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제목은 <설운 서른> 출판사 이름은 "버티고"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2005년에 출간된 책이다. 세로활자 편집은 읽기 너무나 괴로웠다. 왼쪽에서 오른쪽을 향하는 시선의 진행방향이 익숙하니 시가 뒤부터 눈에 들어왔고 줄 사이 간격도 편안하게 들어오지 않아 이 행 저 행을 헤매기 일쑤였다. 서른 즈음에 나이를 먹어가는 시인들이 내뱉은 말들이라 더욱 읽기 괴로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승자의 <삼십 세>나 나희덕의 <나 서른이 되면> 같은 시가 실린 것은 당연하겠지. 김기택의 <사무원> 이나 김종길의 <성탄제> 같은 작품이 이 또래의 사회적 역할과 애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납득할만한 구성이다. 그러나 이형기의 <낙화>는 아직 너무 이르지 않나, 너무 비극적이잖아. 그래도 공명을 일으키는 시가 여러 편 있었다.
여림의 <실업> 마지막 행
"지금 나의 삶은 부재중이오니 희망을
알려주시면 어디로든 곧장 달려가겠습니다"
이성복의 <세월에 대하여>
세월이라는 말이 어딘가에서 나를 발견할 때마다
하늘이 눈더미처럼 내려앉고 전깃줄 같은 것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본다 남들처럼
나도 두어 번 연애에 실패했고 그저 실패했을
뿐, 그때마다 유행가가 얼마만큼 절실한지
알았고 노는 사람이나 놀리는 사람이나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세월은
언제나 나보다 앞서 갔고 나는 또 몇 번씩
그 비좁고 습기찬 문간을 지나가야 했다
김경진의 <서른 살>
맥주를 마시다가 꾹꾹 누르며 참았던
오줌을 싸러 화장실에 가면
변기 속으로 내 서른 살이
빠져 들어가는 것을 본다
알코올만 걸러내고
고스란히 물을 쏟아내면서
오자와 탈자 투성이인 내 서른 장의
이력서를 펼친다 마음이 아프다
취한 내가 변기 속에서 거시기를
부릅뜬 눈으로 보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겁고 씁쓸한 나이 서른,
견딜 만큼은 견뎌야지
삶이란 걸 공짜로 살 수는 없지 않는가
변기의 물을 내리면
스무 살의 아련함이 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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