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8일 목요일

부족함과 관대함에 대해.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사랑하기는 쉽다. 고귀한 정신, 아름다운 외모, 뛰어난 직업적 능력, 돋보이는 사교적 태도 같은 장점은 때로 사랑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단점 없이 완전무결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처음에 장점이라 생각했던 요소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단점으로 변하기도 한다. 고귀한 정신세계는 현실적인 무능력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특출나게 아름다운 외모는 결국 얼굴값을 지불하게 하는 파국으로 향하며, 직업에서 뛰어난 능력은 대개 일중독으로 증명되고, 사교적으로 활발한 태도는 만인을 향한 것으로 두 사람 사이의 애정을 입증하는 데 쓸모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알았던 어떤 사람을 회상할 때 그가 가진 장점을 떠올리다 보면 안도감이 든다. 그는 영리하고 재치있는 남자니까, 경제적으로 풍족했으니까,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니까, 굉장히 잘 생겼으니까, 돈독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내가 아니더라도 잘 살고 있겠지, 괜찮다. 내가 미안해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를 다시 만나게 되어도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리고 이런 남자들에 대해서는 결핍된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나는 그 관계 속에서 즐거움만 맛본 뒤에 아주 사소한 이유로 헤어졌을테지만, 그런 이별의 과정도 기억하지 못한다. 완전한 사람은 완전히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결핍까지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꽤나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운동화끈을 꼭 묶지 못하는 둔한 손재주, 나보다도 한심한 기계치, 재능과 경험이 모두 부족한 요리 솜씨, 만취하도록 마시는 술버릇, 지속적으로 탈모가 진행 중인 두피의 상황 같은 것. 전 남자친구의 단점을 열거하면서 왜인지 웃음이 나왔다. 그 큰 덩치로 쪼그려 앉아 운동화끈을 묶기 위해 바둥거리던 모습이라니, 애틋하다. 나는 그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고 이별 후의 상황을 잘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슬프고 안타까워서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오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내가 그의 많은 부분을 사랑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마도 그가 나에게 충분히 관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수많은 결점을 지켜보고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다독여준 사람, 그 덕분에 나도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그의 관대함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듯해진다. 부모도 형제도 아니면서 그토록 아껴주는 사람이 또 있었던가, 그는 부처님 같이 너그럽고 온화한 남자였다. 우리가 서로를 안아줄 수 있었던 까닭은 서로의 결핍을 충분히 바라보고 다독이려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맙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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