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9일 화요일

김언희의 시.

마그나 카르타
- 선언하면서 동시에 절규할 수 있다면

아침부터 썩을 권리가 있고
하루를 구토로 시작할 권리가 있소
매사에 무능할 권리가 있고
누구나 알아듣는 것을 나만 못 알아들을 권리가 있소
껌껌한 콘크리트 방주를 타고 밤마다 대홍수의 꿈을 꿀 권리가 있소
머리 위로 똥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꿈을 밤마다 꿀 권리가 있소
에미 애비도 몰라볼 권리가 있고 딱 오 분만 모친의 부고를 즐길 권리가 있소
파니스 안젤리쿠스를 페니스 안젤리쿠스로 번번이 고쳐 들을 권리가 있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수음을 할 권리가 있소
수음을 하면서 숨이 끊어질 권리가 있소
더 이상 미래가 궁금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젓가락 행진곡만 삼십 년을 칠 권리가 피가 나도록 칠 권리가 있소
단고기를 입에 물고 있으면서도 단고기 생각을 할 권리가 있고
착잡하게 시작해서 찜찜하게 끝을 볼 권리가 있소
소리만 철퍽대다 끝낼 권리가 있소
인생을 바꾸려 하루 오백 번 항문을 조일 권리가 있고
믿는 도끼에 발등을 대줄 권리가 있소
먼눈이 또 멀 권리가 있고
무엇보다 발가락으로 젓가락질을 할 권리가 있소
대공원에 비둘기가 내 정수리에 버젓이
똥을 눌 권리가 있는 것처럼


--------------------------

김언희, 요즘 우울하십니까, 문학동네 시인선, 2011.

가끔 '여류-시인' 따위의 구태의연한 일본식 한자표현을 아직도 쓰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김언희의 시를 읽어주고 싶다. 이 시의 어디에서 댁들이 기대하는 낯간지런 내숭이 있는가 들이대고 묻고 싶다. 타협하지 않고 욕망의 소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강렬한 시어는 섬뜩한 충격을 주는 한편으로 섬세하게 감정선을 건드린다. 이 작품은 수록된 시집에서 가장 단호한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말이다.

댓글 3개:

  1. 이 시 너무 맘에 들어요! 아, 물뚝심송님 사진도 ㅋㅋ

    답글삭제
    답글
    1. 시가 맘에 드셨다니 좋네요. 그런데 제가 블로그에 물뚝심송님 사진을 올렸던가요? 옹;;;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삭제
    2. 딴지 얘기예요.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