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일 일요일

고향방문.

고향에 왔다. 부모님이 시골집에 딸린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봄 농사 준비를 도울 겸 따라 나섰다. 오랜만이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가보고 싶었다. 산소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손질하고 봉분에 돋아난 이끼를 긁어내고 겨우내 얼었다 녹아 들뜬 땅을 토닥토닥 다져놓았다.

어버이 살아계실 때 섬기기를 다 하라는 가르침은 아름답지만 살아 있는 사람을 섬기는 일은 쉽지 않다. 많은 자식들이 부모의 죽음 이후에 비로소 애정을 재확인하는 이유는 무덤이나 유골은 결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어린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절대적인 까닭도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이 거부당했을 때 가장 상처받기 때문에, 절대 거절하지 않을 대상에게 가장 지극한 애정을 표현할 수 있다. (신이 되고 싶습니까? 당신을 숭배하는 이들의 사랑을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시골집에 딸린 작은 텃밭을 괭이로 파서 뒤엎다가 작년에 심어 두었던 돼지감자(양감자)가 겨울을 나고 더 굵어진 것을 발견했다. 돼지감자는 녹말이 거의 없어서 칼로리가 적은데, 아삭아삭한 식감과 시원한 단맛이 좋아서 간식으로 애용하고 있다. 워낙 손이 안 가고 잘 자라는 식물이라 올해에도 돼지감자를 심을 계획이었다. 파종을 하려는데 작년에 미처 캐지 못한 뿌리줄기가 굵어진 것을 수확하게 된 상황이었다.

이웃집 오상이 아저씨와 물 건너 사시는 당숙 아저씨가 우리집에 찾아와서 무너진 담을 치워주셨다. 아저씨들께 돼지감자를 파종하려는데 어찌해야 좋은지 여쭤보았다. 내 상식으론 제일 좋은 열매를 골라서 씨감자로 써야할 것 같았는데 프로페셔널 농부들의 의견은 달랐다.
- 뭐를 골라 심노? 대강 깎아 먹고 껍데기 던져뿌면 거서도 자라는기 돼지감자라.
그렇다면 돼지감자는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 여쭤보았다.
- 깊이 묻으면 위로 올라오고 얕게 심으면 아래로 파고 들어가재.
- 돌깍담 아래 묻어놔도 자란데이. 돌밭에 뿌리 봐라, 자라나 안 자라나?
돌깍담은 줄맞춰 쌓아 올린 돌담이 아니라 논밭 가장자리에 대충 던져둔 돌 무더기가 담장처럼 쌓여있는 것, 밭에서 나온 큰 돌을 골라내다 보니 생겨버린 경계 같은 것이다. 사실 우리집 텃밭의 돌깍담에서도 돌 틈으로 파고든 돼지감자를 캐느라 애를 먹었었다. 아저씨들의 조언을 따라 밭을 대충 갈아 엎고 대충 밤알만한 크기의 돼지감자를 줄 맞춰 흩뿌려 심었다.

밭일을 마치고 아버지와 어른들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프랑스산 와인을 한 병 꺼내자 오상이 아저씨가 직접 담근 포도주를 가져오셨다. 오상 와이너리의 포도주는 달달한 로제와인, 아저씨의 자부심은 프랑스산 포도주를 뛰어넘었다. 그러다가 이웃집 교장선생님이 오셨고 다음에는 칠레산 포도주를 마셨다. 어른들이 포도주를 곁들여 점심을 먹는 동안 동생은 삼겹살을 구웠고 나는 식사접대를 했다.

그리고 비혼의 가임여성의 필수문답, 연령과 생식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했다. 나이가 몇이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애인은 있냐... 그리고 당숙 아저씨의 매우 짖궂은 농담을 참아내야 했다.
- 니는 배메기다. 딸아는 배메기다 이 말이야.
배메기는 전통적 농경사회에서 자본이 없는 빈농이 노동집약적 소 목축을 통해 최소한의 자본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어느 정도의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암컷 송아지를 한 마리를 구입해서 빈농에게 맡긴다. 빈농은 열심히 꼴을 베어 그 송아지를 먹여 키운다. 송아지가 다 자라 어른이 되어 새끼를 낳으면 다 큰 소는 자본을 투자한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가고 소가 낳은 송아지를 팔아서 얻은 수익을 소 주인과 소를 먹인 빈농이 반싹 나눠가진다.
당숙이 딸아는 배메기라고 말했을 때, 그 비유에서 내가 빈농인지, 아니면 암소가 된 송아지인지, 또는 그 암소가 낳은 송아지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상황에서 불쾌한 비유는 그 뜻이 분명해진 뒤에도 불쾌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더 묻지 않았다.

당숙이 또 물었다.
- 니는 서울이 좋나, 시골이 좋나?
대답하지 않고 그냥 웃어보였다. 딱히 대도시에서 살고 싶진 않지만, 내가 배메기 암소에 비유되는 시골에서 산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평온, 한적함, 이웃의 친절 - 적막, 무료함, 이웃의 간섭. 농촌 생활의 양면. 내가 이곳을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서 이렇게 폐쇄적이고 봉건적인 사회에서 내가 받아들여질 것 같지가 않다.

어젯밤에 남동생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났다.
- 어휴, 바보야. 삼십 년 전에 남자로 태어났어야지. Y 염색체 하나만 있으면 되는 걸...
나는 어쩌자고 X 염색체만 쌍으로 가지고 태어났을까? 그나마 대도시에서 자라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농촌에서 독립적인 여자로 성장하기란 칠촌 양자 들이는 일만큼 어려울 것이다.

어쨌든 오랜만의 고향방문은 즐거운 일이었다. 몇년만에 뵌 죽동 아지매로붜 용돈을 받아서 기뻤다. 돈이 기뻤다기보단 아직도 용돈 받을 나이라고 생각해주셔서 기뻤다. (역시 내가 동안이지...) 그리고 귀여운 동네 바보 기범이와 두 번이나 마주쳤다. (그가 나보다 한 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엄마와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적당한 육체노동의 결과 간밤에는 꿈을 꾸지도 않고 깊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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