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3일 화요일

감정의 진공상태.

좌절감이 컸다. 그가 나를 밀어내고 있다고 느꼈다. 전력을 다해서 장벽을 치고 있다고 느꼈다. 그에게 속삭였던 사랑의 말들은 무가치해졌다. 그는 그런 말을 한 번도 원했던 적이 없었다. 나의 황홀감에 도취되어 그에게 역겨운 말들을 내뱉었던 것이었다. 스스로가 어리석고 멍청하다고 느꼈다. 언제나 엉망이었다고 자책했다. 꽤 자주 멍청한 일을 저지르지만 언제나 그랬던 건 아닌데 그 순간에 나는 최악이었다.

삶에서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그것이 내가 믿고 있는 유일한 진실이었으니까. 그러나 가장 단단하게 내면에 들어 있다고 믿었던 감정이 무너졌다. 모래처럼 파도에 쓸려갔다. 결국 중심이 텅 비고 말았다. 감정은 진공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반짝이고 아름다운 존재가 계속 그 자리에 있을 리가 없지.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 오래 지속될 리가 없지. 그렇게 뜨거운 감정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구나 깨달았다. 달콤한 말들은 텅 빈 공간에서 울리다 사라졌다. 삶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거짓말을 충전하고 그것이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짓을 반복해야 하는 것인가, 끔찍했다.

아침에 그를 만나러 갔다. 그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했다. 별다른 대책이 없었는데 다행히 그는 문을 열었다. 그가 왜 그토록 열성으로 닫아 걸었던 문을 그 순간 열어 주었던 것인지 그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이전에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굳이 이유를 캐묻지는 않았다. 진심으로 알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두렵다.

그에게 선물을 부탁했다. 당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나에게 달라고 말했다. 그는 흔쾌히 그러겠노라 답했다. 하지만 확신이 들지 않는다. 과연 이런 방법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회복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문득 그 텅 빈 감정이 떠오르고 견딜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