대가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석차나 점수에 대해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밤 시간에 아이들을 보살피는 베이비시터, 주기적으로 자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말상대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귀가하면 진혁이는 책을 덮어놓고 밖으로 달려 나가곤 했고, 나는 진혁이가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나면 다시 방으로 불러들여 수업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아이 아버지는 수업 시간을 끝까지 다 채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가끔은 내가 그 집을 떠나고 가족들만의 휴식시간이 시작되기를 바라는 기색을 내보이기도 했다. 나 역시 퇴근이 싫을 리 없었지만 지혜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지혜는 수업시간이 지켜져야 한다고 고집했고 우리들 중 누구도 지혜의 의견을 거스를 정도로 용감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달리 지혜는 진혁이의 성적에 민감했다. 마치 동네의 다른 아줌마들이 자기 아들을 챙기듯 진혁이를 챙겼다. 둘은 같은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여느 엄마보다도 나은 면이 있었다. 지혜는 정확한 시험 일자와 출제범위를 알고 있었고 담당 교사들의 경향도 파악하고 있었다. 진혁이란 녀석은 기말고사가 언제니? 라고 물으면, 어... 언제였더라... 다음주 수요일, 아니 화요일인가... 이런 식으로 어물어물 넘어가고 말았기 때문에, 나는 지혜의 도움이 없었다면 과외를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조금 초조했다. 진혁이의 성적이 적어도 과외를 시작하기 전보다는 조금 나아지기를 바랐다.
지혜는 자기의 진로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 중학교 시절 내내 성실하고 인기 많은 아이였음에도 고등학교 진학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종종 동네 선배인 나에게 고등학교 때의 일을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비평준화였던 시기에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서열화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있었는데 지혜는 반대로 그런 상황을 부러워했다. 고교입시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시험 날의 실수로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친구들이 느낀 패배감이 어떠했는지 설명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애는 우수함을 인정받기를 원했다. 기숙사가 있는 외고에 원서를 넣어보고 싶어 했지만 진혁이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딸이 외고에 가겠다고 고집했다면 말리지 않았을 테지만 그애가 기숙사 학교를 포기하고 가까운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결정하자 내심 안도하는 것 같았다.
진혁이네 가족은 모두 지혜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아침에 밥을 짓는 일은 아이들 아버지가 했다지만 마트에서 조리된 반찬이나 인스턴트 식품을 사다가 냉장고에 채워 놓고 그릇을 꺼내놓는 일은 지혜의 몫이었다. 가족의 규칙에 따르면 설거지와 뒷정리는 진혁이가 해야 할 일이었지만 지혜가 잔소리를 하다가 제풀에 지쳐서 알아 해치우고 마는 때가 많았다. 지혜는 가사노동 외에도 가족들을 위해 감정의 많은 부분을 투자하고 있었다. 동생에게 어머니가 할 것 같은 잔소리를 했고 아버지에게 마치 부인이 할 것 같은 잔소리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가끔 지혜는 가족들에게 화가 난 것 같았다. 여러 모로 재주가 많은 아이였지만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편안하게 내버려두는 방법은 도무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도 그 나이를 지나왔지만 내가 알고 있는 소녀는 나였을 뿐이라 지혜에게 무언가 이래라 저래라 조언하기가 어려웠다. 만약 내가 그 입장이라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하지만 청춘은 이유 없이 화내는 것이 아니라 이유 없이 웃는 시기이다. 자기가 해놓은 일을 자랑하는 때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꿈꾸는 때이다. 지혜는 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외롭게 버텨내고 있었다.
5.
기말고사가 끝난 토요일, 과외수업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진혁이네 가족은 외가에 방문할 거라 했다. 무사히 학년을 마쳤으니 쉬어도 좋을 때였다. 다음주 화요일에 진혁이의 시험지를 가채점한 결과를 보았다. 석차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절대평가 점수로는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나는 쪽집게 과외선생이 아니었고 지금도 자기가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는 이상 성적을 올리는 비법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오랜 시간 책상 앞에 붙잡아 두었던 학생인데 결과가 이래서야 부끄러운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혁의 아버지가 나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오셔도 됩니다. 이 무슨 말인가 당황했다. 그는 방학을 맞아 일자리를 잃은 과외선생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 역시도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는 늦은 귀가 후 자동차 안에서 갑자기 그들에게 일어난 가족의 문제를 털어놓았다.
그의 장인은 장모가 세상을 떠난 뒤 침울한 시기를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그에게 너무 자주 찾아오지 말라고 했단다. 그는 장인이 자기를 배려해서 하는 말인 줄 알고 혼자 되셨는데 가까이에서 지내자고, 원한다면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장인의 입장은 달랐다. 지혜가 어릴 때는 친탁을 했다는 평을 들었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제 어머니를 ·닮아 간다는 것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손녀에게서 죽은 딸의 모습을 보는 일이 무척 괴롭다고, 장인은 속내를 숨기지 않고 사위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홀아비가 된 두 사람의 만남이 서로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고 했다.
진혁이 아버지는 장인에게 하지 못한 말을 나에게 했다. 장모가 계실 때에도 반찬을 얻으러 갔던 건 아니었다고, 당신의 혈육을 보기 싫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죽은 아내를 닮은 딸애를 자기는 매일 보고 있다고, 토하듯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절절하게 섞인 비애에 공감했지만 한편으로 지혜의 고통스러운 자기학대적 잔소리를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혜의 아버지가 장인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장인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언젠가 아주 오래 전에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아내가 죽고 그의 장모가 죽은 뒤에 그가 내 앞에서 자기 장인에 대해 묘사할 때의 느낌은 마치 벌레나 강아지풀에 대해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장인이 자기와 아이들을 거부하는 이유가 마치 그의 아내, 즉 장인의 딸에 대한 배신인 양 묘사했다. 하지만 장인이 느끼고 있을 깊은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아픔, 그 딸애와 비슷한 아이의 성장과장을 다시 한 번 목격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공포, 심지어 그 조차도 이해하고 있을 법한 아내를 잃은 남편의 고통스러움에 대해서도.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다만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임금을 받기 위해서 굴종적인 태도를 취했던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고용된 과외교사였다. 그러나 나는 그가 장인에 대해 말할 때 그가 느꼈던 공포를 이해했다. 그는 고립되어 있었다.
진혁과 지혜, 그들의 아버지는 이 도시를 떠났다. 아버지의 부모가 살고 있는 지방으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자기 아이들을 보살피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성실한 아버지였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 결과 진혁이와 지혜의 삶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 딸이 느꼈던 삶의 무게를 읽는 사람도 함께 느끼는 듯 합니다. 그래도 동생을 그렇게까지 돌보는 누이가 있어 동생이 잘 되었을 것 같군요. 우리 모두의 삶에 나름의 이야기들이 있는거겠죠.
답글삭제다른 사람들의 삶을 투명하게 보실 줄 아는 눈이 있으신 듯 합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삭제부족한 글을 따듯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면서 슬프네요
삭제따뜻하면서 슬프네요
답글삭제댓글을 검토 후에 게시하고 있어서 시차가 좀 있었어요.
삭제따듯하게 슬프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